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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호미곶은 저물지 않는다 / 김성배


방파제에서 잘 벼려진 손돌바람으로 깊어진

호미곶이 푸른 맨발로 나를 찾아든다

민장대에 입질한 괭이갈매기 울음이 비려질 때

곰삭은 어미의 손은

구멍 난 노을을 깁고 있다

귓불 시린 포구는

파도가 경매하는 꽁치떼 소리로 왁자하고

귀신고래가 물고 온 오호츠크 해는

저문 동백 속에서 밝아왔다

햇귀를 이고 떨어진 애기동백은

제 빛깔 속에서 밀려오는 주름진 뱃길을

마른 젖가슴에 묻는다

녹슨 해도도 없이

출렁이는 뒷산 밀고 앞산 당겨 노 저어가는

굿거리장단 시김새에 수평선을 풀어놓는다

서둘러 떠나야 어서 돌아온다던

물거품 속에 누워있는 아비를

아직도 아랫목 고봉밥으로 뎁히고 있는 어미는

선착장에 나가 불 꺼진 등대의 내장을 손질한다

입술 마른 숲길의 동박새 울음소리가

가파른 어미 등을 넘나들고

뭍으로 내달은 갯바람은

신발 끈을 조이는데

갈라 터진 한 줄기 그물 자국 손등을 벗어나지 못한다

돌아올 줄 아는 습성의

고래의 노래는 끊어지고

늘 내 뒤안에서 익어가는 장은

혼자 숨을 쉰다

어미는 억센 갯바위를 매러 나가 없는데

된장국 끓는 소리만 깊어간다

달빛에 뒤꿈치가 젖은 호미곶은

미세기로 드나드는 파도에게 가야 할 길을 묻는다







[은상흘수선 / 이은정


눈 내리는 포구

자박자박 졸고 있던 목선들이

말뚝에 매어 놓은 소처럼

찰박찰박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흘수선은 악기다

물의 악보를 가장 잘 이해하는 너울성 타악기다

소 울음 가득 품은 장구의 북편

소금기에 절은 궁채가 수면의 음표들을 칠 때마다

북과 워낭은 각 색의 화음을 이루며

넘실넘실 소리되새김질하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짐승의 목에

악기를 달아 놓는 것을 즐겼다

딸랑딸랑 소의 목에서 울리던 방울과

긴 밧줄에 묶인 배들의 목전에서 들리는

저 한가한 박자엔 눈발 성근 포구의 오후가 있고

파도를 삭히는

뱃사람들의 따뜻한 잠이 들어 있다


풍랑에 겨워 출항을 머뭇거리는 흘수

비스듬히 누운 돌꼇잠을 푸른 물이 뒤척거리면

출렁이는 꿈은 얽어맨 축승縮繩처럼

가닥이 여럿이다

몇 해가 지나도록

소리의 가닥을 잡지 못한 장구재비도 있다

조롱목을 조였다 풀며 해안을 거닐다가

불현듯 모래톱에 걸린 병목의 시간은

정 동쪽 끝으로 침몰해간다


포구에 눈 내리고

물은 무료한 건드림을 쉬지 않지만

밧줄은 현악기의 줄처럼 팽팽해진다

물 밖과 물 안쪽이 만나는 곳

저렇게 폭신한 자리도 없을 것이다


밧줄과 포슬포슬 내리는 눈

먼 바다 조업에서 돌아온

뱃사람들의 나른한 아랫목과

포구로 돌아가는 물살의 문우지정


고요한 듯하지만

목선엔 쉬지 않는 박자가 생물처럼 들어있다

악사의 채 끝을 타는 음표들이 팔딱거린다

삐걱거리는 물 위에서

울렁울렁 떠 있는 수평선이 보인다

 

 






[동상구부러진 곡선들 / 김우진


농협 앞 좌판에서 멸치 한 됫박을 샀다 비릿한 냄새가 옮겨 붙어 구불구

불한 골목을 따라온다 할머니의 등처럼 구부러진 곡선들,


저들에겐 새들의 유전자가 있어 허공이 그들의 놀이터였다 석양을 물고

물 위를 풀쩍 뛰어오르는

직선의 날렵한 몸짓이었다 은비늘 번쩍이며 파도를 물고 흐르던 빠른 속

도였다

포식자보다 더 빨라야 했으므로 속도가 목숨이었다


입속으로 거대한 바다가 드나들고 거센 파도가 스칠 때, 그들은 함께 물결

이 되어 흘렀다

떼를 이루어 거대한 몸짓으로 적과 맞선 그때, 그물은 멸치 떼가 온다고

외쳤다


너른 바다에 지느러미로 쓰고 다닌 흘림체, 생의 푸른 문장을 뱃속에 품고

멸막에서 그들은 모두 휘어졌다


곡선으로 휘어진 지느러미가 바다의 끝을 물고와 도심지에 풀어 놓았다

부력을 잃은 생명들이 좌판대 위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


종로3가에 가면 구부러진 곡선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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