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상] 백파의 항로1 / 배기환
- 출항
푸른 적요의 공간 속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귀가 육중한 바다의 이목구비 열면
시베리아 빙산 쓸고 온 된바람 지구를 흔들고
지구는 대양을 흔들며 곤하게 잠든 바다 불러 깨운다.
블랙홀처럼 어둠이 저벅거리는 바다를 토벌해야 하는
수부들의 고된 삶이란 어차피 모험이다.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는 파도와 해일의
난해한 문장들을 하나하나 해독하며
험난한 바다와 끝까지 승부해야 한다.
젊은 날의 충동처럼 격동이 있고, 시련이 있고
짭짤한 삶의 애환들이 살아 숨 쉬는
욕망으로 출렁이는 울창한 바다의 숲 헤치면
싱싱한 물의 아가미가 뿜어내는
무성한 파도와 심해 속의 숱한 언어들이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유영하고 있다.
좀처럼 속내 드러내지 않는 난류와 한류
970헥토파스칼의 성난 눈길로 해륙을 물고 뜯는
풍랑의 빗장걸이에 번번이 걸려 넘어지면서도
수부는 기어코 저 바다를 정복해야한다.
험난한 저 백파의 언덕을 뛰어 넘어야한다
잘 발효된 해와, 달과, 별과
잘 숙성된 구름과 안개바다가 가지고 있는
수천수만 종 바다의 소장품들을 하나하나 탐색하며
광활한 초원처럼 펼쳐진 먼 바다로 출항하기 위해
수부는 지금 벅찬 가슴으로 바쁘게 닻을 올린다.
[장려상] 태평양을 품다 / 서상규
솔로몬 군도 외항의 밤하늘에
제비꽃이 꽃보라로 핀 성좌도(星座圖)가
브릿지 유리창을 찬란히 비춘다
시속 6노트로 참치 떼를 쫓는
원양어선이 꽃의 군락으로 빛나는 별빛에
매혹되어 한눈을 판다
이내 바른 좌표로 항로를 잡는다
어둠을 헤쳐 나가는 항해에
수평선으로 불끈 솟구친
범고래가 분수공으로 해를 띄운다
사방연속무늬로 빛살이 번진 물비늘을
검푸른 등으로 유영하는 참치 떼,
마스트에 새파랗게 열린 눈썰미로
참치의 향방을 우현으로 몬다
순간 투하되는 어망,
경도 위도로 짠 팽창한 그물로
선원들의 힘줄이 팽팽하게 엮인다
생이 정점을 향해 축포를 터트리듯
어망을 끌어올리는 작업에
생명의 절정으로 참치들이 파닥인다
참치 떼가 맞는 기꺼운 희생이
살림의 윤회로 뜨겁게 피돌기를 달궈
선원들 황금빛 근육에서
신생의 기운으로 되살아난다
만재수량에 깊어진 흘수선이
물고기 옆줄로 수평선을 당긴다
급랭한 어창을 가득 채운 만선에
가슴 벅찬 비움으로 전재작업*을 한다
태평양을 품은 원양어선이
새맑은 창공에 태극기를 펄럭이며
힘찬 생기로 파랑을 가른다
*전재작업: 참치를 운반선에 옮기는 작업
[장려상] 바다, 함수 풀다 / 배문석
바다의 족속들은 십의 구골승 무리
하나가 천으로 만으로
종족 불리는 미지의 함수다
물비늘 가르며 외롭게 떠나는
통통배 그 뱃머리에
벌거숭이 바다가 이마를 부빌 때마다
오대양 육대주를 향한
국부를 꿈꾸는 돛을 올린다
날 선 분포도의 어망에
씨알 굵은 어족들이 터질 듯 잡혀서 올려지고
구수한 거래를 마친 어판장 항구에는
사람들 입맛이 다시 바다로 향한다
수십만 톤의 유조선이나 컨테이너선
해빙을 깨고 남극에 인도하는 쇄빙선까지
항해는 미지를 푸는 열쇠다
바다가 만든 미지의 생명들이
사람들 주머니에서 혹은 식탁위에서
뱃꾸리를 불려가는 화수분이었다는 것을
메마른 눈으로는 모른다
때로는 분노의 물결이 눈을 들고
남획과 오염의 사슬을 끊어내야 하는
태풍의 속앓이를 보일지라도
바다가 감춰 논 수열을 읽어야한다
우린 어둠상자 안에서 보물을 꺼내듯
바다가 주는 행복
바다가 베푸는 함수를 풀어가야 하듯이
풍요를 위한 바다의 변수를 읽어가야 한다.
*구골승: 10의 백승을 나타내는 수의 단위.
*국 부: 국가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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