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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흉터 / 신진련

 

빗장 닫힌 아랫배는 문이었다

찬바람 불면

첫딸의 흔적에서

봉합되지 못한 어머니의 음성이 삐걱거렸다

돈 들여 배를 쨌는데 겨우 딸이냐

여자가 여자를 낳은 자리는 왜 이리 아물지 않는지

딸아이가 품에 안길 때마다

닳아버린 나무 대문을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감추고 살아온 문틈에서 시린 소리가 났다

슬그머니 아랫배를 쓸어본다

울퉁불퉁 문턱만 남아 있는

아이가 나온 자리

손바닥으로

오래전 첫 울음소리를 가만가만 읽는다

아들을 낳고서야 용서받은

한때 문이었던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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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아버지의 집 / 유다인

   

벽돌을 쌓는 사람들이 있다

아버지의 몸 위에 한 삽 한 삽

집이 지어지고 있었다

둥근 봉분이 쌓아지는 중이다

바람에 몸을 틀어 태양을 감추는 구름도,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날개가 허공에 부딪는 소리도,

너무 많아서 나는 기록할 수 없다

혹시 집에 비가 샐까

나는 봉분 근처를 배회하며

물방울의 크기와 그늘의 각도를 잰다

사방으로 뻗은 산맥처럼

아버지 발등 위에 불거진 핏줄은

끊임없이 흐르던 세월이었다

누가 이 산맥을 읽을 것인가

 

문패 대신 세워진 비석

아버지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젖은 소매로 닦는다

 

 

 

 

[본상] 올갱이국 / 지경희

   

빗방울 튀어 오르듯

보글보글 끓는 정오

 

나만의 특별비법

한 옥타브 올라간다

 

태양초

고추장 넣고

허기가 풀릴 때까지

 

소나기 부른 열탕

통째로 삶은 유월

 

단단한 껍데기에

제 살 꼭꼭 숨겼어도

 

남한강

푸른 물줄기

확 빨아서 비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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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감기몸살 / 김륭

 

 

1.

놀이터 옆 화단에서 벌벌 떨던 어린 꽃나무가 나를 찾아 아파트로 들어왔나 봅니다. 너무 추워서 폴짝, 내 품 속으로 뛰어들었나 봅니다.

 

 

2.

이마가 펄펄 끓고 콜록콜록 기침이 멎질 않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놀기만 해 그렇다고 엄마는 도끼눈을 뜹니다.

 

 

3.

내 품속으로 뛰어든 꽃나무가 꽁꽁 얼어붙었던 발을 녹이다 스르르 잠이 들었나 봅니다. 팔랑팔랑 나비가 날아다니고 붕붕 벌이 꿀을 실어 나르는 꿈을 꾸나 봅니다.

 

 

4.

온몸 가득 열꽃이 피었습니다. 저만치 봄이 오나 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오나 봅니다.

 

 

 

 

 

 

[본상] 데생 NO. 1 : 석상 / 서인규

 

하늘 높고 고뇌 깊은 봄날

조각 공원의 한 석상

바람에 닳고 닳아

딱딱하고 까끌까끌하게 미소 짓는다

 

짙은 조팝꽃 향 섞인 봄바람도

감각할 수 없도록 정성들여 깎아낸

화강암 심장.

 

혼자 맞는 봄비에 반쯤 절어

저 멀리 떠가는 구름 한 점

말없이 응시한다

 

아직은 매운 칼바람이

밤새 그 얼굴을 때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꼭두새벽,

이슬로 하루 꼭 한 번 잠깐 운 다음

동이 틀 무렵엔 다시 미소 짓는다

 

 

 

 

 

[본상] 조개나물 / 김현주

  

1

친엄마 무덤 벌초하러 갔던 날

잎과 잎 사이 얌전하게 내민 손 하나가 있었다

저러고 볕 좋은 무덤가에만 핀다니

저 손은 저승에서 내민 어느 착한 이의 안부인가

 

엄마는 숨이 끊어지기 전 나를 찾았다고 한다 

 

2

아버지는 조개껍데기 같은

딱딱한 이불을 덮고

오래오래 말이 없었다

 

살이 껍데기를 덮고

껍데기가 먼지를 덮고

먼지가 눈물을 덮어

허공은 더 무거워져 가는데

 

아버지는 그 무게를 견디며

오래오래 납작해져갔다

 

백만 년 전 수장된

어루만져지지 않는

무게들

 

당신의 갑옷 속엔 얼굴이 없고

자정에 내민 뭉툭한 발엔 발가락이 없다

 

아버지와 나는

발가락이 닮았다는데...

 

아버지의 발가락이

내 발가락 사이에서 자라느라

잠시 휘청

 

새로 돋은

아버지의 발가락이

아기처럼 말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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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 하상만

 

콩자반을 다 건져 먹은 반찬통을
꺼내 놓는다. 반찬통에는 아직
간장이 남아 있다.
외로울 때 간장을 먹으면 견딜 만하다.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내가 일으키려 할 때
할머니는 간장을 물에 풀어오라고 하였다
몸은 잔뜩 부어올랐지만 가벼운 영혼을
붙잡기엔 아직 덜 무거웠다.

나는 들어서 알고 있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혼자 먹던 것은 간장이었었다는 것을.
방에서 할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한 그릇의 고봉밥을
나누어 먹고 있을 때
부엌에서 할머니는 외로웠다고 했다.

물에 풀어진 간장은 뱃속을 좀 따뜻하게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운을 주었다.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달라고 한 음식은
바로 그런 간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는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었다.
수년째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던 그 방
한 구석엔 검은 얼룩을 가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내가 간장을 가지러 간 사이 할머니는
영혼을 놓아버렸다. 물에 떨어진 간장 한 방울이
물속으로 아스라이 번져 가듯
집안은 잠시 검은 빛깔로 변했다.

비로소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이었다는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의 손자이므로 간장이 입에 맞았다.
혼자 식사를 해야 했으므로
나는 간장만 남은 반찬통을 꺼내 놓았다.

 

 

 

 

 

밥 / 박민례

 

 새까맣게 타버린 밥에서 보너스 같은 따끈한 한 끼가 숟가락 위에서 단내를 풍기고 있다 365일 굶기를 밥 먹듯 했다는 할머니, 부뚜막 한쪽을 지키며 메마른 뼈마디에 병색마저 깊어졌을 것이다 꽃처럼 피어나던 버짐도 고만고만한 새끼들과 품 팔아 얻어온 밥 한술로 풀죽은 허기와 궁핍한 생을 때우셨을 그 시절, 헐거워진 허리띠 졸라매며 통통하게 살찌우려 옹알옹알 입속으로 한 톨 한 톨 밥뚜껑을 덮으셨을까 건건이라고는 소금에 절여진 짠지에 푸성귀 푸짐하게 가득 차오른 가난을 쌀독으로 하얗게 채우셨을 터, 끓어 넘치던 밥물 냄새 사라질까 뿌연 김 부드럽게 머금으며 꼿꼿하던 고집으로 목마른 목이라도 적시셨겠지

 

밥물처럼 몰래 잦아들었을 할머니의 만찬이 꽃무늬 밥상보에 조각조각 붙어 있다 선물 같은 아침에 하얀 쌀밥으로 밥을 먹는 오늘, 할머니의 밥물은 쉬 넘치지 않는다

 

 

 

 

 

한층 고양된 작품의 수준― 제9회 김장생문학상 심사평

 

나태주(시인, 공주문화원장)

 

올해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대상 부분인 기성작가 그룹에서 좋은 작품집이 많이 들어와 기뻤다. 그만큼 김장생문학상이 전국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 잣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적인 문제나 상금의 액수를 떠나 이렇게 주최 측에서 성실히 노력하고 홍보하고 본래의 뜻을 유지, 발전시키다 보면 폭넓은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심사자로서도 매우 보람있게 생각한다. 그저, 이런 때 얼핏 떠오르는 말은 또 송무백열(松茂栢悅)이란 말이다. 계룡시가 좋아지고 사계 선생의 이름을 모신 상이 좋아지니 건너다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충분히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과 느낌이 그것이다.

 

1. 대상부문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다양했다. 그 작품집 이름을 적으면 이렇다. 『털실뭉치』(김규학),『아침 6시 45분』(최해돈),『사랑이라는 재촉들』(유종인),『간장』(하상만).

 

모두가 탄탄한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시적인 발상이나 집중력이 충분히 보장된 작품이었다. 개성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에 동시 작가가 대상을 받았으므로 이 점을 참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시의 성숙도나 감동에 관한 면모들을 중점적으로 살핀 결과, 『사랑이라는 재촉들』과『간장』을 최종심에 올라왔다.

 

고뇌 끝에 결국은『간장』 쪽으로 낙점을 하게 되었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다. 주제나 소재는 묵은 것이고 뿌리 깊은 것이로되 그 표현은 충분히 새롭고 드라마틱하면서 임팩트가 강하다. 이는 앞으로의 시가 가져야할 장점으로서 가장 큰 장점이다. 독자들과의 문을 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작가의 작품을 칭찬해주고 상을 주게 되어 매우 기쁘다. 배전의 노력이 있어 더욱 좋은 시로 우리 민족의 정서의 강물에 헌신 봉사하시기 바란다.

 

 

2. 본상부문

 

지난해에 비하여 본상 부문은 좀 저조한 감이 없지 않다. 규정상 운문에 2명, 산문에 1명 상을 주게 되어있다. 그러나 대상까지 합해서 볼 때 본상부문의 규정을 좀 수정해 산문 2명, 시 1명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주최자의 의도와 형편이 또 있을 수 있으므로 운문 2명, 산문 1명 이렇게 뽑아 여기에 기록하고자 한다.

 

우선 운문 부문 종심에 오른 작가와 작품은 이렇다. 박민례의「밥」, 심상숙의「명중」, 강경순의「밥주걱」, 송승환의「풀빛서정」(시조), 김혜경의「짝꿍」. 이 가운데 가장 실하고 감동이 있기로는 역시 앞에 있는 두 작품 「밥」과 「명중」이다. 각각 개성을 지고 있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시의 꼴로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앞의 작가의 작품은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안정되어 있고 따뜻하며 시적 형상화 또한 믿음직하다.

 

다음으로 산문 부문의 글은 이번에 동화 형식의 글이 많았고 본격 수필이 좀 적었다. 아쉬운 마음이다. 그런 가운데 정재순의 「미로」는 매우 박진감 넘치며 사실에 깊이 파고든 파워풀한 작품이다. 삶에 대한 자성 또한 만만치 않다. 그리고 권영애의 「매듭」도 아름다운 글이다. 현실과 추억을 버무린 곰삭은 작품 내용이 매우 향기롭다. 그리고 산문 24의 「마음으로 나눈 대화」도 충분히 귀여운 글이었으며 동화 형식을 빌어서 쓴 「대신 할배」도 좋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역시 선자는 먼저 거론한 「미로」를 선두의 자리에 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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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大賞)수상 대표작품

 

떡볶이 미사일 / 김영

 

나는 평화초등학교 앞

맛나다 분식점 떡볶이 집에요.

어린 손님들은 보글보글 끓는 나를 보고

군침을 흘리며 지나가죠.

짤랑짤랑 동전을 만지며

준비물 대신 꿀꺽 한입 삼키기도 해요.

송골송골 콧잔등에 땀까지 맺히고

어휴, 매워 후후

엄마한테 혼날까봐 후후훗

불자동차 된 혀가 바삐 옮겨 다녀요.

전쟁놀이 하는 어른들에게

떡볶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우와, 생각만 해도 신이 나요.

피융- 매운맛 나가신다.

피융- 피융- 달콤한 맛 받아라.

떡볶이 맛에 빠져

전쟁놀이는 잊어버릴걸요.

참! 세계 어느 곳이나 배달합니다.

-작품집 <떡볶이 미사일>중에서

 

 

 

본상 수상작품(운문부문)

 

새우할머니 / 정홍주

 

노량진수산시장 한 귀퉁이

등이 굽은 할머니 한 분 생선을 파신다

달빛 어스름한 시간이 고단한 잠을 깨우면

경매에서 사온 고기들을 스윽스윽 손질한다

빨간 함지박에서 물장구치는 미꾸라지와

얼음을 깔고 누운 생선들과

허공을 퉁겨 오르는 새우가 오늘 주인공이다

모두들 어둠을 깨우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새 할머니가 펼쳐놓은 바다는 흥건하다

바쁜 발길들이 첨벙첨벙 길을 놓는다

고 놈은, 김치랑 싸먹으면 아주 맛나

할머니는 오늘도 백과사전이다

비닐에 담긴 꽁치가 사내의 손에 들려

달랑달랑 흔들리며 시장 밖으로 헤엄쳐간다

가끔 새우들 수조 밖으로 뛰쳐나가면

황급히 굽은 등으로 달려 나가는 할머니

마침내 그 파닥임을 잡아 수조에 넣어주는

등 굽은 할머니의 아침은 늘 바쁘다

할머니 지나간 자리

굽은 등이 낙관처럼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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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사계김장생문학상 당선작


1. 대상 : 수필집 <그릇> 김윤선

2. 본상

    - 운문부문

      시 <구운몽> 김태영

      시조 <나의 문학> 김선희

3. 당선자 개별통보, 통장계좌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시상식 일정은 별도 통보하겠습니다.






구운몽 / 김태영


정류장에서 버스 속 세상으로 가는

관문을 통과하는 찰나

두 세상의 마찰로 인해

잠시 벌어진 시간의 틈새

버스 속 세상은 초시계 한 바퀴에

일 년의 세월이 흐른다

등에 유통기한이 찍힌 걸 잠시 잊은

슬픈 숙명의 승객 아홉 명을 태우고

꼬불꼬불 위험한 고갯길을 지나

버스는 종점을 향해 달린다

순간 저승사자로 변신하는 운전기사

어찌된 일인지 아무도 어디에서 버스를 탔는지

어디에 내려야 하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어느 한 청년은 앞쪽에 앉아 있는

섹시한 여자의 치마 속에

자신의 솟구친 거기를 넣는 상상에 빠지고

여중생은 핸드폰을 들고서 깔깔깔 웃으며

누군가와의 대화를 지역방송처럼 생중계한다

백발의 할아버지는 피곤하신지 주무시고

어린 꼬마 둘은 바깥 풍경이 신기한지

자꾸만 창밖을 바라본다

아주머니는 야채 가득 담은 장바구니를 옆에 두었다

낮술을 한잔 하셨는지 술 냄새가 진동하는

얼룩무늬 바지의 막노가다 아저씨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린다

나는 가장 높은 맨 뒷좌석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본다

무심코 누른 빨간색 정지 버튼 하나

이건 내리면 위험하다는 죽음의 신호인가?

동시에 같은 모양의 또 다른 버튼 여덟 개가

온 몸을 뜨겁게 불태우며

날카로운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예전에 이미 살해당해 목소리만 남긴

어느 미인이 안내방송을 한다

관문이 다시 열리고 백발의 내가 내린다

발이 땅에 닿자 다시 청년으로 돌아온다

정류장에 있던 내가 버스 속 세상의 나를 꿈 꾼인지

버스 속 세상의 내가 정류장에 있던 나를 꾼 꿈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다시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의 문학 / 김선희


숨 쉬듯 자는 듯이 붓을 든 마음

사람을 사랑하는 인내였나.


즈믄해가 그리워 그리다보면

어느새 산사람의 흔적처럼

한 가닥의 울타리가 생긴다.


숨 쉬듯 자는 듯이 한 귀절을 담은 마음

사람을 기르라고

감동이라 불렀나

삶으로 느끼라 문학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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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당선작 발표


■ 대상


△ 수상작 : 김희업 시집 『칼 회고전』

△ 약력

- 서울 출생, 건국대 국문과,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 『현대문학』 등단('98)



■ 본상


△ 운문부문(시)

- 수상작 : 홍선영의 "유리창 읽는 타잔들"


△ 운문부문(시조)

- 수상작 : 이영신의 "대 숲 그늘이 흔들리다"


△ 운문부문(동시)

- 수상작 : 이은영의 "엄마 없는 날"




 




칼 회고전 / 김희업


당장 내게 들이대더라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오래전 칼이 내 몸을 두 차례 다녀갔기 때문

처음엔 낯선 방문자로 다가와 불쾌하게 굴던 칼,

모면하려 버둥거리다,

하는 수 없이 내 몸 칼에게 건네주었다

실은 두려웠던 건 칼끝의 감촉

살아야 한다고, 혹은 살려야 한다며

내 몸 수술대에 눕히고

칼은,

몸을 쓰윽 건드려 보았던 것이다

두 번째 칼이 방문했을 때는

서로가 서로의 몸을 탐색하듯

어서 내 몸 더 깊숙이

어딘가 있을 희망의 성감대를 찾아내어, 내심

건드려 주었으면 했다

그날 이후로 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지만

아, 알 수 없는 깊이를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오르가슴이냐!

깊이가 깊을수록 칼은 본분을 다한 것

칼의 용도란 그런 거구나

꽃 진 자리처럼 몸에 흉터로 남아 두고두고

생의 단맛 느끼게 하던 칼의 향기자국

결국 칼이 나를 살린 셈

그때 죽음을 찌르고 칼을 선택한 것은

너무 잘한 일이라 여겨진다




유리창 읽는 타잔들 / 홍선영


빌딩 바깥에는 줄을 타고 내려온 타잔들이 거품 질을 한다

밖에서부터 시작된 오래 묵은 얼룩을 벗겨내려고 그들은

커다란 빌딩 위에 달라붙어 하루의 점이 된다

테헤란로 빌딩 숲에서 살아가는 타잔은 곡예를 하듯

이 창에서, 저 창으로 팽팽한 줄 하나에 제 몸을 전부 준다


아아아-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따르는 치타도 없지만

도시에 사는 타잔들은 자식들에게서 찬사를 받는다

반짝거리는 창이 반사하는 햇빛은 누구에게나 속사정 같아서

타잔들은 깨끗이 닦인 유리창을 보며 소학교도 좋고 국민학교도 좋으니

죽은 아이를 그리던 옥천 어디 출신이라는 시인을 떠올리기도 했겠지


빌딩에 달라붙은 사내들이 고함대신 정지용의 시를 읊는다고

상상하자! 멀리서 보면 「유리창」에 붙은

행간과 행간 사이 사라진 마침표인 것도 같고

목숨을 담보로 닦아낸 노동의 거울인 것도 같아서

타잔들은 돌아갈 집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겠지


경력 삼년 차에 들어선 신입 타잔은 유리창에 비춘 자신과

빼닮았던 아들을 그리워한다, 입김을 불어 불투명한 상태에서

눈 감던 인큐베이터 안의 갓난아기

아비의 눈동자에 숨결을 매달아 놓고 간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고 시를 외고 있다


퇴근한 타잔들이 닦아낸 빌딩에 안에서 형광등 불빛이 환하다

80년 전 정지용이 아직도 읽힌다


* 정지용의 「유리창」中





대 숲 그늘이 흔들리다 / 이영신


입동 지나 성벽을 따라 휘적휘적 걷다보면

묵묵히 버틴 성벽 속 깊은 맘 품어 안고

역사의 능선을 따라 조근조근 나를 읽다.


돌덩이 하나에도 온기가 흐르는데

오랜 시간 버틴 공간 바람처럼 떨쳐내면

산성은 조각보처럼 오밀조밀 새롭다.


고샅길 붓을 넣어 몸을 낮춰 예불하면

골 깊은 등줄기로 묻어나는 화두들도

듣는 이 가슴을 건너 사람손이 그립다.





엄마 없는 날 / 이은영


늦공부 시작한 엄마

학교 가는 토요일 새벽

수원 가시면

아침 일찍 일어나

동생을 깨워야 한다.


이불을 돌돌 싸고

꿈틀 꿈틀

겨우 눈 뜨고


엉금엉금

기어 나와

고양이 세수하고


양말 한 쪽 신고 한∼참

밥 한 숟갈 먹고 한∼참


학교 갈 시간은 자꾸 다가오는데

동생은 아직도 애벌레


이불이 고치 인가봐

둘둘 말고 안 나와


고치에서 나와

날아가자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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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심사에 넘어 온 작품집 가운데 주목을 요하는 작품집들로는 유종인의 시집「수수밭 전별기」, 이종성 시집「바람은 항상 출구를 찾는다」, 시조집으로는 문수영의「푸른 그늘」,그리고 동시집으로 곽해룡의 「맛의 거리」를 들 수 있었다.

  중에서 곽해룡의 「맛의 거리」를 쉽게 선정할 수 있었음은 큰 기쁨의 수확으로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유종인의「수수밭 전별기」에 보이는 풍경의 내면화, 몸으로 세상을 섞는 고통스러운 시산기의 아픔도 오래도록 남았다. 특히 ‘기침 소리’에서 떠오른 온몸으로 느끼는 섹시얼 인터코스는 전편을 압도하는 수작으로 오래 기억 될 만 하다고 느꼈다. 이종성의 시들도 상처 난 시간들의 증언과 치유에 의한 따뜻한 구원의식에 이르는 서정성의 동일 회복이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문수영의 시집「푸른 그늘」도 개인 내면의 정서를 섬세한 언어로 표출해내는 능력과 형식의 차이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곽해룡의 동시집「맛의 거리」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보이는 아이러니를 생산해 내는 솜씨와 사물들의 역발상이 매우 신선한 감각으로 다가와 감동적이었다. 「문상」,「동물원」,「거울 보는 아가」등 어느 하나 버릴 작품이 없는 것 같았다.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송수권

 

 


맛의 거리 / 곽해룡


  할머니가 옛날 사탕을 하나 주면서, 사탕 하나에 든 달고 고소한 맛이 얼마나 긴 줄 아느냐고 물었다 맛의 길이를 어떻게 재느냐고 되물었더니, 걸으면서 재보면 운동장 열 바퀴도 넘는다고 했다. 뛰면서 재면 스무 바퀴도 넘겠다고 했더니, 자동차를 타고 재면 서울에서 천안도 갈거라 했다 비행기 타고 재면 제주도도 가겠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사탕 하나 물고 다녀 올 수 있는 거리

황해도 옹진이 고향이신 할머니 

 


 




<본상>


본상 작품은 심사 규정대로 운문부에서 2명, 산문부분에서 1명을 500여 편 작품에서 선정하였다. 양적으로 결코 쉽지 않았지만 질적인 수준에서는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운문부문에서는 문정안의 시「독거 일기」외 4편, 서상규의 시조「뒤를 보시다」외 4편, 그리고 동화에서 박윤희의 「콩닥콩닥 할머니」외 1편을 선정하였다. 수필부문에서 당선작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문정안의 「독거 일기」외 4편은 상상력은 튀지 않으나 비교적 소재선정이 적확하고 시에 투입되어야 할 정신이 무엇인가를 알고 일관된 주제포착이 신뢰감을 주었다. 서상규의 시조 「뒤를 보시다」외 4편은 평시조의 단아한 그릇에 담기는 언어가 참신하고 비유감 또한 신선하면서 시가 가져야 할 서정의 그늘이 무엇인가도 알고 있어 오래도록 독공을 해 온 흔적이 역력했다. 박윤희의 동화「콩닥콩닥 할머니」외 1편은 동화가 가져야 할 상상력 깊이와 극적인 반전효과로 환타지를 빚어내는 솜씨가 돋보여 오랜 숙련을 거쳐 온 것 같아 즐겁다. 동화를 읽는 재미는 리얼리티에 주어지는 환타지의 처리가 관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위의 든 당선작품 이외에도 오래도록 심사숙고했던 작품은 시에서 한상록의 「한낮 」외 4편, 황재윤의 「포장마차 왕국」외 4편이었고 시가 지니고 있는 미덕인 ‘응축의 미학’에 산문화 경향을 띄고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시조에선 이우식의 「새벽 우시장」외 4편인데 시적 아우라와 참신한 소재 선택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수필에선 정병율의 「첨탑」, 박진옥의 「어린 시절의 외침」, 김무준의「두 번째 회상」을 들 수 있다. 세편 모두가 단일효과에 대한 응집력이 결함으로 지적된다. 동시에서 홍지민의「시골학교 운동회 날」외 4편을 주목하였으나 구태의연한 표현과 진부한 소재 선택이 문제점으로 남았다. 새로운 표현과 언어 비유가 따라 주어야 맛깔이 더 할 것 같다. 각 장르별로 종합하건대, 운문분야보다 산문영역 안에 들 수 있는 동화작품 「콩닥콩닥 할머니」가 상상력 깊이에서나 표현 언어 감각에서 훨씬 돋보였음을 덧붙이고 싶다.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송수권

 

 


독거 일기(詩) / 문정안


연이틀, 반 지하 셋방

쪽창으로 눈보라가 몰아친다

아귀가 맞지 않는 출입문으로

너덜너덜 바람만 드나는 집


후르르 지는 목련잎처럼

칠 벗겨진 비닐장판을 등지고

몸져누운 노파, 활처럼 휜 허리에

바람이 들어 뼈마디가 욱신거린다

쿨럭쿨럭 밭은기침 토해 낼 때마다

울컥, 핏덩이가 손바닥에 흥건하다


바람이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눈보라가 날파리떼처럼 쪽창을 두들겨도

그의 오래된 고막을 잡아끌진 못 한다

얼마나 오랜 세월 누워 지냈을까

등줄기에 온통 욕창이 도드라져있다


땀과 소변으로 물러터진 살점

몸 한 번 제대로 뒤척이지도 못한다

말라붙은 뱃가죽이 창자를 비틀지만

이젠 마른 침조차 삼키지 어렵다


햇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

연이틀 눈보라만 몰아치고

그의 길이 아득히 지워지고 없다   




뒤를 보시다(時調) / 서상규


누대의 가난살림에 햇살로 고삐 묶고

땀 흘린 밑거름에 곡식들을 살리시며

어둠을 괄약근으로 조인 생이 약해지셨다


충만한 뒤안길을 때 없이 배설하시는

‘변’을 ‘별’이라고 어머니가 섬김의 말로

새뜻한 별자리를 위해 뒤를 닦으신다


우주와 지구별의 연동운동 소통으로

피안이 열리면서 토지대장도 없는

신생의 별로 아버지, 숨길을 뻗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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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이섬 씨 등 4개 부문, 4명 당선 


(사)한국문인협회 계룡시지부는 올해『사계 김장생 문학상』 수상자를 선정 발표했다. 조선시대 후기의 대학자인 예학의 종장 사계 김장생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문학정신을 널리 기리는데 그 취지를 두고 있는 이 상은 올해로 네 번째에 접어들었다. 이번 상의 대상은 이 섬(시집 『초록, 향기 나는 소리』), 본상 시부문은 김영민(시 「열아홉 부근」), 시조부문은 송옥선(시 「옷을 꿰매며」), 산문부문은 윤영선( 동화 「비 오던 날」) 씨가 각각 차지했다. 본 상 당선자에게는 월간 《문학세계》 등단 자격이 부여된다.


당선자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 이 섬

<국민일보> 주관 국민문학상 시부문 당선. 기독교문인협회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 『누군가 나를 연다』 『향기 나는 소리』 『초록빛 입맞춤』 『사랑아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초록, 향기 나는 소리』, 에세이 『보통 사람들의 진수성찬』 『외갓집 편지』, 사화집 『25인 선집』 『빛의 성』 외  다수.


■ 김영민

과천여자고등학교 3년 재학 중. 전태일 청소년문학상 대상, 국립공원 시인마을 전국 문예작품 공모 입선, 대구대 고교생 문예공모 우수상, 박재삼 청소년문학상 수상, 아주대 공모전 우수상 외 다수 수상.


■ 송옥선

전주 출생. 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시와 의식』 시부문 등단. 가사문학관 주최 시조공모 최우수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우수상, <중앙일보> 지상백일장 월장원 2회, 안델센작품상 동화부문 최우수상 수상. 시집 『분실물코너』.


■ 윤영선

충북 제천 출생.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아동문학 전공. 치유상담원 <생각과 마음>, <어린이 책 작가교실>에서 상담 공부 및 글 공부함.


제4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당선작품





□ 대상 : 초록, 향기 나는 소리(시집) 대표 시


꽃밥 / 이 섬


비빔밥 위에 살포시 얹힌

빨갛고 노란 빛깔의 허브꽃

마음을 가라앉히고 근심을 덜게 한다는

꽃밥을 먹어보셨는지요?

꽃대궁에서 방금 따온 연노랑의 꽃잎과 꽃술

아직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꽃숭어리

차마 수저로 으깰 수가 없어

살살 젓가락으로 저어 주니

손바닥으로 얼굴을 폈다 감았다 하며

나와 눈을 마주친다

입안 가득히 향그러움의 잎맥과 씨앗들이 씹히는데

꽃의 살내음이 여리고 보드랍다

허기진 내 안에서 무심한 내 안에서

희망의 꽃물이 번질 것만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꽃이 되고 싶어

밥이 되고 싶어

마음도 생각도 가라앉혀 주고 염려도 덮어 주는

꽃밥이 되고 싶어.    




□ 본상 : 운문부문 대표 시


열아홉 부근 / 김영민


 독서실 가는 길, 바람이 허공을 흔들고 뺨 위로 달라붙는다 얼얼하다 도로변에 주차해있던 생선차에서 비린내가 길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다 어지럽다 MP3에서 발라드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흐리멍텅하다 잠을 설친 탓이다 어제 갔던 길을 되짚어 갈 뿐 모든 것이 낯설다 과천약국, 이삭토스트, LG텔레콤을 지나 버스를 기다리는 교복들과 마주친다 모두들 감각을 잃은 채 표정 없이 후줄근히 서 있다 던킨도너츠, 왕자포토, 헤어공작소, 오씨엘, 간판들이 시선을 어지럽힌다 정부청사역에서 쏟아져오는 사람들을 비집고 신호등 앞에 선다 파란 불이 문득 빨간 눈을 치켜뜬다 축 쳐진 플라타너스잎이 길바닥에 나뒹군다 제일쇼핑으로 들어가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줄줄이 숫자들이 흘러내린다 독서실 앞에서 피곤에 겨운 친구와 눈인사만 나눈다


 자리를 찾아 스탠드를 켠다 오늘따라 불빛이 창백하다 메가스터디 외국어 1000제, 인터넷수능 비문학을 꺼내든다 어느새 양옆에서 들리는 서걱서걱 거리는 연필소리 그래,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나는 열아홉 수능생이다, 수능생!




□ 본상 : 운문부문 대표 시조


옷을 꿰매며 / 송옥선


옷을 꿰맨다, 지난날 바늘에 찔린 상처

아팠던 기억을 묻고 걸어온 시간 그만큼

닳아진 옷 솔기들을 한 땀 한 땀 깁는다.


덧대고 꿰맨 자리는 옷의 훈장이다

추위와 바람 앞에 당당하게 맞서던 것

때로는 삶의 밑바닥을 차고 오르던 것

들춰보면 옷 속 깊이 난 상처가 보인다

깁고 또 기워도 숭숭 바람이 들던 날들

불면의 밤을 잇다가 속 쓰린 새벽을 맞이하던.


그 올실 꿰면 닳아진 영혼도 기워질까?

채우려 애쓸수록 공허해지는 가슴복판에

한조각 순수를 덧대어 영혼의 실금 꿰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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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그만큼 삶의 깊이 우려내(대상)

예심위원의 손을 거쳐 본심에 넘어온 시집을 모두 다섯 권이었다. <자라>, <교우록>, <함박나무 가지에 걸린 봄날>, <누님 동행>, <꿈꾸는 삶이 아름답다> 등이 제3회 김장생 문학상 대상 후보에 오른 것이다. 이들 시집은 남다른 저력과 저마다 개성이 묻어나는 시 문법(詩 文法)을 지니고 있었으며, 다채로운 언어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이 가운데 <함박눈가지에 걸린 봄날>과 <교우록>, 그리고 <누님 동행>은 특히 눈길을 붙잡았다.
작고 사소한 것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통해 삶의 오묘한 질서와 우주적 본성을 깨우치게 하는 <함박나무가지에 걸린 봄날>는 ‘자연의 섭리와 원리에 순응하는 세계’를 일깨워주고 있다.
‘비극을 말하되 비관에 빠지지 않고, 허무를 말하되 허망하지 않고, 성스러움을 뒤집지만 그것의 영광을 아예 박탈하지 않고, 자연의 비의를 말하면서 인간의 문명을 거기에 대립시키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은 <교우록>은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한 삶의 이면이 그 속에 담겨 있어 뒤늦게 우리를 소스라치게 한다’는 평론가의 지적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시집에 수록돼 있는 여러 시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사물과 풍경 속에서 시적 오브제를 끌어낸 <누님 동행>은 자연 사물을 통하여 발견하는 생의 이법(理法)을 보여주면서, 오염되지 않은 무공해의 바다와 같은 풋풋한 정취를 느끼게 하였다.
앞에 소개한 ‘다채로운 언어 풍경’을 펼친 대상 후보 시집들 가운데서 최종적으로 신필영 시인의 <누님 동행>을 제3회 김장생 문학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사계 김장생 선생이 누구인가?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한간 지어내니/ 반간은 청풍이요 반간은 명월이라/ 강산을 드릴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고 노래한 조선 중기 시조시인이며 정치가이자 예학 사상가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김장생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이 상의 취지와 목적에 합당한 시조시인 신필영의 <누님 동행>을 대상 수상작으로 뽑은 것이다.
좋은 문학은 자기가 살아온 그만큼 삶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신필영 시인은 20년이 넘는 시력(詩歷)을 쌓아오면서 비교적 단아하고 깊이 있는 시조 작품을 발표해온 중진이다. 그는 시조시의 엄정한 정형 율격을 고수하는 시인이다. 자연 사물과의 교응(交應)을 통한 삶의 원리를 제시하면서, 언어적 완결성을 지향하는 단아한 서정을 독자에게 선사하는 시인이다. 외중내졸(外重內拙). 밖을 중시하면 속이 졸렬해진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형식을 중시하면 내용이 치졸해진다는 뜻인데 그의 시는 그것을 절묘하게 극복해내고 있다. 시인은 이미 클리셰(cliche․진부한 표현)의 영역이 돼버린 시 문법을 멀리한다. 시인은 꽃샘추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2월에 <비껴든/ 예각의 햇살>이 <끌로 다듬는 가지>에서 <빈 말들>이 지워지는 풍경과, 거기서 어김없이 새로운 <햇말의 시>가 싹트고 있는 순간을 발견하고 있다. ‘폭포 감상’ 시편에서는 <폭포>를 대쪽 같은 모습이나 날선 검(劍)으로 유추하기도 하고, 폭포가 오래 꿈꾸었을 <모반>의 시절을 그리워한다. 이처럼 <오래 끌고 온 욕망>을 흘려버리고 <물기둥 안고 울부짖는 절벽 앞에> 서서 <유배지 같은 빈 산중>을 느끼고 있는 시인은, 폭포를 통해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반추하고 있기도 한다.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신필영 시인에게 축하를 보내며, 시조의 새 지평을 여는 동량(棟樑)이 되어 주기 바란다.



- 심사위원 : 윤금초 -

격조 높은 작품들의 투고로 질적 향상 계기 마련(본상)

올해에 치러진 제3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은 변화의 틀을 꾀했다. 특히 전국 지상백일장 형식에서 완전 탈바꿈하여, 신인에게는 등단의 기회를, 기성 문인에게는 창작의욕을 북돋은 실로 괄목할 만한 성장과 발전을 이루었다.
참고적으로 말하면, 기존 방식의 문학상은 전국문예 공모전 형식으로 아마추어급 문예대전이었고, 올해부터 바뀐 제도는 역량 있는 신인을 발굴하여 문단에 기여할 수 있는 등단 기회 또한 부여한 매우 참신한 제도이다. 즉, 김장생 문학상(본상)에 당선된 신인 작가는 동시에 종합문예지인 월간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는 영예가 주어진다.
그래서, 올해 투고작들의 수준은 신춘문예급 작품들로서 손색없는 작품들이 대거 응모되었다. 시(시조), 아동문학(동시, 동요, 동화), 수필, 소설 등이 두루 응모되었다. 운문 부문과 산문 부분으로 투고작들을 선발한다는 규정만 없어도 더 많은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고 싶을 만큼 뛰어난 작품들이 즐비하였다.
우선, 운문(시, 시조, 동시, 동요) 부문에 응모된 작품들은 수준이 매우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어떤 작품을 본심에 올릴지, 즐거운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작품 수준을 고려해 볼 때, 시와 동시가 운문의 장르로 본심에 올려졌다. 시 부문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옥빈의 <봄, 고향에 가면 그녀가 있다>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동시 부문은 송정미의 <창호지를 바르며>가 또한 당선의 영예가 주어졌다. 이 작품도 역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 그만큼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함께 투고된 작품들도 수준작들이 많았다.<빨래>같은 작품은 생활에서 건져 올려진 명품이었다. 그 외에도 최종심에 올려진 작품들은 소혜의 <쑥밥>과 임정빈의 <화척>, 황명희의 <노숙> 등이었다.
산문(수필, 동화, 소설) 부문에 응모된 작품들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치열하고 엄정한 심사가 진행되었다. 수필이 상대적으로 많이 응모되었고, 투고된 작품의 수준도 역시 고르게 분포되었다는 평가가 주요하게 작용되어, 심사위원들의 열띤 논의 끝에 수필이 산문의 장르로 본심에 올려졌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김영옥의 <괜찮은 선물>과 허지선의 <인연의 끈>, 이현주의 <행복한 자화상> 등이었다. 세 편 모두 제각기 목소리가 있는 개성있는 작품들이었다. 그 중에서 김영옥의 <괜찮은 선물>은 “감기”라는 평범하면서 일상적인 소재를 내면화하는 과정이 무리없이 진행되었고, 또한 제목과 주제와의 상관성이 멋지게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어 심사위원 전원이 수필의 당선작으로 뽑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함께 투고된 <세상에 튼튼한 뿌리 내리다> 같은 작품은 어느 문학상이나 신춘문예에 투고되어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수작이었다. 자웅을 겨뤘던 허지선의 <인연의 끈>은 기초가 탄탄한 작품으로, 이현주의 <행복한 자화상>은 이미지를 갈무리해나는 보법이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라 아쉬운 점이 많이 남았다.
권위있는 심사진에 의해 치러진 금년의 김장생 문학상은 세상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는 별들을 탄생시켰다. 이는 매우 신선하고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한번 당선된 작가들에게 축하의 박수를, 아깝게 탈락된 사람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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