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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심사에 넘어 온 작품집 가운데 주목을 요하는 작품집들로는 유종인의 시집「수수밭 전별기」, 이종성 시집「바람은 항상 출구를 찾는다」, 시조집으로는 문수영의「푸른 그늘」,그리고 동시집으로 곽해룡의 「맛의 거리」를 들 수 있었다.

  중에서 곽해룡의 「맛의 거리」를 쉽게 선정할 수 있었음은 큰 기쁨의 수확으로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유종인의「수수밭 전별기」에 보이는 풍경의 내면화, 몸으로 세상을 섞는 고통스러운 시산기의 아픔도 오래도록 남았다. 특히 ‘기침 소리’에서 떠오른 온몸으로 느끼는 섹시얼 인터코스는 전편을 압도하는 수작으로 오래 기억 될 만 하다고 느꼈다. 이종성의 시들도 상처 난 시간들의 증언과 치유에 의한 따뜻한 구원의식에 이르는 서정성의 동일 회복이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문수영의 시집「푸른 그늘」도 개인 내면의 정서를 섬세한 언어로 표출해내는 능력과 형식의 차이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곽해룡의 동시집「맛의 거리」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보이는 아이러니를 생산해 내는 솜씨와 사물들의 역발상이 매우 신선한 감각으로 다가와 감동적이었다. 「문상」,「동물원」,「거울 보는 아가」등 어느 하나 버릴 작품이 없는 것 같았다.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송수권

 

 


맛의 거리 / 곽해룡


  할머니가 옛날 사탕을 하나 주면서, 사탕 하나에 든 달고 고소한 맛이 얼마나 긴 줄 아느냐고 물었다 맛의 길이를 어떻게 재느냐고 되물었더니, 걸으면서 재보면 운동장 열 바퀴도 넘는다고 했다. 뛰면서 재면 스무 바퀴도 넘겠다고 했더니, 자동차를 타고 재면 서울에서 천안도 갈거라 했다 비행기 타고 재면 제주도도 가겠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사탕 하나 물고 다녀 올 수 있는 거리

황해도 옹진이 고향이신 할머니 

 


 




<본상>


본상 작품은 심사 규정대로 운문부에서 2명, 산문부분에서 1명을 500여 편 작품에서 선정하였다. 양적으로 결코 쉽지 않았지만 질적인 수준에서는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운문부문에서는 문정안의 시「독거 일기」외 4편, 서상규의 시조「뒤를 보시다」외 4편, 그리고 동화에서 박윤희의 「콩닥콩닥 할머니」외 1편을 선정하였다. 수필부문에서 당선작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문정안의 「독거 일기」외 4편은 상상력은 튀지 않으나 비교적 소재선정이 적확하고 시에 투입되어야 할 정신이 무엇인가를 알고 일관된 주제포착이 신뢰감을 주었다. 서상규의 시조 「뒤를 보시다」외 4편은 평시조의 단아한 그릇에 담기는 언어가 참신하고 비유감 또한 신선하면서 시가 가져야 할 서정의 그늘이 무엇인가도 알고 있어 오래도록 독공을 해 온 흔적이 역력했다. 박윤희의 동화「콩닥콩닥 할머니」외 1편은 동화가 가져야 할 상상력 깊이와 극적인 반전효과로 환타지를 빚어내는 솜씨가 돋보여 오랜 숙련을 거쳐 온 것 같아 즐겁다. 동화를 읽는 재미는 리얼리티에 주어지는 환타지의 처리가 관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위의 든 당선작품 이외에도 오래도록 심사숙고했던 작품은 시에서 한상록의 「한낮 」외 4편, 황재윤의 「포장마차 왕국」외 4편이었고 시가 지니고 있는 미덕인 ‘응축의 미학’에 산문화 경향을 띄고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시조에선 이우식의 「새벽 우시장」외 4편인데 시적 아우라와 참신한 소재 선택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수필에선 정병율의 「첨탑」, 박진옥의 「어린 시절의 외침」, 김무준의「두 번째 회상」을 들 수 있다. 세편 모두가 단일효과에 대한 응집력이 결함으로 지적된다. 동시에서 홍지민의「시골학교 운동회 날」외 4편을 주목하였으나 구태의연한 표현과 진부한 소재 선택이 문제점으로 남았다. 새로운 표현과 언어 비유가 따라 주어야 맛깔이 더 할 것 같다. 각 장르별로 종합하건대, 운문분야보다 산문영역 안에 들 수 있는 동화작품 「콩닥콩닥 할머니」가 상상력 깊이에서나 표현 언어 감각에서 훨씬 돋보였음을 덧붙이고 싶다.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송수권

 

 


독거 일기(詩) / 문정안


연이틀, 반 지하 셋방

쪽창으로 눈보라가 몰아친다

아귀가 맞지 않는 출입문으로

너덜너덜 바람만 드나는 집


후르르 지는 목련잎처럼

칠 벗겨진 비닐장판을 등지고

몸져누운 노파, 활처럼 휜 허리에

바람이 들어 뼈마디가 욱신거린다

쿨럭쿨럭 밭은기침 토해 낼 때마다

울컥, 핏덩이가 손바닥에 흥건하다


바람이 문고리를 잡아당기고

눈보라가 날파리떼처럼 쪽창을 두들겨도

그의 오래된 고막을 잡아끌진 못 한다

얼마나 오랜 세월 누워 지냈을까

등줄기에 온통 욕창이 도드라져있다


땀과 소변으로 물러터진 살점

몸 한 번 제대로 뒤척이지도 못한다

말라붙은 뱃가죽이 창자를 비틀지만

이젠 마른 침조차 삼키지 어렵다


햇살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

연이틀 눈보라만 몰아치고

그의 길이 아득히 지워지고 없다   




뒤를 보시다(時調) / 서상규


누대의 가난살림에 햇살로 고삐 묶고

땀 흘린 밑거름에 곡식들을 살리시며

어둠을 괄약근으로 조인 생이 약해지셨다


충만한 뒤안길을 때 없이 배설하시는

‘변’을 ‘별’이라고 어머니가 섬김의 말로

새뜻한 별자리를 위해 뒤를 닦으신다


우주와 지구별의 연동운동 소통으로

피안이 열리면서 토지대장도 없는

신생의 별로 아버지, 숨길을 뻗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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