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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당선작 발표


■ 대상


△ 수상작 : 김희업 시집 『칼 회고전』

△ 약력

- 서울 출생, 건국대 국문과,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 『현대문학』 등단('98)



■ 본상


△ 운문부문(시)

- 수상작 : 홍선영의 "유리창 읽는 타잔들"


△ 운문부문(시조)

- 수상작 : 이영신의 "대 숲 그늘이 흔들리다"


△ 운문부문(동시)

- 수상작 : 이은영의 "엄마 없는 날"




 




칼 회고전 / 김희업


당장 내게 들이대더라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오래전 칼이 내 몸을 두 차례 다녀갔기 때문

처음엔 낯선 방문자로 다가와 불쾌하게 굴던 칼,

모면하려 버둥거리다,

하는 수 없이 내 몸 칼에게 건네주었다

실은 두려웠던 건 칼끝의 감촉

살아야 한다고, 혹은 살려야 한다며

내 몸 수술대에 눕히고

칼은,

몸을 쓰윽 건드려 보았던 것이다

두 번째 칼이 방문했을 때는

서로가 서로의 몸을 탐색하듯

어서 내 몸 더 깊숙이

어딘가 있을 희망의 성감대를 찾아내어, 내심

건드려 주었으면 했다

그날 이후로 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지만

아, 알 수 없는 깊이를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오르가슴이냐!

깊이가 깊을수록 칼은 본분을 다한 것

칼의 용도란 그런 거구나

꽃 진 자리처럼 몸에 흉터로 남아 두고두고

생의 단맛 느끼게 하던 칼의 향기자국

결국 칼이 나를 살린 셈

그때 죽음을 찌르고 칼을 선택한 것은

너무 잘한 일이라 여겨진다




유리창 읽는 타잔들 / 홍선영


빌딩 바깥에는 줄을 타고 내려온 타잔들이 거품 질을 한다

밖에서부터 시작된 오래 묵은 얼룩을 벗겨내려고 그들은

커다란 빌딩 위에 달라붙어 하루의 점이 된다

테헤란로 빌딩 숲에서 살아가는 타잔은 곡예를 하듯

이 창에서, 저 창으로 팽팽한 줄 하나에 제 몸을 전부 준다


아아아-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따르는 치타도 없지만

도시에 사는 타잔들은 자식들에게서 찬사를 받는다

반짝거리는 창이 반사하는 햇빛은 누구에게나 속사정 같아서

타잔들은 깨끗이 닦인 유리창을 보며 소학교도 좋고 국민학교도 좋으니

죽은 아이를 그리던 옥천 어디 출신이라는 시인을 떠올리기도 했겠지


빌딩에 달라붙은 사내들이 고함대신 정지용의 시를 읊는다고

상상하자! 멀리서 보면 「유리창」에 붙은

행간과 행간 사이 사라진 마침표인 것도 같고

목숨을 담보로 닦아낸 노동의 거울인 것도 같아서

타잔들은 돌아갈 집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겠지


경력 삼년 차에 들어선 신입 타잔은 유리창에 비춘 자신과

빼닮았던 아들을 그리워한다, 입김을 불어 불투명한 상태에서

눈 감던 인큐베이터 안의 갓난아기

아비의 눈동자에 숨결을 매달아 놓고 간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고 시를 외고 있다


퇴근한 타잔들이 닦아낸 빌딩에 안에서 형광등 불빛이 환하다

80년 전 정지용이 아직도 읽힌다


* 정지용의 「유리창」中





대 숲 그늘이 흔들리다 / 이영신


입동 지나 성벽을 따라 휘적휘적 걷다보면

묵묵히 버틴 성벽 속 깊은 맘 품어 안고

역사의 능선을 따라 조근조근 나를 읽다.


돌덩이 하나에도 온기가 흐르는데

오랜 시간 버틴 공간 바람처럼 떨쳐내면

산성은 조각보처럼 오밀조밀 새롭다.


고샅길 붓을 넣어 몸을 낮춰 예불하면

골 깊은 등줄기로 묻어나는 화두들도

듣는 이 가슴을 건너 사람손이 그립다.





엄마 없는 날 / 이은영


늦공부 시작한 엄마

학교 가는 토요일 새벽

수원 가시면

아침 일찍 일어나

동생을 깨워야 한다.


이불을 돌돌 싸고

꿈틀 꿈틀

겨우 눈 뜨고


엉금엉금

기어 나와

고양이 세수하고


양말 한 쪽 신고 한∼참

밥 한 숟갈 먹고 한∼참


학교 갈 시간은 자꾸 다가오는데

동생은 아직도 애벌레


이불이 고치 인가봐

둘둘 말고 안 나와


고치에서 나와

날아가자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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