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철쭉꽃을 보며 울다/ 목정은
녹슨 철근이 어긋나는 소리 가청주파수의 정점 찍고 귓가로 들어온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슬쩍 내려놔보는 리어카 여자는 어깨가 뻐근하다 슈퍼 주인 눈총 온몸으로 받으며 몇 개 주워오지도 못한 라면박스 그나마도 물 먹어 흐물대는데 구겨진 손가죽 위로 늘어나는 것은 먼지가 끼어도 뺄 수 없이 비좁은 밭고랑 그렇게 극락이라던 서울은 사람 뿐 아니라 종잇장도 그렇게 넘쳐나 그렇게 헐값이다 무게를 가늠해보니 깊이 패인 주름이 뻐근해 한숨 내쉬는데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철쭉꽃 여자는 문득 기억도 나지 않던 수십 년 전이 떠오른다
겨울이면 눈물나게 추웠던 여자의 고향 여자는 겨울만 오면 여기서 칼바람에 코 베이느니 서울가 눈 뜨고 사람 손에 코 베이겠다고 서울타령하다 어미의 알밤 맞곤 했다 겨울이 그리도 얄망스럽던 고향 그래도 봄 오면 고 단내 나는 입 안 가득 연분홍 철쭉꽃 가득 물곤 했는데 여자는 분홍꽃 수줍게 머리에 꽂아보던 그때를 생각한다 윤기 흐르던 머리카락 이제는 파뿌리 듬성듬성 얽힌 검은 실타래만이 헐벗은 머리 감싸 안고 있는데 여름 오면 너도 나도 발가벗고 뛰어내리던 내린천 그대로 있을까 손가락 끝 주름 잡힐 정도로 멱 감다가 어두워질 때 즈음이면 허겁지겁 빤쓰 바람으로 집 내려와 와구와구 입에 집어넣던 옥수수 아 좋겠다 노랗고 고소한 것 그때 처럼 다시 한 번 입 안에 한가득 넣어봤으면
굽이굽이 산 너머 보따리 하나 챙겨들고 떠나오던 강원도 내 고향, 인제, 돌아가면 언제 도착하나 흐드러진 연분홍꽃 서울로 바득바득 꾀인 지아비 다방 레지년과 짐싸서 나른 후 슬하 자식 하늘로 상경시킨 죄 많은 여자의 보따리를 톡 터뜨린다 가.고.싶.다.돌.아.가.고.싶.다. 주문처럼 읖조리는 여자, 철쭉꽃을 보며 울다
[심사평] 시를 관통하는 자신만의 언어와 정서적 발현 방법
박인환 문학상의 제정은 당시대의 모더니즘modernism을 확대 발전시키는 취지라기보다는 박인환 시인이 당대에 모더니즘의 시적 창조성을 통해 한국시의 전통적 흐름을 바꾸면서 개안開眼하여 그가 새로운 문학적 지평을 열어 시적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한국시의 발전과 새로운 시적 성취를 가져 올 수 있는 참신한 신인을 발굴하여 시대성과 더불어 한국시를 발전시킬 역량을 키워낼 수 있는 신인을 발굴한다는 데에 주안점이 있다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시대에는 자신만이 가지는 독특한 정서적 발상과 환치능력, 그리고 그 내면을 다스리는 자신만의 언어와 정서적 환기력이 시인의 힘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잘 조화를 이루어 일구어내는 “감동을 내재시킨 시“가 좋은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박인환 시인의 시적 성취가 모더니즘modernism의 창조적 능력에 있다 하여도 그 힘을 모방한 “현대적 모더니즘”으로 포장된 시가 대학생들에게 기대하는 시라고 보기는 어렵다.
응모에 참가한 여러 편의 시 중에서도 간혹 박인환적朴寅煥的 모더니즘에 기대어 최근 주목을 받았던 미래파 요소를 곁들여 엽기성, 환상성, 애매성으로 포장한 시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젊은 시인들의 활달한 상상력과 신선한 감각과 내재 된 깊은 감동이 있는 시가 “실험정신”보다는 앞서야 하리라는 견해가 선자選者들의 공통적 의견이었다.
박인환 시인의 성취에 버금가는 시적 상상력, 그리고 활달한 언어들이 빚어내는 정서적 발흥이 시의 “감동”을 주관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그래야 한국시의 발전과 가능성에 기여하게 되리라는 선자選者들의 고뇌에 따라 시 읽기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시적 발전 가능성과 언어를 다루는 힘이 느껴지는 시가 있었지만 그에 값하는 감동에 이르는 데에는 미흡하다는 판단에 근거하여 아쉽지만, 대상大賞 작품을 내기에는 다소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종 심사에 오른 목정은의 “여자, 철쭉꽃을 보며 울다.”와 유하연의 “이른바, 마지막”, 그리고 하운정의 “방동 약수터 이야기” 3편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위의 세 편을 놓고 토의를 한 결과 목정은의 “여자, 철쭉꽃을 보며 울다.”를 최우수상 작품으로 정하자는 의견을 모으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운정의 “방동 약수터 이야기” 등은 너무 지역의 특성이나 향토적 정황에 결부된 주제를 다루고 있고, 시적 소재를 다루는 솜씨나 그 구조적 탄탄함에는 호감이 갔지만 전체를 통과하는 이미지가 매우 단조롭고 평면적인 증명사진과도 같은 시적 왜소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음을 밝혀 둔다.
유하연의 “터진 노을”은 시의 해독에 다소간 지적 상상력이 필요해 보였다. 그가 보낸 몇 편의 시가 매우 고르고 안정적이며 시언어를 다루는 능력이 돋보였지만, 시 속에 장치한 사물의 공간이 경우에 따라서는 미래파 적 요소인 엽기성이나 애매성이 투영되어 의미망을 포착하는 공간이 다분히 자기담론적 성향을 보여주어 충분한 연결성에 의문이 일었다.
그에 비하면 “이른바, 마지막”은 철쭉꽃이 피는 모습의 형상화가 돋보였다. 그러나 도입부인 첫째 연의 형상화가 다소 시적 연결에 괴리감을 주어 충분한 의미망을 형성하면서 그 절실함을 담아내지 못한 아쉬움이 엿보여, 아쉽지만 우수상 작품으로 선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목정은의 “여자, 철쭉꽃을 보며 울다”는 활달한 언어들이 상상력과 잘 결합 되어 있는 시로서, 첫째 연에서 “극락이라던 서울은 사람뿐 아니라 종잇장도 그렇게 넘쳐나 그렇게 헐값이다.”라든가, 둘째 연에서 “겨울만 오면 여기서 칼바람에 코 베이느니 서울 가 눈 뜨고 사람 손에 코 베이겠다고 서울타령” 하던 여자를 등장시키고, 셋째 연에서 “서울로 바득바득 꾀인 지아비 다방 레지년과 짐 싸서 날아간 후 슬하 자식 하늘로 상경시킨 죄 많은 여자”로 늙어버린 삶의 곤고함을 활달한 상상력과 결합하여 “보따리를 톡 터뜨린다 가.고.싶.다.돌.아.가.고.싶.다.”는 언술로 그 삶의 역정을 관통하며 “주문처럼” 고향을 그리워하는 원초적 그리움을 철쭉꽃 터짐으로 형상화한 솜씨가 돋보였다.
이번 심사를 통과하여 당선된 새로운 신인들의 시적 향상과 발전에 보다 큰 기대를 걸며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 심사위원 유창섭. 권순영. 전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