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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나비 판화 / 최영희

 

 

요양병원 치매 병동의 노인들은

일어나면 끌을 가지고 저마다 뭔가를 새긴다

삐꺽거리는 침대에 걸터앉아

혀끝에서 사라진 말을 곰곰이 떠올린다

양각으로 드러나는 동그라미 얼굴

조각조각 파내면

초록 비린내를 풍기는 눈동자

병실 밖 세상이라도 다녀오고 싶은

한 마리 날갯짓이 방향을 잃는다

끌로 깊이 그어낸 네모난 집

풍경을 잘못 도려내 사라진 어린 시절

난해한 지도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닫힌 출구에서 문고리만 덜컹거린다

어둠이 깃들어 기억할 순 없어도

바람의 문신을 채워 날개를 그린다

균형이 맞지 않아 한쪽으로만 기우는 기억

물감 자국만 남아있을 뿐

지워진 그림자는 볕으로도 찍을 수 없어

꽃이 피지 않는 그림은 미완성이다

날카로운 끌로 파내기를 반복해도

좌우가 뒤섞인 노인의 오늘은

판화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한다

 

 

올해 20회를 맞는 김포문학상의 대상에 소설부문 박하성(경북 김천)씨의 <떠도는 섬들>이 선정됐다.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회장 송병호)와 의)우리의료재단 김포우리병원(이사장 고성백)이 함께하는 제20회 김포문학상 전국공모에 전국의 신인 작가 및 문인들이 응모해, 예심과 본심의 엄정한 심사를 거쳐 김포 문학상 및 신인상 부문별 선정 결과가 나왔다. 김포문학상은 올해로 20회째로 회가 거듭할수록 응모율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으로, 현재 총 상금은 1,500만원이다.

올해 김포문학상의 우수상에는 시 부문 최영희(서울 금천)씨의 <나비 판화 외4편>과 시조부문 이숙자(경기 파주)씨의 <바리스타 카페 외4편>이, 수필부문 수상작품은 고옥란(광주광역시 광산)씨의 <덤 외 1편>등 총 4명이 선정됐다.

한편, 김포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김포문학 신인상에는 장년부 수필부문 문승운(운양동)씨의 <우리의 딸들 외1편>과 장년부 시부문 김옥란(고촌읍)씨의 , 청년부 시부문 홍지은(풍무동)씨의 <3초 외 4편>등 총 3명이 선정됐다.

이번에 본심 소설과 수필 부문을 심사한 백시종 소설가는 심사평을 통해 "본심에서 올라온 수십 편의 글들이 모두 아쉽고 안타까웠다. 작품의 완성도와 범상치 않은 문체, 잘 짜여진 스토리 등 깊은 사유 속에서 건져낸 존재의 의미와 자유로운 영혼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작품들이 많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 부문을 심사한 허형만 전 목포대교수는 "탄탄한 시적 사유와 따뜻한 시선으로 본심에 올라온 시들이 각기 실존적 삶의 의미와 깊은 사유를 드러내고 있었다"라고 전하며, 심사를 하면서 전반적으로 느낀 소감으로 "요즘 시를 왜 어렵게만 쓰려고 하는지, 독자와의 원활한 소통은 물론 작품을 통해 내면적 삶을 성찰하게 하고 따뜻하게 해줄 수는 없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고 전했다.

한편, 김포문학상 시상식은 2021.12.4.(토) 오후 ‘2021 김포문인협회 송년의 밤’에 앞서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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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산벚나무를 읽는 저녁 / 최재영

 

물에 젖기 위해

백년을 걸어가는 나무가 있지요

퉁퉁 부르튼 맨발 사이로

세상의 저녁은 소리없이 스며들고

다가오는 천년을 가만 응시하느라

나는 바싹 가물어 있었지요

간절함은 어디에도 기록할 수 없어

한 획씩 혈관을 파고 들어갈 때마다

산벚의 흰 그늘까지 움찔거렸겠지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제 근원의 몸부림으로 뜨거웠던 시간들

그대의 다급한 호흡은

어떤 이의 애달픈 기록이었을까요

산벚이 거느린 골짜기들이

일제히 먹빛의 힘으로 일어서는 저녁

경판에 서려있는 푸른 맥박소리

온 산 가득 울려 퍼지는데

먹물보다 진한 핏빛눈물 하얗게 쏟아지네요

오래 전 생의 바깥에 등불을 밝힌 이들은

지금도 구국의 화엄을 새기고 있을까요

봄이면 경판 속의 활자들 환하게 피고지고

짜디짠 소금기 허옇게 일어서는지

골짜기마다 산벚나무는 절뚝이며 피어나요

팔만의 꽃잎들이 봄의 한복판을 걷고 있어요

 

* 산벚나무 : 고려시대 몽골 침입 당시 조성된 팔만대장경의 경판으로 쓰였으며

벌채한 나무를 판자로 자른 후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말린 후 옻칠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 대상수상소감 - 최재영 >

다시, 가을입니다. 맑은 하늘과 형형색색으로 가득 채워진 들녘과 자연은 많은 문학인들에게는 가슴 벅차게 도전하고픈 소재를 안겨주고도 남겠지요. 물룬 단순히 풍경을 노래하는 것이 “시”가 될 수는 없으므로 표면적 소재의 내재화를 위해서는 많은 밤시간을 할애하여야 할 것입니다.

김포문학상 응모를 하면서 망설이기를 여러 번, 몇 날을 뒤척이기도 했는데요. 등단 햇수도 십 수 해가 되어가니 스스로 부끄러웠는지도 모릅니다. “시”를 쓴다는 일이 어떤 문학적 성과를 담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무언가를 도모하고 싶어지는 졸렬한 성정을 무엇에 비유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습니다만 최소한 시는 졸렬하거나 치졸하지 않으려 나름의 노력을 했다는 것에 자부심 내지는 박수를 보내려 합니다.

산벚나무를 글감의 소재로 쓰면서 오래 전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벌어진 치욕과 살육에 몸서리치며 저항했을 우리의 조상을 떠올려 보는 일은 참으로 가슴 뻐근한 일이었습니다. 희미하게 꺼져가는 나라를 구하려는 그들은 얼마나 애닲은 심정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만 뼈를 깎는 고된 과정을 거쳐 만든 팔만대장경판은 고스란히 우리 민족의 절박한 심정, 그 자체였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하여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산벚은 해마다 가슴 한 켠으로 아프게 파고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시를 써 온 날보다 앞으로 써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래야 하겠지요. 또한 그 사실에 한껏 안도하면서도 은근히 걱정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문학상이라는 이름으로 주시는 상은 그에 상응하는 작품으로 보답해야 하는 것이기에 부단히 갈고 닦으라는 채찍이라 생각합니다. 염원하던 주택으로 이사를 하며 삶의 터전을 다시 일구느라 분주한 가운데 당선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몇 계절을 소비하면서 잠시 소홀했던 내 시를 돌아보고 어루만질 수 있도록 따뜻한 기회를 주신 것만 같아 기꺼운 마음입니다.

다시 뜨겁게 “시”를 품겠습니다. 그리하여 생의 어느 한 곳은 “시”로써 채워지기를, “시”의 한복판을 즐거이 고뇌하며 걸어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시”로 인해 기뻐하고 분노함에 주저하지 않기를 겨울 쪽으로 기울어가는 숲과 바람을 마주하며 되뇌어 봅니다. 용기를 북돋워주신 김포문협과 관계자분들, 심사위원들께도 큰 절 올려 감사드립니다.

 

 

 

 

 

[우수상] 파키라 여인 / 이용호

 

사람을 멀리하던 그녀는 오늘도

화원 한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새벽에 길을 묻고 물어 걸어온 출근길

바오바브나무처럼 굵어진 팔뚝으로

화원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간밤에 아프지는 않았니

네 상처도 이제 곧 뿌리를 내리겠지

일일이 식물들과 눈을 맞추고 살피는 건

하늘이 부여해 준 그녀의 책무

말없이 앉아 공상하거나

가끔씩 물을 마시고

밖에 나가 하늘을 보고 볕을 쬐다 보면

어느새 발바닥이 간지러워

이제 뿌리가 돋는 것일까

각질이 뚝뚝 떨어지는 발부리에서

거친 황야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나도 식물처럼 이 지상에 정박하고 싶어

어머니, 이제 저를 이곳에 뿌리 내려 줘요

아마 너도 발부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선

먼저 모든 걸 스스로 버려야 한단다

어머니의 지청구가 화원에 매일 가득차면

이제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바람 한점에 슬픔을 놓아 주고

적당하게 흔들리는 줄기와 가지를 지닌 채

말없는 파키라 한 채로 화원에 눕는다

 

 

< 우수상 수상소감 - 이용호 >

수상 소식을 전화로 받은 때는 공교롭게도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전화기 너머 건너온 반가운 목소리의 감흥을 뒤로 한 채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에서 가까운 불암산 봉우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저마다의 단풍으로 가을을 물들이고 있는 산의 모습이 처연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렇게 세상에 아름답게 물들어 갈 수 있는 시를 과연 나는 지금 쓰고 있는가하고 제 자신에게 되물어 보았습니다. 지금은 번잡한 일상의 시간을 마치고 저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이번에 제출했던 제 시를 다시 읽어 보는 밤입니다.

예년 같았으면 시월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하며 지인들과 약속을 잡거나 산을 찾아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일상의 삶은 단풍처럼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만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문학은, 시는, 나의 시는 과연 무슨 존재 의미가 있을까 고민해 보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자기의 일터에서, 가정에서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의 이웃들이 있습니다.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세상. 제 시는 바로 이런 분들께 바치는 마지막 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게 있어 시 쓰기는 세계와 인간의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지상의 포유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기 구원의 행위였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기대고 자신의 영혼에 힘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세상을 아름답게 지켜내는 따스한 시를 쓰겠습니다. 언어 미학이라는 허울 아래 정작 시를 쓴 시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 날선 이미지와 감각의 전위 등으로 포장해 소수의 사람들만 읽는 시가 아니라 인간의 진심과 이 세상을 아름답게 읽어 내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되도록 밤을 새워 읽고 또 쓰겠습니다.


상을 주신 김포시의 여러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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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꽃은 뱀을 몰고 온다 / 김미나

 

꽃은 뱀을 몰고 온다고 하였다

그때 나무는 아득히 묻힌 땅 속의 긴 폭풍을 가지고 왔다

소용돌이치면서 피어나는 것은

 

꽃이 아니라 꽃살문에 비치는 햇볕

 

흙 속에 허물을 길게 벗어두고 튀어 오르는 뱀을,

우리는 구불거리는 나무라고 불렀는데

가지 끝에 매달린 그늘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데

 

나무는 두근거리는 비을을 안은 채

대가리로 공기와 흙을 밀어낸다, 그때

꽃은 독을 질질 흘리고

입에선 한 점 봄이 질질 새어나오고

 

툭 불거진 뱀을 ㅁ\보고

그만 발자국은 꽃잎을 밟고 혼비백산,

산안개 자욱했던 봄도

발이 달려 있는지

발톱만큼, 개미걸음만큼

꽃이 비늘을 몰고 오듯이

걷고 있었다

꽃을 먹는 것들이 사는 마을

지붕 너머 쓰러진 사람들 두고

불쑥 떠오른 구름인 줄 알고

딴청 피우듯이 새소리를 찔러 넣고 다녔다

 

< 수상소감 >

행복하면 불안하고 불행하면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제 행복을 망치려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저의 주변인까지 힘들게 했습니다. 그 까닭으로 제 행복이 불안하고 힘들었습니다. 내가 행복하면 다시금 나와 내 주변인들이 아파할거라는 생각이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행복을 증오해서 자꾸만 숨어들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 다시 행복해보자며 끌어내준 나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저는 저의 행복을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이 되었고 더 이상 나의 행복이 불안하지도, 증오스럽지도 않습니다. 제 행복을 보며 “수고했다”라고 진심으로 말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또, 나의 사람들과 행복의 감정을 나누어줄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김포문학상에게 감사합니다.
한창 갈피를 잡지 못했을 때 무작정 여행을 떠났습니다. 뜻밖의 여행에서 저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났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제 시가 되어주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되어준 모든 사물과 자연과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행복’을 정의 내리고 싶어서 노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결국 아직까지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 정의 내리지 못했지만 아마 저는 지금 행복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행복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하겠지만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더 잘 보이는 거라고,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더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그 불행에게도 감사하고 “덕분에”라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모든 것들과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행복하겠습니다.

 

 

 

 

[우수상] 봄엔 다 그래요 / 노수옥

 

우리 집 자()들이 조금씩 자랐어요

그만큼 세상의 길이들은 줄었겠지요

의자들은 부풀고요 치마들은 뚱뚱해졌어요

언니들은 뒷굽을 조심해야 해요

평지들이 뒤뚱거리니까요

 

봄엔 다 그래요

할머니는 초록 머리카락이 새로 나고

흔들리던 이빨은 모두

새로운 뿌리가 생겨 단단해졌대요

지친 아지랑이가

노인의 이마에 와서 눕고요

삼각 혹은 길쭉한 씨앗도 모두

동그란 열매를 생각한대요

 

나도 새로운 말투로 말 몇 개를 바꿔야겠어요

말은 관계들 사이를 헐렁하게 풀어놓고요

이름마다 보풀이 일어나요

저녁이 되면 전등이 저벅저벅 걸어와요

조심해, 그건 넘어지는 방법이야

새로운 말투로 알려주고 싶어요

 

봄의 모서리가 줄어들면

태양은 더 둥굴어지고

밤은 착한 마음씨처럼 훈훈해져요

창문은 문틈에 푸른 귀를 매달아요

다 자란 삼각자는 삼각을 낭비하고요

줄자는 길이를 낭비해요

그건 헤픈 것이 아니래요

길이를, 사이를 줄이려는 거래요

봄엔 다 그렇대요

 

< 수상소감 >

끝을 눈여겨보겠습니다

“끝이니까” 라는 말을 “시작이야” 라는 말로 오해하겠습니다
모든 순위(順位)를 존중합니다
아득한 수평선을 만나면 일부러 넘어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처음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모든 것이 처음이고 결과입니다
봄에 그랬다면 여름에도 가을에도
다 그럴 것입니다

주저하며 응모한 시가
빛나는 순위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어떻게 긍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분명 미흡한 시였습니다
심사위원님들의 감사한 선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기쁨일이 일어났겠어요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시의 길로 인도해주신 마경덕 선생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문학상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해주신 박선생님
힘이 되어주는 중앙대 잉걸회 문우님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격려를 아끼지 않는 딸 윤정이 아들 영진이네 가정 축복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는 남편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언제나 내편이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시>

제18회 김포문학상 공모에 시 부문은 모두 865편의 시가 응모되었다. 그 중에서 예심을 통과해 내게 온 詩 마흔 한 분의 작품과 동시 열다섯 분의 작품들은 매우 진지한 태도로 세계를 관찰하는가 하면 최근 우리 시의 도전의식을 보여주는 젊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지역과 연령층에 상관없이 응모작 속에 좋은 작품이 많다는 뜻이다. 김포의 지역성이 문학을 매개로 해서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반증이어서 반가웠다.

최종심에는 다섯 분의 작품이 올라왔다. 박정애(전북 군산)의 「두바이, 두바이」는 한 편의 시에 서사를 앉히면서 어떤 박진감 있는 분위기를 능숙하게 연출한다. 상상의 폭이 넓고 언어는 활달하다. 다만 드라마틱한 서사를 구성하면서 극단적인 시어를 자주 등장시키는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활자를 눕히거나 불필요한 부호를 남용하는 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 신진향(경기 광주) 「마트료시카와의 인터뷰」는 친근한 구어체를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시에 적지 않은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하고 있다. 거침없는 전개 능력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사유의 힘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그게 수다스럽고 장황하다는 인식을 주면서 감점 요인이 되었다. 「소경목림」의 김종화(인천 부평) 응모자에게도 앞에서와 같은 지적을 해주고 싶다. 시가 단정한데 갑갑하고 깜찍한데 불안하다. 목소리가 명랑하지만 조급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세 분에게는 시의 호흡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동시 부문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있어 최종심에 올리지 못했다.

우수상으로 뽑은 김미나(경기 구리)의 「꽃은 뱀을 몰고 온다」는 전통적인 서정이라고 부를 만한 세계를 자신만의 기법으로 차분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후반부로 가면서 원래 제시했던 꽃과 뱀과 나무의 이미지를 변주하는 능력도 만만치 않다. 삶의 구체성에 더 렌즈를 들이대보라는 말을 하면 욕심일까. 노수옥(경기 안양) 「봄엔 다 그래요」를 또 다른 우수상으로 골랐다. “우리 집 자(尺)들이 조금씩 자랐어요/ 그만큼 세상의 길이들은 줄었겠지요” 이렇게 시작하는 서두는 단번에 독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봄이라는 계절의 아름답고 섬세한 변화를 감각적인 이미지에 실어 표현한 이 시의 따뜻한 여운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수상자에게는 술 한 잔을, 고배를 마신 분들께도 또 술 한 잔을.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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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그늘의 공학 / 박정인(본명 박정옥)

 

 

느티나무에 출입금지판처럼 옹이가 나붙었다

 

옹이는 막힌 길,

가지가 방향을 바꾸는데 걸린 시간의 배꼽이다

다다르지 못한 초록에게서

필사의 아우성이 이글거릴 때

직박구리 한 마리, 옹이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수액 길어 올리던,

이제 사라진 가지의 길을 물고 대신 새가 가지를 친다

 

빼곡한 이파리들을 그늘의 아비라 믿은 적 있다

자드락비가 다녀가고,

아비는 제 몸에다

개칠(改漆)에 개칠을 더해 눈부신 여름을 예비했지만

나무 아래엔

그늘을 덮고 누운 햇살의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린다

 

이파리를 빼닮은 이파리 그림자가

그늘 한 칸 짜는 동안

말매미도 손마디만 한 제 그림자를 그늘에 보태겠다고

둥치에 업혀 맹렬하게 울어댄다

 

저 맹렬이면

광장을 들어 하늘에 띄울 수도 있겠다

맹렬을 심장이 내는 발톱이나 이빨, 때론 그윽한 눈빛으로 쓰는

한낮의 이파리가

흠씬 땀을 흘렸을까 나무 아래 서니

소금 냄새가 난다 그늘에 드리운 자그맣고 서늘한 염전이다

 

그늘을 위해 모두가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오후 두 시

느티나무 아래엔 아직도 그늘이 모자란다

매미가 제 소리의 그늘까지 내려 깔고 있다

 

 

▶제17회 ‘김포문학상’ 전국 공모 심사평

대상작 시 <그늘의 공학>, 그늘에 대한 관찰과 상상, 발견 돋보여

우수작 수필 <치매>, 생활경험에 대한 풍부하고 안정된 필력 인정키로

우리는 이름을 가린 채 번호만 먹여 예선에서 건너 온 20명의 작품 130편의 작품을 윤독했다. 최종적으로 세 분의 작품으로 좁혀 수상자를 검토하기로 했다. 최종 거론된 세 분은 시 <등과 가슴의 거리> 외 9편, 시 <그늘의 공학> 외 9편, 수필 <치매> 외 2편을 응모하신 분들이었다. 논의한 결과 우리는 시 <그늘의 공학>을 대상으로, 수필 <치매>를 우수상으로 선정하는데 합의했다.

시 <그늘의 공학>은 그늘에 대한 관찰과 상상, “이파리를 빼닮은 이파리 그림자가/ 그늘 한 칸 짜는 동안/ 말매미도 손마디만한 제 그림자를 그늘에 보태겠다고/ 둥치에 업혀 맹렬하게 울어 댄다”는 발견이 돋보였다. 다른 시 <칠게>에서 강과 바다가 엎지른 밀실이 갯벌이라는 상상, <폭포>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심상이 돋보이는 시였다. 어쩌면 우리는 <폭포>를 대상작으로 하려고 했으나 ‘겁탈’이라는 표현이 걸렸다.

우수상으로 합의한 <치매>는 수필이나 다른 양식의 산문에서 흔한 소재여서 호기심이 덜하고 덜 매혹적이었다. 그렇지만 전반부에 “어머니는 결혼 생활 중 병원에 계신 날들이 가장 자유롭고 마음 편하셨던 것 같다.”는 진솔함과 “어머니는 치매가 꽃처럼 왔다”는 시를 읽어가는 것 같은 문장들이 우리를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 <뚜껑>이나 <무> 등도 가족과 살림을 제재로 한 작품들이어서 소재의 매너리즘을 느끼게 했지만, 우리는 새롭진 않지만 생활경험에 대한 수사가 풍부하고 안정된 필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시 <등과 가슴의 거리>는 일단 제목에 호감이 갔다. 시를 읽어가면서 “한 몸이었으나 만날 수 없는 등과 가슴”이라거나 “등은 가슴을 덮어주는 바람벽”이라는 발견의 대단함이 있었다. 동전의 앞뒤처럼 한 몸이지만 서로 보지 못하는 관계의 발상이다. 그러나 시를 다 읽었을 때 뭔가 덜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다른 시 후반부 발상이 앞의 시와 반복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른 시들도 첫 시를 넘어서지 못했다.

우리는 심사 과정이나 심사평을 쓰면서도 응모자의 이름 등 일체의 정보를 묻지 않기로 했다. 아직 이름을 모르는 두 수상자 분의 발전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유안진 시인 / 공광규 시인)

▶제17회 ‘김포문학상’ 전국 공모 대상

박정인(본명 박정옥) 당선소감

한 때 저는 저의 졸시 ‘고가의 분꽃’ 이란 시에서 분꽃씨 속으로 저를 가만히 밀어넣고 땅에 꼭꼭 재워 둔 적 있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라고 세례를 주듯 큰 상으로 물뿌려 주시니, 싹 터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7년을 품어온 시가 제게 여전히 무뚝뚝해서 많이 지쳐 있을 무렵, 그래도 詩 외는 달리 의지할 곳이 없는 저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당선통보를 주셨는데 무덤덤하게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로 느껴졌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이번 전국 규모 김포문학상은 기성시인을 포함하는 상이라 저는 투고 자체를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응모하지 않으면 떨어질 자격도 없다” 는 시인님들 말씀이 생각나서 마감시간을 십여 분 남겨두고 클릭한 것이, 이렇게 큰 행운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응모 한 후 저는 습관처럼 마음 비우는 일에 열중하며 소설을 읽거나 시를 읽거나 그냥 쓰고 또 썼습니다.

이 자리가 있기까지 장을 열어주신 김포문협에 감사드립니다. 각양각색의 강의로 시창작의 근육을 키워주신 김포문예대학 유종인 정병근 문성혜 윤성택 조동범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열린문학회, 송빈관, 달詩동인님들 함께해주셔서 행복하고 고맙습니다. “곧 소식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신 맹문재 교수님과 동작문학반 문우님들께도 기쁜 소식 전합니다. 한결같이 응원하며 지켜봐준 나의 벗바리, 히터께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주영 석천 지혜 정훈 승훈 그리고 준후 지후 아주 많이 사랑해요.

부족한 제 시를 선해주셔서, 먼 길 나선 저에게 나침반을 놓아주신 유안진 교수님과 공광규 시인님, 두 분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흔히 하는 인사말이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용기를 가지고 써라는 격려라 믿겠습니다. 상의 뜻을 마음 판에 새기고 즐겁게 읽고 정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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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zoom) / 우옥자

 

횡단보도 저쪽에서 걸어오는 한 남자, 낯익다

나를 지나쳐 빠르게 카운트 다운하는 신호등을 바라본다

어디서 스친 적이 있나

끌어당긴 그의 잔상을 인파에 놓쳐버렸다

 

다가온 것이 흔들리다 또렷해질 때

나비의 발자국이 머문 꽃술, 꽃받침의 솜털까지

소름 돋는 섬세한 표정

한 장의 세밀화에 음영陰影이 깊어지는, 숨 막히는 매혹이다

 

찰칵! 꽃 하나

사각의 프레임 속에 갇히고, 그예

끌려간 탄력만큼 천천히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눈동자

한 발짝 한 발짝 초점 흔들리며 꽃이 번진다

 

내게 왔던 것들이 그렇게 멀어져 갔다

 

내 안의 수많은 뷰파인더를 뒤적거리다

희미해지는 그림자를 오래 지켜보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쯤

흐린 배경을 뒤로하고 홀연 도드라져 빛나는 피사체

진경은 그 적막한 심상에 맺히는지

나는 서둘러 그 순간을 박제하는 것이다

 

행성들이 운행을 계속하며 다가왔다 멀어져가고

어느 것들은 천년을 돌다 부딪쳐 불꽃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아득한 거리에서 오고 있는 풍경을 기다리며

가뭇하게 지평선 끝으로 사라지는 너를

막 배웅하는 중이다






 

[우수상] 비누 / 박소미

 

아무리 아침을 닦아도 길이 불투명 합니다

햇살은 등만 달구고 손이 시근거립니다

골목마다 시궁창 냄새로 미끈거립니다

집안에서 털어낸 안개는 역류하고 환풍기가 물거품을 건져냅니다

대문 안은 안녕 합니까

 

천 갈래 물길 속에서 골똘합니까

무수한 알리바이로 얼룩져 있습니다

누군가 무례한 계략을 오래 쓰다듬어서 뭉뚝한가요

어떤 날 불온한 기도를 굴리면 둥근 각에 찔리나요

 

어슴새벽 여자는 속옷에 배인 밤꽃냄새를 다 덮었을까요

심장을 문질러도 눈동자는 눈물을 가두고 녹아내리지 않습니다

안방에서 마당을 지나 대문까지 검정 발자국 또렸합니다

하이힐이 아카시아 향을 일으키며 골목을 빠져나갑니다

눈치 빠른 구름은 비를 뿌리고 개운합니까

손등은 비 소리만 적셔도 투명해집니다

또 다른 음모를 묻혀도 좋습니다

 

주름진 죄목을 들쳐보며 말라갑니다

중심부터 닳은 뒤축처럼 기울어져갑니다

좀 더 철두철미 할 수 없었니

 

그녀는 자꾸만 미끄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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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저울 / 서상민

 

시도 때도 없이 아내는 저울에 올라선다

잔뜩 힘을 주어 홀쭉하게 아랫배를 집어넣어보지만

저울은 섣부른 기대를 용서하지 않는다

 

딸아이는 저울에 올라서기를 망설인다

깊게 호흡을 뱉고 저울에 올라서지만

저울은 호흡의 무게를 모른다

 

아무도 없는 밤이면 나는

저울에 올라서서

형광등에 비친 그림자의 무게가

저울 위에서 잠시 깜박인다

 

어젯밤 뱉어버린

자책의 말들은 얼마만큼의 무게인가

 

반성이 무서운 나를

반성을 모르는 저울이

주눅 들게 한다

저울의 눈치를 봐야하는

가난한 나는 더욱 뚱뚱해진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묻는데

저울은 숫자만을 내 보인다

 

숫자가 나의 문장이 된다

나의 문장이 무릎을 꿇는다

 

눈 떠서 감을 때까지 나를 폭식하는

저 잔혹한 무게를 언제 내다 버리나

 

 

 

 

 

[우수상] 당선작 없음

 

 

수상소감

강물은 끊임없이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 걸까? 그 끝은 어디일까? 끝이 있기는 있는 걸까? 시는 강물과 같아서 흐르면서 어디론가 나를 이끌어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건 모르는 것에 대한 황홀한 오해였으니, 내 말들이 부패되고 발효되서 나와 세상의 경계를 넘어 황홀한 오해에 가 닿기를 원한다.

우리는 누구나 21세기의 산을 오르는 알피니스트. 산을 오른 뒤 정상에서 펼쳐지는 숲을 보고 싶다. 나무 갈피에서 이는 연두색 바람이 밤의 적막을 피워내고 그 숲에서는 두 발을 갖고 두 손을 지닌 선한 짐승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이별이 상속되는 지구별에서의 만남은 불완전하고 아쉬운 일이겠지만 김포문예대학에서 문우님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문학에 대한 문우님들의 열정은 위대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투박한 제 손을 잡아주셔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문성해 시인님 감사합니다. 제 자폐의 언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작은 징검돌 하나 놓아주신 이문재 심사위원님 거듭 감사합니다. 내 시의 첫 번째 독자인 아내여 세상에는 가끔 느닷없는 기쁨도 있구나. 아들아 딸아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단다. 너희들의 길을 열렬히 사랑해라

 

심사평

김포문학상 본심 심사를 맡아 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퍼뜩 든 생각이 '고향냄새'였다. 김포는 내가 나고 자란 고장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천광역시 서구로 편입됐지만, 내가 스무 살 초입, 고향을 떠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내 주소는 김포군 검단면 마전리 102번지였다.

김포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나올까 내심 설렜다. 김포평야, 김포 쌀, 김포공항을 비롯해 김포읍, 고촌, 양곡, 마송, 대명 같은 지명은 물론 해병대와 적가시(敵可視) 마을로 대표되는 분단 현장까지 응모작들이 김포의 역사와 현실을 어떻게 감싸 안고 있을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의외였다. 황해도 연백에서 피란 내려온 아버지의 신산한 삶을 다룬 시 한 편을 제외하면 김포와 직접 연관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상을 결정하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방> 외 5편을 응모한 서상민 씨의 작품이 단연 돋보였다. 5편이 고른 수준이었는데 <저울>과 <오래된 책> 두 작품이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높았다.

약간의 고심 끝에 <저울>을 대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오래된 책>은 책을 매개로 과거의 한 순간을 떠올리면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균형 감각이 세련돼 보였다. <저울>은 저울로 대표되는 사회적 압력에 대응하는 가족 구성원의 표정이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후반부에 자기 성찰이 가세하면서 가벼운 문명비판시를 뛰어넘는다. “반성이 무서운 나를/반성을 모르는 저울이/주눅 들게 한다”와 같은 구절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서상민 씨의 향후 작품 활동이 기대된다.
당선자에게 거듭 축하를 드리고, 본심에 오른 분들께도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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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 / 송병호

 

좁은 고샅길

 

돌아도 돌아도 언제나 제자리인 그 골목엔

천형의 상처 안고 똬리 튼

골 깊은 손금들이 있다

 

명랑이발관의 해맑은 미소를 지나쳐 엇갈린

오복담뱃가게 생명선은 차마

풍년쌀가게의 재물선과 영영 만날 수 없는 구획이 되었다

그나마 속셈학원의 아직은 흐릿한 장래선만

또렷한 선이다

 

실선들 흐릿해 질 때마다 칙칙한 배경의

가끔 끊어졌던 동시상영, 두 편의

영화는 오간 데 없고

낡은 영사기 한 대,

골목 끝 짓무른 앵글로 바람을 채록하고 있다

 

한때는 민심을 쥐락펴락했을 선과 선의 공존,

바닥이 다른 위의 電線

깨진 유리창 밖으로 내일을 점치지 못하는

도시의 손금으로 남아 있다

 

手相學은 믿을게 못 된다고 툴툴거리며

다 닳아빠진 지문을 가지런히 포개

혼자 졸고 있는 노파

 

 

 

 

 

 

 

[우수상] 헛발을 딛다 / 민옥순

 

환호 같기도 한 비명으로

바닥을 치고 싶었다

 

마루를 움켜잡았다

작은 손으로 산산이 부서져서

다섯 평의 마루를 안을 수 있다니

 

내 손이 헛발을 딛고서야

접시는 쨍한 소리로 외출을 하였다

 

조각조각 소리의 날이 서 있다

날선 것에 가을빛이 찔린다

날선 가을빛은

낡은 십자가에 헛발을 딛어

색을 입혀 바른다

 

하늘엔 먹구름이 헛발을 딛자 비가 내리고

비는 기러기 하루치 울음을 밟으며 간다

새 울음소리가 나무의 우듬지 흔들며 간다

신갈나무 잎들은 즐거이 헛발을 딛으며 떨어진다

떨어지는 나뭇잎 헛발 끝에 들국화 피어나자

또 한번 향기의 헛발로 발이 빠진다

 

유월

온몸으로 헛발을 딛어

바닥에 먹그림 그리는 버찌처럼

헛발 딛은 마음으로 수묵화 한 장 그리고 싶다

 

 

 

■ 제14회 김포문학상 심사평 / 문성해(시인)

"돌발적 사고의 전복에 닿으려는 노력 엿보여"

심혈을 기울여 쓴 응모작(시, 수필,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 암울한 시대를 건너는 뗏목이 문학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응모작들은 대체적으로 일상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듯 하나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돌발적인 사고의 전복에 닿으려는 노력이 엿보였으며 이는 문학이 가지는 미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조로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한 행 한 행마다 단비처럼 서려 있었고 누구도 하지 못한 표현을 찾는 일에 골몰한 나머지 표현의 과잉사태까지 빚어지는 응모작들 또한 여럿 있었다. 김포대교를 건너와 내 손에 닿은 작품들을 볕에 앉아 읽는 일은 따스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가까이서 누구랄 것 없이 글줄을 매만지는 분들이 있다는 자체가 훈훈했고 그 소재나 이야기 너머에 감춰진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또한 훈훈했다. 누구를 올려도 이 상에 결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순위를 매김 없이 다시 몇 번을 계속 들여다본 결과 능숙하고 숙련된 솜씨를 할 것인가? 다소 거칠지만 개성 있는 목소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찾아왔다.

<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는 달동네의 자잘한 골목들을 손금에 얹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수작이다. 발상 자체가 신선하고 한 연 한 연에서 손금에 대한 맥을 잃지 않고 끝까지 밀고 간 힘이 돋보인다. 다만 행과 행 사이에 다소 부드럽지 못한 연결이 읽는 재미를 앗아간다는 게 흠이다. <헛발을 딛다>는 일상생활에서 얻은 소재를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 않고 점차 자연물로까지 뻗어나간 상상력이 돋보인다. 접시를 놓친 손을 두고 손이 '헛발을 딛는다'는 발상 자체도 재미있고 접시가 깨지는 상황을 <접시는 쨍한 소리로 외출을 하였다>라고 한 감각도 돋보인다. 다만 시상의 흐름이 기존의 서정시들에서 보았던 익숙한 맥락이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두 편의 시중에서 고민하다가 다소 거칠지만 나름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낸 <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를 대상으로, 시를 빚어내는 능숙함이 돋보이는 <헛발을 딛다>를 우수상으로 민다.

두분에게 축하를 드리며 선자(選者)의 둔한 안목으로 선에 들지 못하신 많은 분들에게도 문학이 끝까지 위로와 즐거움으로 찾아가 드리길 빈다.

■ 당선소감 / 송병호

질서 없는 문장들이 헛발로 미끄러졌던 수많은 날들에 감사

첫 시집 『궁핍의 자유』에서 '꽃이 자기 향기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내 삶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 다는 것이 두렵다'고 적었습니다. 극히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만연체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리 화려한 치장도 계절이 몇 번 바뀌는 틈에서 변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2013년 가을, 시청앞 버스정류장에 붙은 '제12회 김포문학상공고'를 보고 빛바랜 노란풍선의 팽창하는 공기처럼 느꼈던 극한 긴장을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질서 없는 문장들이 나뭇가지에 둘로 셋으로 겹쳐 앉으려다가 헛발 디뎌 미끄러지는 것을 보고 잇속을 드러내 혼자 웃었던 그때가 이만치에서 저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성도 거의 잊히는 나이에 소름 돋는 사유들이 젊은 시절 교회행사였던 '문학의 밤'을 기억해내기도 전에 "나야 나"하고 홀연 꽃씨가 내리는 것을 보고 곧바로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그때 실수가 오늘 저의 모습인 셈입니다.

목회 현장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공간에서 저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해주신 문인협회 임원분들과 정병근 강사님, 문예대학 동기 여러분들의 햇솜 같은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 선생님께 이처럼 큰 상을 주신데 진심으로 고마움과 감사의 뜻을 하늘 문을 여는 마음으로 평생의 평안을 진심으로 축복하여 기도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문득 성구 한절이 생각납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 3:14).
2015년 12월 목사 송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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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껌 딱지 / 박완규

 

한 때 나는 껌을 지나치게 씹어

치과에 다닌 적이 있다 지금 나는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쌓인 기억들을

되씹느라 새벽잠을 설치곤 한다

껌은 씹다 버리면 그만이지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 껌은

떨어지지 않는다

 

치매기 있는 노모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녹음테이프를 틀 듯

찬밥처럼 식어진 옛 이야기를

단물 빠진 껌을 씹듯 들려준다

 

새우처럼 등 굽은 할머니가 껌을 들고

비좁은 전철 안을 왔다 갔다 하며 반복해

들려주는 구슬픈 하모니카 소리가

껌 딱지처럼 귀에 붙어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길바닥에 검게 붙어 있는 껌 딱지들이

내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노인이 되어가는 나는 누군가 씹다 버린

껌이 되어 구두 밑창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껌 딱지는 아닐까






 

[우수상] 살구를 닦다 / 박정옥

 

오래된 살구나무아래 떨어진 살구들이

옛일을 말하고 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살구빛깔이 꽃보다 환하다는 말을 할 때는

 

살아있는 보석 같기도 하고

맹목의 내리사랑 같기도 하여

한 알 집어 드는데 옆구리가 터져 있다

 

어머니, 입덧이 심했다던 각싯적

마당귀를 쪼며 놀던 병아리들은 너무 멀고

한입 깨물고 싶던 살구는 계절을 비껴갔다는 얘기

 

마디마디 옹이가 박힌 당신의 손을

다정히 잡아드리지 못한 나는, 애써 따지 않아도

농익어 툭 툭 떨어지는 살구들처럼

당신의 입 밖에서만 흥건하다

 

살구의 터진 옆구리에 덧붙은 흙 알갱이들과

마른 풀잎조각들을 털어내며

내게 오려다 다친 살구들을

손수건 대신

손바닥으로 손바닥으로만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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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멸치 / 나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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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나무의 기도 / 이기은

 

바람이 불면 성심으로 기도하는 나무를 본다

어깻죽지 아프도록 뻣뻣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하늘 향해 삿대질 하던 가슴으로

허리 굽혀 기도하는 나무들의 마음이 푸르다

푸른 기도에 화답하는 하늘빛은 더욱 푸르다

해묵어 허리 굽은 나무는 따로 기도하는 시간이 없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이다

어린나무들일수록 거친 엄마의 팔뚝으로

뒤통수를 꾹 눌러 인사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나무는 인사 할 줄 모른다

더군다나 기도하는 법은 더욱 모른다

밤이 오고 가는 만큼 세월이 흘렀다 싶을 때 쯤

바람은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감추고

축적된 시간만큼 묵직한 걸음을 뚜벅뚜벅 옮긴다

지레 놀란 나무는 방향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문법에도 맞지 않는 기도문을 외워대지만

늙은 나무는 늘 일정한 방향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성성한 가지를 공손하게 구부린 모습은

아마도 철부지 나무들에게 기도 하는 법을 가르치듯

그리하여

철부지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습관처럼

머리 조아리며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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