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저울 / 서상민
시도 때도 없이 아내는 저울에 올라선다
잔뜩 힘을 주어 홀쭉하게 아랫배를 집어넣어보지만
저울은 섣부른 기대를 용서하지 않는다
딸아이는 저울에 올라서기를 망설인다
깊게 호흡을 뱉고 저울에 올라서지만
저울은 호흡의 무게를 모른다
아무도 없는 밤이면 나는
저울에 올라서서
본
다
형광등에 비친 그림자의 무게가
저울 위에서 잠시 깜박인다
어젯밤 뱉어버린
자책의 말들은 얼마만큼의 무게인가
반성이 무서운 나를
반성을 모르는 저울이
주눅 들게 한다
저울의 눈치를 봐야하는
가난한 나는 더욱 뚱뚱해진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묻는데
저울은 숫자만을 내 보인다
숫자가 나의 문장이 된다
나의 문장이 무릎을 꿇는다
눈 떠서 감을 때까지 나를 폭식하는
저 잔혹한 무게를 언제 내다 버리나
[우수상] 당선작 없음
수상소감
강물은 끊임없이 어디를 향해 흘러가는 걸까? 그 끝은 어디일까? 끝이 있기는 있는 걸까? 시는 강물과 같아서 흐르면서 어디론가 나를 이끌어가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건 모르는 것에 대한 황홀한 오해였으니, 내 말들이 부패되고 발효되서 나와 세상의 경계를 넘어 황홀한 오해에 가 닿기를 원한다.
우리는 누구나 21세기의 산을 오르는 알피니스트. 산을 오른 뒤 정상에서 펼쳐지는 숲을 보고 싶다. 나무 갈피에서 이는 연두색 바람이 밤의 적막을 피워내고 그 숲에서는 두 발을 갖고 두 손을 지닌 선한 짐승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이별이 상속되는 지구별에서의 만남은 불완전하고 아쉬운 일이겠지만 김포문예대학에서 문우님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문학에 대한 문우님들의 열정은 위대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투박한 제 손을 잡아주셔서 이곳까지 왔습니다. 문성해 시인님 감사합니다. 제 자폐의 언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작은 징검돌 하나 놓아주신 이문재 심사위원님 거듭 감사합니다. 내 시의 첫 번째 독자인 아내여 세상에는 가끔 느닷없는 기쁨도 있구나. 아들아 딸아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은 있단다. 너희들의 길을 열렬히 사랑해라
심사평
김포문학상 본심 심사를 맡아 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퍼뜩 든 생각이 '고향냄새'였다. 김포는 내가 나고 자란 고장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인천광역시 서구로 편입됐지만, 내가 스무 살 초입, 고향을 떠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내 주소는 김포군 검단면 마전리 102번지였다.
김포 이야기가 얼마나 많이 나올까 내심 설렜다. 김포평야, 김포 쌀, 김포공항을 비롯해 김포읍, 고촌, 양곡, 마송, 대명 같은 지명은 물론 해병대와 적가시(敵可視) 마을로 대표되는 분단 현장까지 응모작들이 김포의 역사와 현실을 어떻게 감싸 안고 있을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의외였다. 황해도 연백에서 피란 내려온 아버지의 신산한 삶을 다룬 시 한 편을 제외하면 김포와 직접 연관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상을 결정하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방> 외 5편을 응모한 서상민 씨의 작품이 단연 돋보였다. 5편이 고른 수준이었는데 <저울>과 <오래된 책> 두 작품이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높았다.
약간의 고심 끝에 <저울>을 대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오래된 책>은 책을 매개로 과거의 한 순간을 떠올리면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균형 감각이 세련돼 보였다. <저울>은 저울로 대표되는 사회적 압력에 대응하는 가족 구성원의 표정이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후반부에 자기 성찰이 가세하면서 가벼운 문명비판시를 뛰어넘는다. “반성이 무서운 나를/반성을 모르는 저울이/주눅 들게 한다”와 같은 구절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서상민 씨의 향후 작품 활동이 기대된다.
당선자에게 거듭 축하를 드리고, 본심에 오른 분들께도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국내 문학상 > 김포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7회 김포문학상 수상작 (0) | 2019.12.01 |
---|---|
제16회 김포문학상 수상작 (0) | 2018.08.26 |
제14회 김포문학상 수상작 (0) | 2018.08.26 |
제13회 김포문학상 수상작 (0) | 2018.08.26 |
제12회 김포문학상 수상작 (0) | 2018.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