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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껌 딱지 / 박완규

 

한 때 나는 껌을 지나치게 씹어

치과에 다닌 적이 있다 지금 나는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쌓인 기억들을

되씹느라 새벽잠을 설치곤 한다

껌은 씹다 버리면 그만이지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 껌은

떨어지지 않는다

 

치매기 있는 노모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녹음테이프를 틀 듯

찬밥처럼 식어진 옛 이야기를

단물 빠진 껌을 씹듯 들려준다

 

새우처럼 등 굽은 할머니가 껌을 들고

비좁은 전철 안을 왔다 갔다 하며 반복해

들려주는 구슬픈 하모니카 소리가

껌 딱지처럼 귀에 붙어 있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길바닥에 검게 붙어 있는 껌 딱지들이

내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노인이 되어가는 나는 누군가 씹다 버린

껌이 되어 구두 밑창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껌 딱지는 아닐까






 

[우수상] 살구를 닦다 / 박정옥

 

오래된 살구나무아래 떨어진 살구들이

옛일을 말하고 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살구빛깔이 꽃보다 환하다는 말을 할 때는

 

살아있는 보석 같기도 하고

맹목의 내리사랑 같기도 하여

한 알 집어 드는데 옆구리가 터져 있다

 

어머니, 입덧이 심했다던 각싯적

마당귀를 쪼며 놀던 병아리들은 너무 멀고

한입 깨물고 싶던 살구는 계절을 비껴갔다는 얘기

 

마디마디 옹이가 박힌 당신의 손을

다정히 잡아드리지 못한 나는, 애써 따지 않아도

농익어 툭 툭 떨어지는 살구들처럼

당신의 입 밖에서만 흥건하다

 

살구의 터진 옆구리에 덧붙은 흙 알갱이들과

마른 풀잎조각들을 털어내며

내게 오려다 다친 살구들을

손수건 대신

손바닥으로 손바닥으로만 닦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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