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상] 가방이 무겁다 / 최종월
친구 하나 벽제로 떠나는 아침
눈이 얼어 반짝인다
누군가의 흔적만 저만큼 찍혀 있다
아무도 없다
뽀드득, 흰 발자국을 나도 찍는다
포구로 가는 내 가방이 무겁다
검은 장갑 끼고 움켜쥔 가방에 쑤셔 넣은 것들이 무겁다
너는 삼베 장갑 끼고 가벼이 떠나간다
삼베옷 입고 누워 립스틱 옅게 바르고
네가 잘 부르는 노래처럼 곱게 화장했다
유리벽 너머에서 낯선 청년이 정성껏 해주었지
서해 물길이 상류로 다시 밀린다
지금은 밀물 때
염하*의 유빙들이 흰 띠를 이루고 느리게 흐른다
벽제로 가는 친구야
저럴 수는 없을까
시간도 다시 거슬러 오른다면
오늘 아침 나처럼
베옷 벗고 거울 앞에 앉아 곱게 화장하렴
너는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
우리 만나려고 각각 문을 나서자
흰 광목 띠 길게 풀고
유빙들이 고요히 흐른다
어디쯤에서 물이 되리라
조각난 저 물결
한 덩어리 바다에 닿아 출렁이리라
무리에서 벗어난 갈매기 한 마리가
퇴역함 갑판에 서 있는 나에게
꺄륵, 길을 묻는다
유빙, 흰 광목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염하 : 강화와 김포 사이의 해협
[우수상] 신문 / 권혁남
아침은 현관 밖에 매달린 주머니 속 아우성 소리로 시작 된다
어제의 바보상자에서 다루지 않은 섬세한 기름내를 풍긴다
범생이의 생각을 벗어난 내일의 휴지는 신선한 반찬을 주시하던 눈을 자극한다
그러다 금새 쓰디 쓴 입맛을 본능처럼 퉤퉤 뱉어 내게 한다
늘 식상한 반찬으로 올려지는 물가와 경제
갑론을박 치는 아우성들은 여름에 지겹게 듣던 매미소리
옹색한 변명들은 자기 합리화로 마감되어
아침 한쪽 모퉁이를 침범하는 햇살을 너질러지게 할 뿐이다
여름을 버텨내던 철지난 가격표는 반값 울음을 토해내고
부지런히 아침 청소차에 매달려 달리는 환경 미화원의 모습은
잠시 허수아비 같은 상념에 갇혀있던 희망을 엮게 한다
오늘 아침은
뜨겁던 여름날 새벽 아버지의 부음을 되새기게 했다
김포문인협회가 수여하는 ‘김포문학상’ 본상에 최종월 시인의 시, ‘가방이 무겁다’가 당선됐다. 우수상에는 권혁남 시인의 시 ‘신문’이 선정됐다.
최종월 시인은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이후 ‘문학시대’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반쪽만 닮은 나무 읽기’가 있다. 권혁남 씨는 경기도 양평 태생으로 방송통신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해 현재 한글문해교사로 활동중이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김포문학상’은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시창작 전담강사 및 영주신문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역임한 유종인 시인의 심사를 거쳐 당선자를 선정했다.
유종인 시인은 본상 당선작에 대해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실존을 삶의 한가운데 놓고 새삼 성찰하는 감각이 유장하다”고 평가했다.
제10회 김포문학상 시상은 다음달 김포문학 28호 출판기념회와 함께 개최된다.
'국내 문학상 > 김포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2회 김포문학상 수상작 (0) | 2018.08.26 |
---|---|
제11회 김포문학상 수상작 (0) | 2018.08.26 |
제9회 김포문학상 수상작 (0) | 2018.08.26 |
제8회 김포문학상 당선작 (0) | 2018.08.26 |
7 (0) | 2018.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