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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나무의 기도 / 이기은
바람이 불면 성심으로 기도하는 나무를 본다
어깻죽지 아프도록 뻣뻣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하늘 향해 삿대질 하던 가슴으로
허리 굽혀 기도하는 나무들의 마음이 푸르다
푸른 기도에 화답하는 하늘빛은 더욱 푸르다
해묵어 허리 굽은 나무는 따로 기도하는 시간이 없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이다
어린나무들일수록 거친 엄마의 팔뚝으로
뒤통수를 꾹 눌러 인사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나무는 인사 할 줄 모른다
더군다나 기도하는 법은 더욱 모른다
밤이 오고 가는 만큼 세월이 흘렀다 싶을 때 쯤
바람은 부드러움 속에 강함을 감추고
축적된 시간만큼 묵직한 걸음을 뚜벅뚜벅 옮긴다
지레 놀란 나무는 방향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문법에도 맞지 않는 기도문을 외워대지만
늙은 나무는 늘 일정한 방향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성성한 가지를 공손하게 구부린 모습은
아마도 철부지 나무들에게 기도 하는 법을 가르치듯
그리하여
철부지 나무들은 바람이 불면 습관처럼
머리 조아리며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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