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가장 낮은 곳의 말言 / 함종대

 

 

발톱은 발의 말이다

발은 한순간도 표현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나는 낮은 곳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짓눌리거나 압박받는 곳에서 나오는 언어는 어감이 딱딱하다

그렇다고 낮은 곳 아우성이 다 각질은 아니어서

옥죈 것을 벗겨 어루만지면 이내 호응한다

늦은 퇴근 후 양말을 벗으면

탈진하여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발가락들이 하는 말을 더럽다고 외면한 날이 많았다

안으로 삼킨 말이 발등으로 통통 부어오른 날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나에게 내미는 말을

나는 야멸차게 잘라내며 살았구나

오늘은 발을 개울에 데려간다

물은 지금 머무는 곳이 가장 높은 곳이라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아는 양

같은 족을 만난 듯 온몸으로 감싸 안는다

발이 내어놓는 울음인지 물의 손길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감정이 봄나무에 물오르듯 올라온다

머리를 낮게 숙여 두 손으로 발을 잡아본다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는지 볼까지 흠뻑 젖었다

개울이 발의 울음소리까지 보듬는 걸 보면

오래전부터 산의 발등이나

나무들의 발가락을 어루만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개울도 울컥거릴 때가 있어 강에 발을 담근다

바다는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 하구를 보듬는다

장사가 어려워 가게를 폐업하던 날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뭍의 등을 철썩철썩 쓸어내린다

 

 

 

 

예스이십사

 

deg.kr

- 에드픽 제휴 사이트로 소정의 수수료를 받습니다.

 
 
 

[당선소감]

 

농작물을 해치는 유해조수 퇴치용 울타리 지원사업이 있어 읍사무소에 밭 울타리 신청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당선 전화를 받았다. 낙선한 줄 알았는데 늦게 받은 소식이라 더욱 기뻤다. 부족한 글에 손 내밀어 주신 심사위원님, 전북도민일보에 더욱 노력하는 참신한 글쟁이 모습으로 보답하고자 한다.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읽고 감동 받을 수 있는 눈높이 낮은 시에 큰 울림을 새기고 싶다. 

 

위에서 ‘유해조수有害鳥獸’ 라는 단어를 쓰기는 했지만 그 들은 내 글의 뿌리이며 줄기다. 지게 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다닐 때나 7km 정도 산길을 걸어서 등하교하던 시절 보았던 산토끼 고라니 멧돼지들은 지금까지 내 습작 노트 속을 뛰어다닌다. 무엇엔가 쫓기던 고라니가 건너편 산등성이까지 치달아 문득 멈춰 서서 뒤돌아보듯 마흔을 넘기며 책을 다시 잡았다.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호사는 바라지도 않는다. 새벽 2시에 일어나 도매시장엘 다닌 지 30년 가까이 되었다. 상인들이 가게 문을 열기 전에 물건을 납품하고 4시에 우리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 현실 탓을 하며 주저앉고 싶기도 했다. 글을 포기한 날보다 한 줄 글이라고 쓴 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 글감을 마음에 품고 일했다. 그러다 보니 원가 이하로 물건을 팔아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부족한 남편을 반듯한 아비로 남편으로 포장해 준 아내 박경혜에게 당선의 공을 돌린다.

 

 

 

[심사평] “낮은 곳에서 서로 힘이 되는 것들의 속내를 미려하게 묘사”

 

‘시인은 ‘시’를 매개로 사람과 사물의 본질을 구현하고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파장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준으로 202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작품 673편을 읽는 동안 여러 번 행복하였다. 너무 많은 비유가 오히려 흠집을 내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지만, 사물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역량껏 드러낸 좋은 작품들은 시간을 두고 찬찬히 새겨읽고 싶었다.

 

여러 번 정성 들여 읽는 단계를 거쳐 1차로 선정한 일곱 작품은 「서폐」, 「눈과 발」, 「가장 낮은 곳의 말」, 「동백낭 아래」, 「회색 늑대」, 「유성」, 「마두금」이었다. 일곱 개의 시를 되풀이하여 읽고 난 후 「서폐」와 「눈과 발」, 「가장 낮은 곳의 말」을 2차로 선정하였다. 

 

박승균 님의 「눈과 발」은 적절한 수사와 시적 장치들이 좋았고, 차분하게 주제를 끌고 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뭉클한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읽을 맛도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선가 있을 법한, 그리고 어느 작품에선가 본 듯한 결말이 마음 한구석을 서운하게 했다. 

 

노수옥의 님의 「서폐」는 ‘책허파’라는 독특한 소재를 온전히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능숙한 언어의 운용이 돋보이고 작품의 분위기를 책임지는 시적 화자의 시선 처리와 묘사도 정연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경합했으나 매우 아쉽게 되었다. 

 

202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함종대 님의 「가장 낮은 곳의 말」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가장 낮은 곳의 말」은 시상을 무리하게 전개하지 않으면서, 청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매끄럽게 써 내려간 작품이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도 시의적절하였다. ‘발톱’이라는 오브제에서 시작한 시적인 사유를 거침없이 확장해내는 활달함도 돋보였다. 낮은 곳에서 서로 힘이 되는 것들의 ‘속내’를 미려하게 묘사해내는 점도 작가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했다. 대한민국 시단에 무르익은 기량을 맘껏 펼치시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김영(시인, 전북문학관장)

 

 

 

 

728x90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 / 김종태

 

 

뉴타운 소문을 태우고 마을버스가 들어왔다

 

미숫가루처럼 흙먼지만 내려놓고 폐교를 한 바퀴 돌더니

 

제비처럼 고샅길을 빠져나갔다

 

언젠가부터 절개지 묵정밭엔 어린 의혹들이 심겨지기 시작했다 깨진 항아리 속에 갇혀있던 뻐꾸기 소리에 둔덕 까마중 몇, 복부인 같은 선글라스를 끼고 귀고리를 흔든다 전과자인양 담장 안을 기웃거리던 햇살, 굴다리 밑으로 잠입하고 배 밭으로 달려간 그림자 하나가 이른 아침부터 풍선 불 듯 바람의 평수를 후후- 부풀린다

 

두부장수 확성기에 귀를 열던 도토리들 일제히 상수리나무를 버린다 선거벽보 어지럽게 붙어있는 축대 아래, 사방치기 놀이를 하던 아이들 오후가 오랜만에 찾아온 밀짚모자 주위로 몰려든다

 

뻥튀기 소리에 놀란 해바라기, 발밑에 검은 태양들을 투투둑- 파종하고 늦게 외출한 채송화는 발뒤꿈치를 높이 꺼내 분꽃의 망설임을 흔든다 태양이 시작되면 빨간 인주통이 열렸다 몇 평 봄이 처분되는 계약서 그 끝, 마을경로당에선 코스모스와 금잔화가 형광빛 포스트잇처럼 끝도 없이 유예되고 있었다

 

이장 집 옆 모과나무가 늙은 귀띔이라도 들은 걸까 오래된 우물 속에다 노란 주먹을 툭툭 박았다 내가 헐값에 처분했던 그 시절 변두리 네온사인과 외딴집에 세를 든 귀뚜라미의 지하 방엔 오래도록 해가 들지 않았다 지난밤 거처를 잃은 두견새와 갑작스레 약수터에서 쫓겨난 달빛은 창문 틈에 허리가 끼어 아침까지 웅웅거렸다

 

누가 분실한 것일까

 

공사 중인 안테나처럼 힘껏 꼬리를 세운 고양이 한 마리

 

방금 눌러 찍은 붉은 태양이 채 마르지도 않은 부동산 계약서를 입에 물고서

 

인적 드문 논밭을 검은 천 조각처럼 가로질러 어디론가 재빨리 구겨지고 있다

 

 

 

 

 

[당선소감] “앞으로는 내가 세상을 로 위로할 차례

 

패딩점퍼처럼 눈을 껴입은 세상이 고딕체로 서 있었다. 애타게 기다리던 삶의 목록들이 연착되고 있었다. 측은지심의 영혼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시 쓰기. 내 가냘픈 노래는 원고지 속에서 자주 익사했다. 악보의 실루엣이 보이면 음정이 삐걱거렸다. 부러지고 흔들리는 것들이 시가 된다고 믿었기에 앞만 보고 계속 노를 저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몇 년 전의 내가 나에게 웃으며 손을 내민다. 살고 싶어서 시의 소맷자락을 간절히 붙들었다. 시는 나를 살려주시려고 보내준 그분의 언약궤였다. 이제는 내가 세상을 위로할 차례이다.

 

한 시도 의 램프를 끄지 않는 시시각각(詩視刻各) 스승님과 따뜻하고 치열했던 나의 도반들과도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치지 않도록 응원해준 아내와 두원, 예은 고맙고 사랑합니다. 지난해 하늘로 가신 어머니, 늘 막내아들을 자랑스럽게 믿어주셨는데, 하늘 향해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벼랑 끝에 선 제 시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신 전북문인협회장 김영 시인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마음이 춥고 외로운 이들에게 손난로가 되어줄 그런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11번가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2022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 응모작을 읽는 시간은 어떻게 시를 써야 울림이 깊은가에 대해 다시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천 편이 넘는 응모작에는 막 시를 쓰기 시작한 듯한 사람의 작품도 있었고, 시적 완성도와 문장의 긴밀도가 만만치 않은 작품도 있었다.

 

각주와 외래어가 난무하는 작품과 언어의 유기적인 연결이 아쉬운 작품도 많았다. 패기나 참신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적었고, 그만그만한 내용이나 익숙한 수사가 버무려진 작품도 많았다.

 

주제 면에서는 개인의 서정을 노래한 작품부터 시대의 불합리에 대한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었다. 시국의 영향인지 사회의 어두운 면과 개인의 어두운 시간을 직조한 작품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었다.

 

최종까지 남은 작품으로 김선호 님의 빙하의 숲을 걷다’, 조희 님의 파울라가 있는 풍경과 김종태 님의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 장성희 님의 폭우’, 김수형의 포스트잇이었다.

 

모두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었으나, 제목이 내용을 끌고 가지 못하거나 내용이 제목을 받쳐주지 못하기도 했다. 시상을 직조하는 솜씨가 매끄럽지 못하기도 하고 제출 작품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조희 님의 파울라가 있는 풍경이었다. 시상을 전개하는 힘이나 주제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 좋았으나 아쉽게 되었다. 조금 더 힘을 내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김종태 님의 인주 묻은 태양의 행방은 자신만의 언어로 시대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수준급이다. 삶의 현실에서 시의 뿌리가 발아했으나 주관에 휩쓸리지 않고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는 솜씨가 시의 밭을 오래 가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도 고른 수준을 보인 점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심사위원 김영(시인, 전북문학관장)

 
 
728x90

 

 

책등의 내재율 /  엄세원 

 

 

까치발로 서서 책 빼내다가

몇 권이 기우뚱 쏟아졌다

중력도 소통이라고 엎어진 책등이

시선을 붙들고 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햇살이

배슥이 꽂혀와 반짝인다 정적을 가늠하며

되비추는 만화경 같은 긴 여운,

나는 잠시 일긋일긋 흔들린다 

 

벽장에 가득 꽂힌 책제목 어딘가에

나의 감정도 배정되었을까

곁눈질하다 빠져들었던 문장을 생각한다 

 

감각이거나 쾌락이거나 그날 기분에 따라

수십 번 읽어도 알 수 없는

나라는 책 한 권,

이 오후에 봉인된 것인지

추스르는 페이지마다 깊숙이 서려 있다 

 

벽 이면을 온통 차지한 책등

그들만의 숨소리를 듣는다

어둠을 즐기는 안쪽 서늘한 밀착, 이즈음은 

 

표지가 서로의 경계에서 샐기죽 기울 때

몸 안의 단어들이 압사되는 상상,

책갈피 속 한 송이 압화 같은 나는

허름하고 시린 과거이거나 목록이다 

 

나는 쏟아진 책을 주워 천천히 넘겨본다

벽은 참 출출한 비결(祕訣)이다

 

 

 

[당선소감] 

당선 소식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기쁘다. 올해의 기념으로 소양강이 내 품에 안기는 듯 했다. 카메라 속 한 컷이 마치 내 안을 담아낸 것 같아서 손끝이 아렸다. 하늘은 가만히 제 갈 길을 가는데, 나 혼자 별이었다가 구름이었다가 눈비가 되었던 적 있었다. 강이 품을 만큼만 여울을 남기듯, 이제 나는 물속에 잠긴 나무에서 수심을 덜어내야 한다. 얼마 전 다친 아들의 손을 이슥하도록 잡아주어야 한다. 푸른 건물 유리창 너머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그가 강물에 비친다. 당선의 기쁨이 아들과 나의 아픔을 천천히 거두어가고 있다고. 

초석잠 자는 저를 밖으로 끌어주신 이영춘 선생님, 덤벙주초에 맞춰 詩살이 하는 저를 격려해주시는 중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교수님들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윤성택 마경덕 이종섶 선생님께도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시클 감사드리고, 같이 공부하는 문우님들, 중대포엣 식구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묵묵히 뒤에서 글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남편과 주석 주화 고맙습니다. 전북도민일보, 제 부족한 작품을 심사해주신 소재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더 정진하는 마음으로 시로써 따뜻해지겠습니다. 


 

 

 

11번가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 작품들 중에는 우수 작품이 많았다. 경향각지에서 모인 문재(文才)들의 재주가 예리하게 빛났다. 특히 「물다리기」「손말」「고수동굴에서」「멀티플렉스 상영관」「풍욕」「대장간 온도계」「코스모스」「마트료시카」등이 시의 품격을 높였다.

여러 편 중에서 「책등의 내재율」을 최종심에서 제일 좋은 작품으로 뽑고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이 작품은 발상부터가 참신했다. 그리고 구사하는 시어들이 신선했으며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적절한 알레고리를 설정한 점이 좋았다.

‘책등’은 책의 제목이 새겨진 책의 모서리 표상인데, 이를 ‘내재율’이란 어휘로 묶어 놓아 어휘 상호간 절묘한 아이러니를 품는다.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의미의 외연과 책의 안 섶에 꽂힌 섬세한 율성(律性)을 결부시키는 조합은 시의 상징화에 기여한다. 책들은 상호 연대하여 어둠을 빚고 다시 어둔 벽과 암유된 정서를 공유한다. 미명(未明)의 책 갈피갈피는 시적 자아의 생(生)으로 융합을 꾀한다. 감춰진 책 속의 비의는 자아의 잠재의식과도 연계된다. 자아의 감성과 지성의 영혼은 책 속에 압화(押花)로 묻혀 있다가 서서히 빛에게로 나아간다. 출출한 비결(秘訣)이다. 

심사위원 소재호(시인, 문학평론가)

 

 

 

 

728x90

 

 

명옥헌 별자리 / 최재영

 

원림에 드니 그늘까지 붉다

명옥헌*을 따라 운행하는 배롱나무는

별자리보다도 뜨거워

눈이 타들어가는 붉은 계절을 완성한다

은하수 쏟아져 내리는 연못 속 꽃그늘

그 그늘 안에서는 무엇이든 옥구슬 소리로 흘러가고

어디선가 시작된 바람은 낮은 파문으로 돌아와

우주의 눈물로 화들짝 여울져 가는데,

기어이 후두둑 흐드러지는 자미성**

연못 속으로 어느 인연이 자맥질 해 들어왔나

문이란 문 죄다 열어젖히고

한여름 염천에 백리까지 향기를 몰아간다

그 지극함으로 꽃은 피고지는 것

제 그림자를 그윽히 들여다보며

아무도 본 적 없는 첫 개화의 우주에서

명옥헌 별자리들의 황홀한 궤도가 한창이다

한 생을 달려와 뜨겁게 피어나는 배롱나무

드디어 아무 망설임 없이 안과 밖을 당기니

활짝 열고 맞아들이는 견고한 합일의 연못

눈물겹게, 붉다

* 명옥헌 : 전남 담양군 소재. 조선중기 오이정이 세움.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옥구슬소리 같다하여 명옥헌이라 함.

** 자미성 : 자미는 백일홍나무, 배롱나무라고도 하며 하늘의 은하수를 본따 명옥헌 연못 주위에 28그루의 배롱나무를 심었다고 함.

 

 

 

애드픽 지식마켓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당선취소] 2019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최재영씨의 당선을 취소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는 당선자 최재영씨가 다른 신문사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바 있는 기성문인으로 판명된 데 따른 것입니다. 따라서 2019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은 당선자가 없습니다.


 

 

 

 

728x90

 

 

인디고* / 박은영-

 

 

빈티지 구제옷가게,

물 빠진 청바지들이 행거에 걸려 있다

목숨보다 질긴 허물들

한때, 저 하의 속에는 살 연한 애벌레가 살았다

세상 모든 얼룩은 블루보다 옅은 색

짙푸른 배경을 가진 외침은 닳지 않았다

통 좁은 골목에서 걷어차이고 뒹굴고 밟힐 때면

멍드는 건 속살이었다

사랑과 명예와 이름을 잃고 돌아서던 밤과

태양을 좇아도 밝아오지 않던 정의와

기장이 길어 끌려가던

울분의 새벽을 블루 안쪽으로 감추고

질기게 버텨낸 것이다

인디고는

인내와 견디고의 합성어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애벌레들은 청춘의 옷을 벗어야 한다

질긴 허물을 찢고 맨살을 드러내는

각선의 방식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대생들이

세상을 물들이며 흘러가는 저녁의 밑단

빈티지가게는

어둠을 늘려 찢어진 역사를 수선하고

물 빠진 허물,

그 속에 살았던 푸른 몸은 에덴의 동쪽으로 가고 있을까

청바지 무릎이 주먹모양으로 튀어나와 있다

한 시대를 개척한 흔적이다

 

*인디고: 청색염료.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nefing.com

 

 

[당선소감]

 

일흔다섯을 바라보는 아버지, 뒤꼍에서 톱질을 하고 계신다. 이 산 저 산에서 모은 고사목의 곁가지를 잘라내고 같은 크기로 토막을 내는 동안 목장갑 낀 손으로 허리를 두드리고 이내 가쁜 숨을 돌리고……돌이켜보니, 아버지의 그 넓던 어깨가 오그라들도록 나는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불효막심하게 시만 썼구나. 내 시가 화목보일러 숯불보다 뜨겁기를 바라며 누군가의 가슴을 덥혀 주리라 고집하며, 아궁이에 들어가면 흔적도 없이 타버릴 종이를 끌어안고 말이다. 겨울이 돌아올 때마다 방은 춥지 않느냐는 말로 불쏘시개를 대신하던 아버지, 노송가피 같은 손등과 톱밥 묻은 눈 밑과 근심으로 얼룩진 옷소매가 이제야 보이는 것이다.

 

당선소식을 듣고, 나 대신 주변 사람들이 울어주었다. 좌골이 닳도록 기도로 밀어주신 엄마, 언제나 소녀 같은 언니,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은 오빠, 사랑하는 조카들, 함께 동행해준 기독교시동인님들, 나주안디옥교회 일당백의 성도님들……그리고 나의 아들아! 네가 내 속에서 나와 세상 앞에 굴하지 않고 멋지게 헤쳐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힘들 땐 하늘을 바라보라는 약속, 잊지 말자.

 

문을 두드린 지 열두 해다. 소재호 석정문학회 회장님께서 감사하게도 문을 열어주셨다. 앞으로 겨우살이 땔감을 준비하는 노부의 마음으로 시를 써야겠다. 하지만 결코, 추운 이들의 가슴에 군불을 지필 수 없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테를 가졌다는 것이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한 장의 시간보다 길게 불꽃을 피워 올려 언 손이라도 녹여줄 시집 한 권을 남겨보리라 다짐해본다. 재능보다 인내를 주신, 가장 낮고 작고 천한 자의 주인인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린다.

 

 

 

 

[심사평]

 

금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는 170여명에 500여 작품이 응모되어 팽팽한 경쟁을 보였다. 신춘문예에 응모되는 작품들은 대개가 작가들의 무한한 문학적 체험과 연마를 거쳐 정제된 산물이어서 이미 시의 품격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이번 응모된 작품들 중에서는 시제 인디고’‘그림자는 저체온증’‘지렁이 다비식’‘필사의 밤’‘ 주홍날개꽃개미’‘북해의 공작시간등에 시선이 매우 끌렸다. 모두 시적 체제는 잘 갖추어져 있었다.그러니까 이 작품들이 최종심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약간씩의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인디고는 수준이 매우 높아서 당선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인디고는 쪽에서 나온 남색이라 했다.색깔을 시 제목으로 내거는 자체부터가 이미 범상함을 벗는다.이 시는 역사적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절제된 감성으로 주조된 서정성을 바탕으로 어둔시대를 견인하는 서사적 정경이 오버랩된다.블루의 색소가 인상적으로 내비치며 인상파 그림의 구도와 명암이 쉬르리얼리즘의 경역도 넘나든다. 제재들은 자꾸 대칭하며 조화해 가는,아이러니와 패러독스가 시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청춘이 선호하는 낡은 청바지...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그리고 얼마나 심대한 이미지의 부딪침인가.

 

현대의 세대가 옛 세대를 끌고 와서 한 시공에 두어 충돌과 융합을 자아낸다. 결기 높은 시이다. 청바지는 낡아서 무릎이 나와야 한다. 이 청바지는 그대로 상징성의 총화이다.

 

동서양의 만남이며 이는 또한 시공을 달리한 문화의 충돌이자 혼융이다. 이 때 하의 속 애벌레가 절묘한 시점에 등장한다. 애벌레는 장차 성충이 될 터이다.매미처럼 어둠을 털고 일어나 허물을 벗고 마침내 푸른 미래의 하늘을 날 것이다.

 

어둠을 늘려 찢어진 역사를 수선하고...한 시대를 개척한 흔적의 시구가 청바지에 얼마나 적확하게 부합하는가.

 

심사위원 소재호 시인·문학평론가

 

728x90

 

 

각시거미 / 이삼현

 

 

그녀와 나 사이

서먹해진 간격에 집을 지은 거미가

한 점 침묵으로 매달렸다

말끝을 세운 몇 가닥 발설이 한데 얽혀 덫이 되고

 

하루, 이틀, 사흘

무엇을 먹었는지 마셨는지 소식도 없이 제자리에 멈춰있다

 

나는 여문 것을 좋아하고

그녀는 부드러운 걸 좋아했지만 거미의 식성은 육식성이다

단단한 저녁이 말랑말랑해진 태양의 육즙을 천천히 빨아 삼키는 동안 거미는

한마디 미동도 없이 어두워졌다

 

몰래 들여다봐도 내통도 없다

팽팽하게 벌어진 틈새를 붙잡고

며칠째 끈적끈적한 긴장의 끈을 당기는 저 고집은 불통이다

 

꼭 돌아올 거라며 활짝 열어둔 오늘이 무음(無音)으로 져도

마음은 나팔처럼 불 수가 없다

 

경계를 풀고 다가올

기척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순간이 쉼표 없는 기다림으로 이어지고

 

죽은 듯 산 듯

다시 낮달이 떴다

 

 

 

 

 

애드픽 지식마켓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당선소감] 

 

육신이 힘들 때마다 친구가 되어주고

가끔 취하고 싶을 때는 술이 되어주고

진한 향기에 잠기고 싶을 때는 한 잔의 커피가 되어준 시를 생각합니다.

나이 들어 점점 소외되어갈 때 시가 있어 행복합니다.

 

곁에서 지켜봐 주고 시를 읽어 줄 때마다 행복해하는 아내가 있어 정진할 수 있었습니다. 신춘문예를 염두에 두었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처럼의 용기가 이번 겨울 따뜻한 꽃으로 피었다는 게 꿈만 같습니다.

 

아직 부족한 글이지만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지금부터 시작으로 알고 기대해 주신 만큼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역과 나이에 상관없이 영광을 안겨준 전북도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독려해주신 동작문학반의 맹문재 선생님, 자신감을 심어준 마경덕 선생님, 늘 격려해준 하린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힘이 되어 준 동작문학반 문우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2017년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응모한 시인들이 500여명을 넘었다. 경향 각지에서 호응한 큰 반향이었다. 금년에도 우수작품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특히 이삼현 씨의 ‘각시거미’를 필두로 하여 오정숙 씨의 ‘바람의 무게와 질량을 측정하는 저녁’, 김진실 씨의 ‘이름의 비밀’. 이성호 씨의 ‘돌부처에 맺힌 이슬’, 성영희 씨의 ‘깃발’ 등이 매우 감동있게 가슴에 왈칵 다가왔다.

 

그러나 시의 구조나 체제, 심통한 정서 등 시가 마침내 도달해야할 궁극에는 한 점씩 미진한 듯하여 아쉬움이 있었으나, 이삼현 씨의 ‘각시거미’는 모든 면에서 빼어났다. 그래서 ‘각시거미’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이 시는 시공(時空)을 한바탕에 융합시키며 형상화를 극진히 도모한 점이라든지, 한 마리의 거미를 통해 심도있게 통찰되는 사상(事象)의 본질을 교묘히 대칭시키며 박진(迫眞)하게 실감에 다가감이 절묘했다. 결구의 ‘낮달’의 상징성은 매우 탁월했다. 시가 우선적으로 표방해야 하는 감동을 충분히 일으켰으며 모던풍의 이미지가 돋보였다. 시의 결기가 매우 탄탄하다. 이삼현 시인의 문학적 성취에 찬사를 보낸다.  

 

- 심사위원 소재호 시인

 

728x90

 

 

화해花蟹 / 하송

 

 

냄비뚜껑을 열자 꽃처럼 붉은 꽃게가

철갑을 하고 있다

건들기만 하면 잘라버리겠다는 듯

엄지발을 치켜든다

뭉툭한 가위로 발을 절단하자

소리를 지르는 것은 꽃게가 아니라

가위였다

골수가 울컥 쏟아지자

바다는 잠잠했다

사는 일은 파도가 잠자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갯벌 속으로 재빨리 몸을 숨기는 것

꽃게, 파도가 거칠수록

두 눈 똑바로 뜨고 등딱지에 힘을 준다

한 평생 꽃처럼 배를 보이지 않는 것이 꽃게다

섬 하나가 안테나를 세우고

육지로 나간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지

바닷바람에 허리가 꼿꼿하다

바다를 버린 꽃게, 절대 바다를 돌아보지 않는다

 

* 화해花蟹 : 꽃게

 

 

 

[당선소감]

 

꽃게! 말만 들어도 입안에 군침이 돕니다. 속살이 꽉 찬 꽃게는 담백하면서도 입안에 오래도록 남는 특유의 향이 으뜸입니다. 꽃게는 찜, 탕, 게장, 무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를 합니다. 꽃게는 꽃처럼 예쁘게 생겨서 꽃게가 아니라 삶으면 빨개져서 꽃게입니다. 잘 익은 꽃게의 두 집게발이 치켜든 가위 같습니다. 작게는 쓸데없이 웃자란 욕심과 아집으로부터와 크게는 부정부패까지 과감하게 잘라내야 한다는 듯이 집게발이 단호합니다.

 

꽃게에 대한 시를 완성하고 제목을 정하는데 적잖게 고심을 했습니다. 꽃게의 옛 이름은 ‘곳게’입니다. 곳은 송곳(錐)으로 집게다리에 돋은 가시가 송곳처럼 뾰족하다는 뜻입니다. 암녹색 바탕에 구름무늬가 있는 등딱지는 옆으로 퍼진 마름모꼴로 두 집게발은 크고 길며 억세게 생겼습니다. 꽃게를 한자어로 시해矢蟹· 유모· 발도撥棹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것칠에 · 살궤 · 곳게입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는 생소하고 어렵게 생각되어 결국 ‘화해花蟹’라는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한자를 병기하지 않는다면 ‘화해’는 갈등과 다툼을 그치고 적대 감정을 푼다는 뜻도 있어서 나름대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는 범접할 수 없는 학문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때는 태산보다 높다는 생각으로 무척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절차탁마는 절제의 미덕을 알게 했고 확장된 사유로 시의 발자국을 따라가는데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시를 쓰는 일이 고통이라면 고통의 절반은 기쁨입니다. 기쁨은 때로 결핍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결핍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시에는 혼이 있어 어떤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는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화해花蟹를 계기 삼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많은 이들에게 힐링이 되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 ‘화해花蟹’를 당선시켜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맛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금년에 600여 편의 운문이 응모하였다. 시조와 동시, 한시 등, 그 종류와 형태도 다양하였다. 이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민옥순의 <헛발을 딛다>와 조양비의 <낯선 폭설>, 황병욱의 <포도밭 사막> 그리고 지연의 <다르미타>와 하송의 <화해>였다.

 

민옥순의 <헛발을 딛다>는 조각이 난 접시의 형상을 치밀한 묘사와 아름다운 표현으로 시선을 끌었고, 조양비의 <낯선 폭설> 또한 다소 보헤미안적 풍경을 능란하게 묘사하였다. 두 작품 모두 언어의 직조 능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직조와 묘사가 내용의 공소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황병욱의 <포도밭 사막>은 흉작으로 남은 농부의 신산한 삶을 짜임새 있는 구성과 미감으로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3연의 ‘번화가’와 끝 연의 ‘열매를 맺는다.’는 돌연한 시어의 혼란과 상투적 인식이 새로운 감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끝까지 고심했던 작품은 지연의 <다르미타>와 하송의 <화해>였다. 지연의 작품은 쉬르레알리즘 기법을 연상케 하는 자유분방한 에스프리와 비유 그리고 감각적 묘사가 그간의 문학적 역량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다르미타>라는 제목의 낯설음에서 오는 이질감이 끝내 ‘불꽃의 접점’을 찾지 못해 아쉬웠다.

 

<화해>는 ‘꽃게와 바다’라는 비유와 상징의 공간 속에서 ‘갯벌 속으로∼몸을 숨기’며 오늘의 고난을 극복해가고자 하는 화자의 자기 고백적 주문이 긴장과 이완의 율조 속에서 하나의 ‘빛’으로 안정되어 있었다. ‘한평생 배를 보이지 않는’,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결연함에서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된다.

 

평이한 듯 보이나 체험이 육화된 그 평이함이 오히려 어떤 결기와 진정성으로 느껴져 앞으로의 가능성에 믿음을 갖고 당선작으로 올렸다. 보다 정진하여 격조와 품위를 더한 시인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 김동수 미당문학회장,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728x90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 김기령

 

 

난파선은 난파선 속에 뒤집혀 있다 깃발이, 갑판이, 선미가 부서졌다 아니 실제론 뼈댄 안 부서졌다 해일에 부딪쳤고 태풍에 부딪쳤다 그것들은 부딪침으로 섞인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지금은 멀미 중이다 난파선이 나를 껴안으려 한다 난파선이 쏟아내고 있다 방향키도, 서랍도, 포크도, 변기도 꾸역꾸역 쏟아낸다 나온 것들이 서로 섞여 흐른다 너는 흐르지 못했다 아니 실제론 너는 쏟아내지 못했다 그 이름이 바다를 안는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해파리도 해초도 흔들림이 없다 다만 자갈벌엔 구름이 있다 햇살도 자잘하다 바라보면 바다는 여전히 투명하다 힘차다 뱃전에 앉은 바다새가 바다를 바라보고 그 옆 나는 구토를 하고 있다 두통이 자갈벌에 처박힌다 파도 소린 진행이다 여름 가을 겨울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하얀 소리가 부서진다

 

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 바다와 별거 중이다 부서져 나간 글자, 흔적이 없다 폭우에 뜯겨나간 이름, 보고싶다 난파선 뒤에서 바다를 당기며 오른쪽으로 몸 기울어진 수평을 맞춘다 해일과 태풍이 무수한 소리를 숨기는 곳 짠 내음의 바다가 반짝 후미에서 빛났다 그 위 작은새 한 마리 깃을 내렸다 민들레 홑씨 둥글게 부풀어 날자 난파선은 난파선이 아니다 난파선 앞에서 난 파산하고 있다 바람을 들고 나는 석양에 기대 난파선에서 속을 푼다 조개껍질 몇 개가 통장 속으로 들어가 박힌다 앉은뱅이 파편 조각 하나가 열 번째 바다로 가고 있다 물결이 지느러미가 된다 누구의 바다 깊은 곳에서

 

 

[당선소감] "시의 안팎을 자신 있게 휘몰아 쓸 것"

 

벽은 흰빛 소리를 냈다. 집은 늘 장소를 옮겼다. 길을 잃기 싫어서 언제나 시에 기대어 있었다. 나의 시는 때론 자작나무 숲길이 되고 때론 회색 빌딩숲을 걷게 했다. 이러다 시를 못 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시의 언저리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건 언제나 소중했다.

 

감기가 왔다. 한 번도 끙끙 앓지 않았던 꿈을 꾸었다. 어깨를 토닥거려주던 손길에 눈을 뜨고 아련함 속에 남아 있었다. 미련을 못 버릴까봐 꿈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연락이 왔다.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젠 시의 안과 밖을 좀 더 자신 있게 휘돌아다니고 싶다.

 

늘 따뜻한 격려와 함께 시의 길을 바르게 걷게 해주신 영남대 이기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시 정신을 꿰뚫어 주시던 대구가톨릭대 한국어문학부 장도준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시를 사랑하는 문심회, 영남대 사회교육원 문창반 문우들과 대가대문학회 회원들께도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나의 가족, 특히 첫 독자가 되어 준 근희와 근우에게 붉은 산수유 열매를 전하고 싶습니다.

 

견줄 수 없는 벅참을 안겨주신 심사위원 조미애 선생님과 전북도민일보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젠 온 힘을 다해 정성으로 쓸 것이며 결코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합니다.

 

 

 

 

맛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의 재탄생"

 

신춘문예를 통해 한국문단에 도전하는 것이 문학을 소원하는 사람에게 있어 얼마만큼 소중한 일인지는 글을 쓰는 사람이면 잘 알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146명의 시 584편을 심사하였다. 응모한 작품들을 통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하여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조탁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당선작을 선정하는데 고민이 컸다. 고단한 일상을 단순하게 토로하기보다는 시어로 승화하여 길어 올림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느리게 진행하는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문학이 지니는 장점일 것이다.

 

당선작으로 김가령의〈난파선은 난파선 속으로〉를 뽑았다. 몇 번을 읽었다. 뒤집혀 진 난파선과 파도, 그리고 투명한 바다의 고요함이 수많은 사건들의 역사가 되어 되돌아 왔다. 모든 기울어짐에 대하여 수평을 맞추고자 조절하는 모습은 곧 시의 몸부림이 되었다. 파편이 된 시적 소재를 다듬고 맞추어서 전하고자 하는 연결고리를 분명하게 찾아내고 사물 저 건너편까지 드려다 볼 수 있는 역량을 더하여 이 땅의 좋은 시인이 될 것을 기대해본다.

 

떠나지 않으려 집을 짓는 새가 새벽을 기다리는 김길전의〈가을 나무〉와 모래가 모래 속에 익사하는 모래의 역사를 담은 이명옥의〈모래시계〉도 잔상이 큰 작품이었다. 구윤상의〈새벽시장 콩나물 국밥〉과 최한나의 〈그녀, 병아리 되어 가다〉, 임미성의 〈우렁이 이야기〉등에서 공감하게 되는 시적 이야기 또한 반가웠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사유의 영역을 넓히고 시선의 깊이를 더함으로써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응모한 예비문인들의 노력과 정성에 큰 박수를 보낸다. 

 

- 심사위원 조미애 국제펜클럽한국본부와 한국문인협회 이사

 

728x90

 

열화되다 / 이승은

나무들의 연대가 적요롭다
몸 말아 등선이 고운 태아처럼
묵언수행을 선언한 지난 계절부터
딱 그만 크기의 추를 세우고
조그맣게 서 있다
저 추가 어떻게 뜨거움을 보여줄 것인가
작년 봄 2쪽 그즈음과 같은 모양새여서
땅이 열렸을 때부터 생긴 약속이라고
얼추 들은 터라
새로울 것도 없다고 생각이 넘나드는 순간
추가 넘어졌다
토해낸 숨결 안과 밖 경계선이 무너지고
추는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매화꽃 일생 추워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말도
화르르 소란스럽다
단 한 개의 귀를 지닌 추는 냉정을 잃고
물기에 젖어 파리한 소리는 적막을 뚫고
꽃 이파리 하나 열린다
열화되지 않은 꽃은 없으리
바닥 바닥으로만 음각했던
우리들의 희망이 달리 드러난 것이다
여러 번 꽁꽁 얼어 있던 약속이
심장 속 온도에 팔딱거리는
작은 기립을 지지한다
쉿! 다음 쪽 봄꽃도 뜨거워지려 한다

 

 

 

 

[당선소감]

 

겨울임에도 다니고 있는 직장 본 건물 옆에 새로 건물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건물 앞으로, 옆으로, 일층에서 이층으로 무수하게 설치해 놓은 철구조물이 보입니다. 비계(scaffolding)입니다. 비계는 건설, 보수공사, 건물이나 기계를 청소할 때 작업인부와 자재를 들어올리고 받쳐주기 위해 쓰며, 알맞은 크기·길이의 발판재를 하나 또는 여러 개를 모양과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됩니다. 건물이 완성되면 흔적없이 사라져야하는 비계가 유독 눈에 들어봅니다.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합니다.


볼품없는 나는 내 시를 위한 비계입니다. 세상을 보이게 하고 드러내는 뜨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시를 남기고 비계처럼 사라지면 좋을 것이란 계획을 진즉에 세웠습니다. 나이 오십에 내 시를 세상에 나오게 해준 전북도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를 드리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쿠팡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의 재탄생’

 

신춘문예를 통해 이 땅의 시인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것은 눈부신 기쁨이다. 전국 각지에서 응모한 137명의 시 569편을 심사했다.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허투루 지나치지 않고 섬세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것은 누에가 고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토해 나오는 비단실을 보는 것과 같다. 떨리는 가슴으로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시를 쓰고 응모한 예비 시인들의 문학을 향한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당선작으로 이승은의 ‘열화되다’를 뽑았다. ‘나무들의 연대가 적요롭다/ 몸 말아 등선이 고운 태아처럼/묵언수행을 선언한 지난 계절부터’라는 첫머리부터 시선을 끌었다. ‘토해낸 숨결 안과 밖 경계선이 무너지고/추는 중심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꽃이 열리는 순간의 경이로움을 호흡을 잠시 멈추고서 한 줄의 시로 완성한 모습이 시를 읽은 사람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이 언어를 통해 재탄생하는 모습이 반갑다. 앞으로 좋은 시인으로 성장할 것으로 믿는다.

구민숙의 ‘뒤란’은 오래 들고 있었던 작품이다. 바람처럼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영상과도 같았다. 생각의 깊이를 더하여 시의 언어를 조율한다면 머지않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윤정의 ‘풍화’, 김완수의 ‘독방일기’, 김종득의 ‘돌아온 만경들’ 역시 좋은 작품이었다. 아깝게 낙선한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심사위원 조미애<국제펜클럽한국본부 및 한국문인협회 이사>

 

 

728x90

 

 

그 여자, 마네킹 / 강봉덕

 

 

때론, 패션도 종교가 된다

묵언수행 하는 그 여자

침묵으로 한 종파를 완성시킨다

그 종파의 교리는 계절을 앞질러 가는 것

한 계절 똑같은 웃음이나 빛깔

표정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계절에 이르기 전

그 여자의 설법은 고요하고 은밀하다

이 거리에 들어온 사람들은 주술에 걸리듯

그 여자의 짝퉁이 되기 시작한다

포교는 항상 중심에서 변방으로 퍼진다

짧은 치마처럼 간단명료한 표정

미끈한 팔다리로 사람들을 전염시키며

파격적인 노출도 교리가 된다

패션이 변할 때 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표정을 만들며 순종적으로 바뀐다

경기불황이 몰려오면

그녀는 더 화려하고 빠르게 변신한다

사라진 추종자를 다시 불러들인다는 것은

침침한 눈으로 바늘귀에 실 꿰듯 힘겨운 일이지만

손바닥 뒤집듯 가벼울 수 있다는 듯

투명한 벽 앞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 여자, 화려한 변신을 시작한다

나를 버린 사람들이 몰려든다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 할 때까지

 

 

 

 

 

[당선소감] ‘착하게 시를 쓰겠습니다’

 

올 겨울은 추운 날이 많습니다.

유난히 추운 날, 마음이 따뜻해지는 당선소식을 받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아직 내 글이 많이 서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더 치열하게 글을 쓰라는 격려라 생각합니다.

시를 쓰는 일은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부족한 글에 이렇게 큰 상을 주신 것은 사랑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라 생각하며 천천히 쉬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겠습니다.

전북도민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리며 착하게 시를 쓰겠습니다.

‘시는 별 것 아닌 삶을 별 것인 삶으로 만든다’ 고 가르쳐 주신 동리목월 김성춘 선생님과 ‘치열하게 글을 쓰라’고 지도해 주시며

힘들 때 마다 격려해 주신 구광렬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공부한 동리목월문예대학 문우들,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쿠팡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세상을 대하는 폭이 넓고 진솔하여

 

책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응모한 것에 놀랐다.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희망적이다. 역시 정서적 궁핍의 탈출은 예술일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485편 가까이 되는 작품을 들떠 읽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신춘문예 스타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신춘문예에 등장하는 소재에서 딱히 벗어나는 작품을 만나기도 어렵다. 그러나 놀랍게도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 여자, 마네킹’, ‘사각형 속에 둥근 귀’, ‘물고기자리’, ‘기린’, ‘거실의 세렝게티’, ‘폐허를 말하다’, ‘담쟁이의 혈당체크’, ‘안녕, 살구’ 등이 끌렸다. 이 분들 모두에게 박수를 드리고 싶다. 그 중 ‘사각형 속의 둥근 귀’는 성숙된 작품임이 분명하나 익숙한 문체나 구절들이 거슬렸고, ‘물고기자리’는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게 흠이 되었다. ‘거실의 세렝게티’는 단순한 소재를 끌어가는 솜씨가 돋보였으나 주제가 선명치 않았다. ‘기린’ ‘담쟁이의 혈당체크’ 등을 쓴 분의 독특한 상상력이 못내 아쉽다. 완성도도 약했지만 그 외에 다른 작품들이 힘이 되어주질 못했다.

마지막까지 손에 들린 작품은 ‘안녕, 살구’와 ‘그 여자, 마네킹’ 이었다. ‘안녕, 살구’외 3편을 낸 강봉덕의 작품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솜씨가 퍽 발랄하고 거침없었다. 조금만 더 숙련된다면 다음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하여 ‘그 여자, 마네킹’ 외 ‘짧은 휴식을 위한 변명’과 ‘홀쭉한 등’의 3작품을 낸 강봉덕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쾌히 뽑는다. ‘홀쭉한 등’과 ‘그 여자, 마네킹’ 둘 중 무엇을 수상작으로 정할까도 망설였다. ‘홀쭉한 등’으로 자꾸 시선이 갔으나 군데군데 매끄럽지 못한 점이 많아 ‘그 여자, 마네킹’을 수상작으로 든다. 3편 모두 현대적이면서도 건조하지 않고 세상을 대하는 폭이 상당히 넓고 진솔하여 수상자로 선정함에 망설임이 없다. 축하드리며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계속 거듭나길 기대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