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내시장 / 하미경
야채 썩는 냄새가 고소해지면
장터는 복숭아처럼 익는다
중고 가게 앞 내장을 비운 냉장고가
과일의 단내며 생선냄새며 땀내 들을
가리지 않고 거두어들일 무렵
은혜수선집은 벌써 불을 켜고 저녁의 한 모퉁이를 깁는다
박미자머리사랑을 지나면 몽땅 떨이라느니
거저 가져가라느니 농약을 치지 않은 다급한 말들이
등을 타고 내려 고무줄 늘어난 추리닝처럼
낭창낭창 소쿠리 속으로 들어간다
남들 보기 거시기 하다고 자식들이 말려도
팔 것들을 꾸역꾸역 보자기에 챙겨 나온 할머니는
돌아갈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지
빠진 이 사이로 질질질 과즙을 흘리며
복숭아 짓무른 데를 떼어 물고 오물거린다
문 닫는 속옷 가게에는 땡땡이무늬 잠옷이
잠들지 않고 하늘거린다 잠옷을 입고
늘어지게 자고 싶은 허리 대신
빈 바구니마다 어느새 어둠이 드러누웠다
[심사평]
올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는 오백 십여 편의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응모하신 분들의 주소가 일부러 안배라도 한 것처럼 전북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해서 8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예년에 비하여 많은 편인지 적은 편인지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 심사를 올해 처음 맡게 된 선자로서는 잘 모를 일이지만 510 : 1이라는 그 경쟁률이 참으로 아찔했다.
대개는 한 분이 3 편 내지 10 편씩 보내셨다는데 어떤 분은 48편이나 되는 시를 한꺼번에 응모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48 편은 너무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달랑 3 편만 보내신 경우는 그걸로 그 문학적 역량을 가늠하기에는 너무 섭섭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데도 3 편씩 응모하신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는데. 그건 아마도 여기저기 중복투고를 피하려고 작품들을 분산시킨 결과일 것이다.
예심을 거쳐 결선에 오른 작품은 여섯 분이 응모하신 23 편이었다. 결선에 오른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런 걸 행복한 고민이라고들 한다는데, 막상 닥치고 보면 그건 결코 행복한 일이 못 된다. 행복하기는커녕 작품을 하나씩 제외시킬 때마다 여러 차례나 망설여야 하는 게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그 중에서 한 편만 가려 뽑을 게 아니라 한 사람당 한 편씩 여섯 편만 당선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그렇게 뽑아 본 여섯 편은 다음과 같다. 성함을 밝히는 일이 낙선된 분들께는 결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품명만 밝힌다.
「분천동 본가입납」 , 「인절미」, 「개성삼계탕」, 「엄마의 인주」, 「장항선」,「모래내시장」.
「인절미」,「개성삼계탕」,「장항선」,「모래내시장」은 공교롭게도 응모작 묶음의 두 번째에 있는 작품들이었다. 신춘문예 심사를 하다보면 번번이 맨 앞에 내세운 작품보다 그 다음 작품이 선자의 맘에 드는 일이 많은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맨 앞에 내세운 작품들은 흔히 말하는 ‘신춘문예적 경향’을 의식하느라 온몸에 힘이 들어간 것 같고 , 그런 경향으로부터 조금 비껴 선 두 번째 작품들이 비교적 안정감을 유지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분천동 본가입납」과「모래내시장」두 작품을 마지막까지 저울질하다가 작품의 안정감과 말맛과 그 정감들이 다소 돋보이는 하미경의「모래내시장」을 당선작으로 뽑으면서 동짓달 긴긴 밤, 뽑지 못한 작품들 때문에 못내 마음이 무겁다.
- 심사위원 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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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부문 수상자 하미경> "마음 다스릴 수 있는 시 평생 함께하고 싶어요"
단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숱한 밤을 고민했을 사람들. 그들은 신춘문예 도전에 앞서 ‘문학’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고백할지 몰라 어쩌면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새로운 출발점에 선 201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하미경(시), 배귀선(수필), 오정순(단편소설)씨는 이날의 열정을 깊이 간직하고만 싶다. 한국문단의 거목이 되고 싶은 가슴 벅찬 꿈을 안은 새내기 문인들의 당찬 포부를 들어본다.
“시 한 줄을 더 쓰라면서 살림을 도와준 사랑하는 가족들과 제가 가진 재능을 펼쳐보라면서 힘을 북돋워 준 목사님과 지인들, 해질녘 퇴근길이면 저의 지친 몸과 고독감을 함께 나눠준 모래내시장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시를 좋아해 대학도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충실하게 시작을 이어가지 못했던 하미경(42·전주시 인후동)씨는 이번 신춘문예 시 당선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수년 전 전북여성백일장에서 차상을 받은 후로 시집도 많이 보고, 시 공부를 틈틈이 해온 노력의 결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바쁜 일상을 쪼개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다니면서 밤늦도록 시를 공부에 매진한 지도 두 해가 흘렀고, 올여름 수료를 앞두고 있으니 그 기쁨 역시 두 배다. 그에게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당선작 ‘모래내시장’을 비롯한 주변의 상황과 인물, 이를 통한 속상한 심정, 도시의 직장생활에서 번지는 지독한 고독감 등은 훌륭한 소재다. 하씨는 시를 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시를 쓰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운동 겸 편안한 복장으로 자주 가는 곳이 바로 모래내 시장이에요. 갈라진 손으로 야채를 다듬고 있는 시골 할머니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죠. 우리네 엄마가 저 손으로 우릴 키웠구나 하는 생각, 바로 그곳에 저의 시가 있었습니다.”
독서논술 강사로 10년째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하씨. 그래서인지 몰라도 동시와 동화에도 관심이 많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면 늘 새로운 것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번 등단으로 자신감이 붙은 만큼 여러 분야에서 두루 창작열을 불태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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