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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달아나요 / 이미자

 

 

강바람이 불 때마다 프릴 달린

스커트 자락 출렁거려요

산은 어느새 태양의 목, 낚아채 오픈카에 태워요

그러자 쉿!

재빠르게 산 스커트 안 들여다봐요 더듬는 하늘

충혈 됐네요 파랗게 놀란 강

소매 걷어 철썩! 뺨을 때려요

얼얼해진 태양, 차에 앉자마자

노을 짙게 뿌리며 달아나요

찌그러진 엔진소리 허공을 찍어대구요 저녁은 찰, 랑

Mp3 달고 달아나요

쉿! 강물 속 구름 건들건들

곤두박질쳐요 옷엔 검은 구름 박혀버렸네요

지나가던 바람

웃음으로 입방아를 찧어요

스커트 또 아찔하게 올라가구요, 오후는 눈 질끈 감아버립니다

하루가 기절해요

21g의 푸른 영혼이 잠시 흘러가고 있어요

회색 모자를 쓴

저녁,

어둠이 들렸네요

 

 

 

[당선소감] 끝없는 길 열정으로 갈 것

 

새해가 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오늘 당선 통보를 받았다.

즐겁다.

그러나 이 순간을 잠시 미루어본다.

밤을 새우며 글에 매달린 날들이 많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받아 적던 날, 온전히 내 것이 되기도 했지만 홀연히 떠나가 종잡을 수 없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비몽사몽간의 받아 적음. 흡사 그것은 장난감을 손에 쥐고 손에 놀 듯 서서히 난 중독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종종 지루한 싸움이었다.

주저앉으며 갈등하던 날. 나를 힘들게 했다.

혼자 쓰고 혼자 퇴고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빠른 길을 찾으려고 했지만 나의 보폭으로 이내 서기로 했다.

이 길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안다.

험난하다는 것도 안다.

러함에 무모한 날들이지만, 뼈가 녹는다는 것을 아는 날들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이것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이유다.

작품을 쓰며 흡족했던 날들보다 충족되지 않았던 날들이 더욱더 많았다.

어찌 보면 욕심이 많았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대작을 쓴다는 각오로, 이 세상에서 제일 처음 하는 것처럼, 써라.” 맹문재 교수님의 말씀과 “공부는 끝이 없는데 왜 끝을 찾느냐.” 정연승 교수님의 말씀은 오래도록 새길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즐거워하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 하자. 이것이 내가 문학을 오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세상의 모든 시인들과 문학인들에게 감사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책 속에서 안내해주는 이들, 나의 선배들이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복된 새해가 되길. 내가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열정을 가지고 써야겠다.

열정은 신이 내린 축복이니까.

 

문학을 사랑하시는 주성대학교 정상길 총장님과 그동안 지도해 주신 최승옥 학과장님 문효치 교수님 윤혁민 교수님 정연승 교수님, 감사합니다.

 

문학의 깊이, 넓이를 있게 해주신 맹문재 교수님 고형렬 선생님 이재무 선생님, 감사합니다. 전북도민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우리 언니와 우리가족, 참 많이 감사해요. 머리에 항상 쉬리가 살고 있는 우리 초등학교 친구들, 난 너희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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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가능성에 대한 선택과 응시

 

시가 ‘무엇’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이 있다. 시가 발휘하는 ‘힘’이 무엇이냐는 의문도 많다. 시의 ‘무엇’에 대한 하나의 확실한 징표를 얻기 위해 우리 사회는 매년 신춘문예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춘문예는 우리 사회에 하나의 문화현상이 된지 오래다. 신춘문예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시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시의 ‘힘’은 자연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시가 현실적으로 결핍되기 쉬운 삶의 진정성에 대한 하나의 울림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시대 상황에 대한 지적 대응양식을 보여 준 작품들, 삶의 간고함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작품들, 소재주의적인 경향을 보인 작품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예심을 하고 보니 선에 든 작품들과 들지 못한 응모작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좀 더 치열한 문학수업, 좀 더 왕성한 문학 독서를 필요로 하는 작품들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적으로 김형태님의 <쓰레기꽃과 벌>은 성실한 습작 태도가 몸에 배인 작품으로 읽혔으나 적지 않은 작품을 응모했음에도 성실함을 값할 수 있는 참신성에서 아쉬웠다. 김대봉님의 <밤을 먹다>는 발상은 참신하지만 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형상화에서 조금은 힘에 부치는 듯했다. 홍선영님의 <이력이 난 기도>는 작품을 많이 써본 흔적을 엿볼 수 있는 필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모두에서 언급했던 신춘문예의 독창성과 참신성에서 아쉬움을 간직한 채 당선작과 끝가지 경합하였다. 이미자님의 <오후가 달아나요>는 세련미와 유려함에서 조금 아쉬웠지만, 참신성과 독창적인 서정성에서 여타 작품보다 앞선다고 생각하여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시간의 관점을 내재적인 서정의 흐름과 병치시키면서 시상을 갈무리해 내는 역동성이 참신했다. 특히 간결하게 상황을 서정화하고, 비약적으로 시의 진술을 끌어가는 힘에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21g의 푸른 영혼’이라는 생동적 삶의 이미지를 ‘회색 모자를 쓴/ 저녁,/ 어둠이 들렸네요’같이 결구(結句)해 내는 솜씨에서 시의 본령에 대한 안정된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당선작과 함께 투고된 다른 작품들에서 가능성을 보았으며, 그런 가능성이 앞으로 이 시인의 문학적 성장을 응시해도 좋다고 생각하여 당선작으로 삼았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욱 분발하여 시의 좋은 재목이 되시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이동희 전북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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