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꽃 / 정성수
오백 살 배롱나무가 선국사* 앞마당에
가부좌를 틀고 있다.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고서
여름밤 폭죽처럼 피워 낸
저 붉은 꽃들.
깡마른 탁발승이 설법을 뿜어내는지
인연의 끈을 놓는 아픔이었는지
이승에서 속절없이 사리舍利들을 토해내고 있다.
배롱나무꽃
붉은 배롱꽃은 열꽃이다.
온 몸으로 뜨겁게 펄펄 끓다가 떨어진 꽃잎 자국은
헛발자국이다.
피기는 어려워도 지는 것은 금방인 꽃들은
저마다 열병을 앓다가 진다.
저물어가는 여름 끝자락에
신열을 앓다가 가는 사람이 있다.
배롱꽃처럼 황홀하게
무욕의 알몸으로 저 화엄 세상을 향해서
쉬엄쉬엄
* 선국사 : 전북 남원시 교룡 산성 내에 있는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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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의 응축적 결정과 여운 돋보여"
예선 통과의 작품 수는 160여 편이였다. 응모자는 도내 뿐 아니라, 부산·인천·포항·대구·광주에 걸쳐 있었다. 10대로부터 70대의 나이층이었으나 40∼50대가 주였다.
시의 양식도 자유시를 비롯, 시조시·동시도 있었다.
한마디로 작품 수준을 말하기는 어렵다. 각자 나름의 시세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어디까지나 선자 나름의 눈으로 작품을 읽고 가릴 수밖에 없다.
응모작들을 일독한 후, 골라낸 작품은 고제우· 신도홍 · 김삼경 · 이현주 · 김금아 · 김형태 · 정성수 님들의 것이었다. 각자의 작품들이 지닌 장점도 볼 수 있었다.
동심의 세계(고제우), 생활속 여심(신도홍), 산뜻한 감성(김삼경), 해학적 기지(이현주), 폭넓은 사유(김금아) 등이 곧 그것이다.
그러나 시에 대한 온축이나 역량 면에 있어서 김형태와 정성수의 작품들이 위 여러 응모자의 작품에 비하여 뛰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자로서의 호감이 더 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김형태·정성수는 다같이 시에 대한 그동안의 수련 과정도 만만찮다는 것을 각각 10편·5편의 응모작에서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시어 하나를 골라 쓰는데도 많은 고심을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토박이말에 대한 애정에도 호감이 갔다. ‘뜸베질’ ‘되창문’ ‘노박이’ ‘고빗사위’ ‘옴나위’ 등의 낱말이 지닌 정감은 오늘날 되챙겨 보고 싶은 우리의 토박이 말이다.
최종 선정에 번갈아 읽으며 들었다 놓았다 적잖이 망설였다. 끝내는 정성수의 ‘배롱나무꽃’을 당선작으로 내어밀기로 하였다. 요설적 산문적인 시행 처리 보다도 응축적인 시의 결정과 그 여운을 사기로 한 것이다.
정성수 시인의 시의 앞날을 빌어 마지않는다.
- 심사위원 최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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