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죄는 나도 알아요 눈을 감으면 끝난다는 것을 설사 끝나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여러 번 감으면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앓고 있고 몸속에 시간이 쌓이는 것으로 먼별에서 순교자와 배교자의 자식들을 불태우며 항성보다 빛나는 별이 있음을 이해한 후 단지, 약속했던 손가락을 자를 뿐인데 웃자란 가지가 뿌리로부터 멀어지려 제 머리를 찢고 온몸에 눈을 틔울 때 한밤중은 몸을 뒤집으며 떨기 위한 구실임을 잊지 마라 이르니 제 손바닥으로 허공을 문지르고 잎은 자라 시간을 흐리면서 흐르지 않고 주름만 깊어질지니 화형된 자들이 쌓인 행성은 백색의 외골격으로 추위를 형용하고서 마냥 떠올라만 있어 그 빛을 받아 붉어진 이마를 눌러주며 이 별에 있는 모든 돌아오는 것들의 이름을 되뇌어 주던 사람이 있더라 했었는데 토마토 기러기 일요일 같은 것들은 돌아오고도 그는 돌아오지 않고 이 별의 사육사는 지구의 적극적 기울기에 대해 침묵하고 우주에 늘어진 검은 현을 연주하던 꿈속에서 껌을 씹거나 꿈속에서 꿈꾸지 않는 꿈을 꾸며 긴 잠이 들었었다 이르니 문을 활짝 열어 두고 보는데 바람이 그것을 닫아 버린 것을 듣고서 놀라 꿈에서 깨어나 누구든 나타나서 내 창문 너머로 적의라도 보여 주기를 바라고는 다시 문을 열고 몸을 식히려 꿈속의 육신으로 기어들어 갔으니
[수상소감]
이십 대 중반 즈음에 장자를 읽으며 지냈던 여름이 있습니다. ‘의자의 탄생은 나무의 파괴를 뜻한다’라는 문장을 읽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불을 끄고 누우면 살아오며 행한 실수와 누군가를 아프게 했던 기억들이 엄습하여 잠들지 못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결국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부서질 것들이 있음에 겁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에서는 웃음을 터뜨리거나,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라는 조언을 해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오래 망설였고 멍청해지려 오랜 기간을 망설이며 지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지내면서도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또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저주하며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우둔하고 미련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며 살았습니다.
여전히 사방은 모순투성이였고 그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시를 썼습니다. 이제는 어떻게와 왜만 남아서, 망설이면서도 고민하며 썼습니다. 다시, ‘나무의 파괴는 의자의 탄생을 뜻한다’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쓰고 있습니다. 부서지고 쓸모없어진 언어들로 의미를 만들겠습니다. 의미 없어 보일 수 있는 작업들을 심사위원님들께서 어여쁘게 보아 주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껴 읽던 시집들과 견주어 이 자리에 오른 것에 마음이 아픕니다. 하여 저에게 주신 상이 헛되지 않게 앞으로도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시 쓰기로 돌아왔을 때 등대처럼 자리를 맡아두고 술을 많이 사주신 전형철 시인과 이범근 시인께 감사를 전합니다. 시집을 묶을 때 큰 도움을 주신 채상우 시인과 아름다운 평론을 써주신 장철환 평론가께도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호명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전화번호부처럼 보일까봐 나머지 분들께는 마음을 아껴 따로 감사를 전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더 망설이고 고민하며 살겠습니다. 대가가 되지 못하고 결론을 맺지 못한 채로 길 위에서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올해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김건영 시인(37)이 선정됐다고 상을 주관하는 계간지 시현실이 26일 밝혔다.
30세에 요절한 고(故) 박인환 시인(1926~1956)을 기리고자 1999년 제정된 박인환문학상은 올해가 20회째다. 한국 시단에서 자기만의 영토를 개척한 신진 시인을 발굴해 왔다.
올해 본심에는 5인의 시인이 거명된 가운데 김건영 시인의 '알고리듬' 외 9편을 수상작으로 최종 선정했다. 심사는 유성호 문학평론가, 강동우 평론가, 장석원 시인이 맡아 진행했다.
박인환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김건영 시인의 시가 사회적 차원과 개인의 내면을 결집해내는데 있어서 높은 성취를 보여준 동시에, 언어유희와 블랙유머를 결합해 청년세대가 겪는 사회적 고립감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이를 통해 자기만의 시적 영토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1982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김건영 시인은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부를 졸업했다. 2016년 월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으며 최근 시집 '파이'를 출간했다. 현재 '다시다'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상식은 11월에 열린다.
아마도 이 글을 단정하게 써내려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지 않을 것이며, 기쁨도 슬픔도 모두 공평하게 나눠 갖게 될 것입니다.
서윤후는 저의 필명입니다. 이제는 누군가 필명을 불러도 자연스럽게 뒤돌아보게 됩니다. 이 이름이 새롭게 각인된 몸, 영혼, 마음은 이제 이름을 받아들였습니다. 고지서에 적힌 이름, 예비군 훈련 통지서에 적힌 이름, 은행원이 집배원이 오랜 동창이 불러주는 이름과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번 박인환문학상은 저의 새 이름을 각별하게 불러준 일입니다. 저는 뒤돌아보고 있으며, 지금은 멀리 오지 않았지만 갈 길을 어림잡아보는 머쓱한 뒤통수입니다.
처음 다니게 된 회사를 그만둘 때, 저는 사장에게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엽서를 사직서 대신 제출했습니다. “시를 쓰고 싶습니다. 제 글을 쓸 시간이 필요해서 떠나고 싶습니다. 그 마음을 오래 두고 보았는데 변하지 않아 이렇게 엽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좋은 핑계였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살았습니다. 생활 전선에서 한 달을 벌어 한 달을 쓰는 일은 각박했습니다. 나에 대한 호기심을 짓이기는 일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돌보지 못한 채로, 살고 있는 집과 매 끼니 걱정과 사소한 선물과 빚지지 않는 일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육체에겐 꽤 괜찮은 일이었으나, 영혼이 있다면…… 인간이 영혼을 꿈꿀 수 있다면 아마도 그때의 제 선택은 옳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시를 생각하고, 시를 씁니다. 내가 느끼는 것을 다시 궁금해 하고, 내가 포장한 것을 애써 벗기면서 오늘 도착한 나를, 오늘 도착한 나로 두지 않습니다. 내가 편안해지는 것이 두렵습니다. 마음은 끝없이 충돌을 빚습니다. 그 충돌을 지켜보는 일을 잘 하고 싶습니다.
이번 상으로 저는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저는 저의 약점이나 나약함을 무거운 것으로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사라졌다고 잠시 착각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부족함에 기나긴 모험을 권하는 뱃사공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노를 저으며 가고 있습니다. 이 강이 여기저기에 뻗쳐 마르지 않게 하는 것은 저의 시를 읽어주는 독자들과 친구들, 가족들, 함께 시를 쓰는 동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스치듯 만나겠지만 끝끝내 자신의 물길을 찾아 떠나갈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계속 가보는 것입니다. 좋은 아득함입니다.
시를 쓰고 싶다는 저의 단순한 마음을 벌거벗은 것처럼 창피하게 만드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일어날 것입니다. 문학이 휘두를 수도 있는 칼과 창을 투구와 방패로 바꾸고 싶습니다. 바깥에는 부러진 화살들이 많고, 아직 날 선 화살들이 남아 있으며, 끊임없이 싸움은 지속되고 악한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약한 사람들의 어둠을 함부로 인용하며 살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의 눈먼 창문을 잠깐 두드리며 기다리는 일을 하겠습니다.
저의 용기를 기꺼이 받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시현실에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계속 어두워지지 말라고 온 마음으로 먼 곳에서 저의 불씨를 대신 품고 있는 엄마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자주 생각합니다. 천둥벌거숭이의 마음에 늘 형광등처럼 켜져 있는 저의 동생에게 모자란 사랑을 전합니다.
저는 그럼에도 계속 쓰겠지요. 쓰면서 천천히 허물게 되는 것들, 이로써 견고해지는 것들을 살피겠습니다. 부상당한 인간들이 병원에서 되돌아 나와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를 때, 꺼내주고 싶은 것을 가슴 안쪽에서 쓰고 있겠습니다. 언젠가의 슬픔이 오늘의 반듯함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내일엔 다시 망설임이 되겠지만요. 헤매는 동안 제 이름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무겁게 안겠습니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심사위원들에게 제출된 응모작은 5인의 작품 총 51편이었다. 일반적인 문학상의 진행 방식과 달리 이번 박인환 문학상은 공모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때문에 심사위원들 역시 저자에 대해 아무런 정보 없이 원고만 받아서 심사를 진행했다. 공모 형식 탓인지 본심에 오른 다섯 명 가운데 대부분이 젊은 시인들임은 작품을 읽으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며, 얼굴을 맞대고 앉은 자리에서 심사위원들의 의견은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로 모아졌다. 서윤후 시인과 이혜미 시인이 그들이다.
두 사람 모두 개성적인 스타일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시인이므로 누가 수상자로 결정되어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물론 세밀하게 읽으면 두 사람의 시적 문법에 작지 않은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혜미의 시가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의 연속과 단절을 이미지를 통해 변주하는 스타일이라면, 서윤후의 시는 진술과 이미지를 불연속적으로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들 간의 긴장관계에서 하나의 세계가 드러나는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대체로 이혜미의 시가 안정감을 획득하면서도 새로운 어법을 지녔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서윤후의 시에 대해서는 익숙한 진술 방식이 아니라 낯선 이미지들의 병치를 통해 세대적 감각을 드러낸다는 평가를 내렸다. 굳이 나누자면 이혜미의 시에서는 구심력이, 서윤후의 시에서는 원심력이 조금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우면서도 매혹적인 자기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시인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었으나, 낯선 시 쓰기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음에도 읽는 이의 감각을 사로잡는 이미지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흔쾌히 서윤후 시인을 제19회 수상자로 결정하게 되었다.
시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문학상에는 항상 문학적 경향성 논란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많은 문학상들이 저마다의 지향과 심사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초심을 지키지 못하는 까닭은 시인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제19회 박인환 문학상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들 또한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박인환’이라는 이름은 우리 시사(詩史)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 것일까? 굳이 밝히자면 이번 심사위원들은 ‘박인환’이라는 이름을 낯설고 도발적인 언어가 남긴 시의 힘이라는 맥락에서 읽은 듯하다. 시에서 언어와 이미지가 중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을 터. 수상자로 선정된 서윤후 시인의 문운(文運)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 김기택(시인), 고봉준 (평론가, 글), 김윤정(평론가)
시 전문지 시현실(발행인 원탁희)은 제19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서윤후(29) 시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서윤후 시인은 명지대학교 문창학과를 졸업 2009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어느 누구의 모든 동행]이 있다.
이번 박인환문학상 수상작품은 「발광고지(發狂高地)」이다.
박인환문학상은 30세에 요절한 천재적 작가 박인환 시인의 문학정신을 높이 선양하고 후진 발굴 양성을 위해 시전문지 시현실이 1999년 제정한 문학상이다.
박인환문학상은 젊은 시인들이 명예롭게 받고 싶어하는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해마다 시상하고 있으며 이번 시상식은 11월에 있을 예정이다.
* 기시감(旣視感, deja vu)과 대조적인 개념으로 실제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처음 경험하는 듯이 느끼는 기억 착각을 의미한다.
제15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오은 시인(32)이 선정됐다.
박인환문학상은 시전문 계간지 '시현실'(발행인 원탁희)에서 1999년 제정해 올해로 15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수상 작품은 '미시감(jamais vu)'이다.
강동우 문학평론가는 심사평에서 "오은 시인은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연금술적 기술과 다채로운 어조를 바탕으로 세계와 존재의 이면을 투시하는 시선과 포착된 대상의 특질을 다양한 각도에서 부각시킬 줄 아는 구성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무겁지 않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의 무게를 곁들이고 있다"고 평했다.
오은 시인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를 출간했다.
적막한 원시를 해체하고, 당신과 나는 창가에 앉아 아침을 먹습니다. 까만 겨울밤을 보낸 우리의 창밖엔 나도, 나의 당신도 없습니다. 공존하는 우리의 부재가 당신과 나의 창을 반투명으로 만듭니다. 창밖의 사람들은 산들바람을 맞으며 햇볕 좋은 곳으로 봄소풍을 갑니다. 우리가 피웠던 침대 위의 흰 꽃이 떠오릅니다. 송곳니와 부리를 발라낸 한송이 눈꽃, 꽃의 향기는 나침반의 붉은 바늘처럼 나를 따라옵니다. 눈에 띄면 녹아버리는 침묵의 문명, 나는 식탁의 북쪽에서 당신은 식탁의 남쪽에서 질기고 오랜 식사를 합니다. 우리는 마치 낙오한 동물들 같습니다. 우리의 배경에 희끗희끗 눈발이 비치고 하얀 평원이 펼쳐집니다. 나는 얼음 수염을 달고 당신은 얼음 눈썹을 달고, 멸종 직전의 북극곰처럼 남극에서 길 잃은 북극제비갈매기처럼, 우리는 서로의 눈속에 녹아 흐르는 만년설을 봅니다. 물 속에서 연어들이 솟구칩니다. 붉은 연어알이 말할 수 없는 사연으로 쏟아집니다. 날카로운 수저로 뜨는 결별 의식, 이 사연을 다 삼키면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밀봉된 편지가 되어 무리를 찾아 나서겠지요. 창밖의 사람들은 푸른 잔디 위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식사를 멈춘 우리의 식탁 위에 하얀 살갗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제14회 박인환 문학상 시상식 및 시현실 신인상 시상식이 28일 오후7시 서울 혜화동 예술가의 집(02-760-4715)에서 열린다.
올해 수상자는 박장호 시인으로 수상작품은 "전망 좋은 창가의 식사" 외 4편이다. 박장호 시인은 75년 서울 출생으로 2003년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7년 대산창작기금 밭음 시집으로 "나는 맛있다" 등을 출간 한 바 있다.
시현실 신인상 수상자로는 장미주, 이종호, 조극래 시인이 수상한다.
박인환 문학상은 시전문 계간지 ‘시현실’(발행인 원탁희)에서 1999년 제정해 올해로 14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심사위원으로는 박주택(시인), 이형권(시인), 강동우 평론가 등이 참여했다.
복도는 복도다, 복도는 걸어갈 수 있고, 복도는 서서 끝을 볼 수 있다, 복도는 너를 사랑한다, 복도는 말이 없고, 겨울밤의 복도는 조금 미쳐 있다, 복도에는 달빛이 흐르지 않고, 가로등빛이 흐르지 않고 복도의 불빛이 흐른다, 그것들은 흐르는 것들이다, 나는 복도의 끝에서 복도의 끝을 본다, 문을 열면서, 복도의 끝을 바라보면, 그 끝은, 어떤 아가리 같다, 용광로, 조금 떠서 날아가면 그 용광로에 삼켜질 수 있을 것 같은, 나는 너를 생각한다, 나는 그를 생각한다, 조금 미쳐서, 고개를 숙이고, 어떤 감동이 있는가, 누구에게도 묻지 않는다, 복도에는 창이 있고, 창밖에는 나무가 있고, 나무의 밖에는 세상이 있고, 세상의 밖에는 망설임이 있고, 망설임의 밖에는 황당함이 있고, 황당함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 말고는, 내가 너에게 이 시를 줄 것 같으냐, 나는 조금 미쳐 있고, 조금 미쳐서 겨울밤의 이 누추한 시를 쓰고 있다, 복도는 복도다, 복도에는 어떤 것들이 흐른다, 나는 복도에서 무언가 망설였다, 창을 열면서, 너를 사랑했다, 창을 닫으면서, 너를 사랑했다, 복도는 망설이는 곳이다, 우주처럼, 복도는 우선 복도다, 복도는 하나의 지평을 가지며, 복도는 두 개의 지평을 가지며, 복도는 세 개의 지평을 가진다, 복도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복도에 신문이 떨어질 때, 복도에 아이들이 뛰어갈 때, 복도에 세탁부가 지나갈 때, 복도에 손님이 지나갈 때, 복도는 여전히 복도다, 복도는 우울하다, 복도는 조금 휘어 있다, 복도는 정확한 직선이 아니다, 복도는 조금 미쳐 있다, 조금 미치고 있는 내가 바라보는 복도는 조금 미친 복도다, 복도는 깨끗하지 않다, 복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도에서 벗어나 문을 열고 마루로 진입해야 한다, 나는 복도에 문득 서 있었다, 복도의 다른 끝에 당신이 있었다, 내가 있었다, 복도는 너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복도, 우리의 시.
계간 시 전문지 '시현실'(발행인 원탁희)은 제12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이준규 시인(수상작 '복도')이 선정됐다고 26일 밝혔다.
이준규 시인은 1970년생으로 2000년 '문학과사회' 여름호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흑백'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등이 있다.
박인환 문학상은 시인 박인환 선생의 문학 정신을 높이 선양하고 후진 발굴과 양성을 위해 계간 시현실이 1999년 제정한 권위 있는 문학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