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 김학중
1
눈먼자가 처음 그 벽에 부딪쳤을 때 벽이 거기 있다는 그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벽을 발견하게 된 것은 눈먼자가 자신의 몸을 뜯어 그린 벽화를 보고 나서였다.
2
벽화는 아름다웠다. 거친 손놀림이 지나간 자리는
벽의 안과 밖을 꿰매놓은 듯했고 스스로 빛을 내듯 현란했다. 색색의 실타래들이 서로 몸을 섞어 꿈틀대는 그림은 벽에서 뛰쳐나가려는 심장 같았다. 그 아름다움은
벽의 것인지 벽화의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벽화를 본 사람들은 구토와 현기증을 호소했다. 그들은 벽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고, 환희인지 고통인지 알 수 없는 감각을 느끼며 벽에서 뜯어내기 시작했다. 벽화가 부서지고 있었다. 벽 앞에 모여든 사람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3
벽화의 잔해를 손에 쥐고 나서야 사람들은 거기 벽이 있었음을 알았다. 벽화를 그린 자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단지 그들은 그 자를 눈먼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를 부를 이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붙인
이름 아닌 이름
벽을 나누어 가지고도
벽을 볼 수 없었던 자들은 흩어지며
그 이름만을 나누어 갔다.
김학중(40·사진) 시인이 제18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계간 시 전문지 ‘시현실’이 23일 밝혔다.
수상작은 ‘벽화’를 비롯한 시 4편. 시현실의 심사위원들은 “거대한 자본의 성채에서 쫓겨나거나 소외된 소시민과 젊은이들의 꿈과 도전을 눈먼 신의 유희에 빗대어 블랙 유머로 은유했다”며 “신화적 서사와 실험적 사유의 미학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눈이 좋지 않았던 김 시인은 갈수록 시력이 약화하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하지만 역경을 딛고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후 지난 4월 첫 시집 ‘창세’를 출간했다.
박인환문학상은 요절한 모더니스트 시인 박인환(1926∼1956)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제정됐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29일 서울 동숭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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