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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드 마크 / 나동하    

 

타이어의 진한 울음이 길바닥에 찍혀 있다.

한껏 입 벌린 타이어의 순한 눈망울이 얼비치는 울음은

작정이라도 한 듯

중앙분리대를 향해 길고 곧게 뻗어 있다.

울음의 끝자락이 살짝 비틀린 걸로 보아 타이어는

속도의 고삐에 숨통이 막혀

한참을 컥컥거렸을 것이다.

짧은 반항을 감행하기까지

지문이 닳도록 달린 타이어는

자잘한 살점이 묻은 울음 한 바가지

길바닥에 엎지르고

뒤이어 쏟아지는 눈물을 질끈

삼켰을 것이다.

폭죽 같은 비명소리

하늘로 치솟는 순간

밤하늘이 잠시 환해지며

고요히 떨어지던 별빛들도

덩달아 비틀거렸을 것이다.

몸속 가득한 울음소리

길바닥에 모조리 토해낸 타이어는

또 어디로 고분고분 끌려갔을까?

위로하듯 지나가는 타이어들이

뒤늦게 한 번씩 상처를 어루만져보지만

한번 터진 울음은 조금도 다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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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층도서관 / 조유희

   
언젠가 한번쯤 만났을 수수꽃다리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햇빛
바닥을 치는 햇빛을 볼 때마다 나는 밀란 쿤데라를 생각한다

 

도서관 건너편 양로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생명력 없는 책들에서 생명을 찾는 사람들,
책속에는 그림자로 가득하다

 

오래된 이야기 끝에 놓여 있는 그림자와 새로운 그림자 사이에
도서관 책들은 우울하다

 

쉽게 읽혀지지도 않고, 쉽게 깨달을 수도 없는 행간들
삐죽하게 꽂혀있던 사람과 사람 사이에 행간들은 좁혀있지 않는다

 

딱딱한 시선으로 따라 나오는 문자들의 행렬은
오래된 이야기를 다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머리위로 펄럭이며 1mm씩 자라나는 기억에는 표정이 없다

 

생명 없는 책이 생명 있는 사람을 읽는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도 없고 망각도 없다

 

햇빛은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허기가 책장을 넘긴다
책장 속에 번지는 얼굴들이 내 어깨를 읽는다

 

누군가 읽고 간 햇빛이
책갈피 사이에 끼어 있다

 

 

 

 

 

[심사평]

 

신인상 심사는 언제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미지의 신인이 갖고 있을 폭발적인 에너지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러나 기성시인들의 응모작 심사에서도 느꼈던 작품들의 편차는 신인이기에 더욱 심했다. 의욕과 성취도의 불균형 때문이다. 접수번호 신인 26의 [소주, 병]과 접수번호 신인 108의 [우리 동네 이층도서관]은 각각 해당 작품의 성취도와 성취도를 떨어뜨리는 약점 때문에 한동안 즐거운 망설임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접수번호 26은 작품 속에 끌어들인 서사가 내용을 풍요롭게 만드는 동시에 마무리의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취약점이 되었다. 그에 비해 접수번호 108의 [우리 동네 이층도서관]은 유창한 발화가 관념을 형상화시키는 미학적 능력이 월등했기에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아마도 오랜 트레이닝과 사색의 결과이겠지만, 앞으로도 이미지와 상상력, 마무리의 증폭점 등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심사위원 박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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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 심상숙

 

책상위에서 달그락거리는 약수터조약돌을 만지작거린다

조약돌에 깃든

멀어졌다가 다가오는 발자국소리

벽 쪽으로 돌아누우며 혼잣말을 끌어 덮던 친구

외국에 가족을 두고 오래 뒤뚱거리던 외발자국 소리

손바닥위의 차가운 체온이 묵직하다

모가 난 제 앞가슴에

약수 물 푸르도록 고여 있구나

약수터로 내딛는 길 위에 오독하니 얹혀져

아침을 밟고 내려서는 이를 뜻밖에도 뒤뚱거리게 하던

흔들리는 몸속에 기울지 않는

수평저울 추 하나씩 나지막이 매달아주던

기운달 다시 산 꼬리를 환하게 부풀어 오를 때면

약수터에 파문을 일으켰던 게 바로 너 였구나

산새소리 바람에 나부끼고

흰 눈이 싹을 틔우던 날

차가운 품 헤집어 슬며시

모난 가슴께로 따스하게 들쳐주던

숨 추수리던 이 머리맡에 앉아

떨리는 손바닥에 꼭 쥐어주고픈

들어서 놓을 때마다 맑은 소리로

중심을 향하여 날개를 다는 작은 조약돌

오래 밟힌

너의 흰 이마가 단단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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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물고기 / 김영진


시원始原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을 물고기가

삭아가는 암자 추녀 끝에 매달려

영원을 헤아리듯 그네를 탄다

은빛 비늘을 물방울로 튕기며

요리조리 대양을 누빌 날쌘 몸이

놋쇠 종발鐘鉢에 갇혀 몸부림을 친다

이따금 스치는 바람에 떨렁떨렁

맑은 소리는 시원으로 향하는데

투박한 형해形骸는 굴레를 빗겨가지 못한다

저녁공양 목어의 간절한 울림이

쉰 목소리로 텅 텅 메아리 치고

산그늘 드리워 밤은 깊어 가는데

갇힌 물고기는 제 몸으로 공양을 한다

풍경風景과 풍경風磬속에서

풍경風經으로 뱃속을 채우고

빈속을 채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신호를 일상 보내지만

울림은 바다를 향해 가고 싶다는

은빛 비늘을 번득이며 나가가자는 신호일 뿐

암자 추녀 끝에 매달린 물고기는

영원을 가늠하는 그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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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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