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층도서관 / 조유희
언젠가 한번쯤 만났을 수수꽃다리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햇빛
바닥을 치는 햇빛을 볼 때마다 나는 밀란 쿤데라를 생각한다
도서관 건너편 양로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생명력 없는 책들에서 생명을 찾는 사람들,
책속에는 그림자로 가득하다
오래된 이야기 끝에 놓여 있는 그림자와 새로운 그림자 사이에
도서관 책들은 우울하다
쉽게 읽혀지지도 않고, 쉽게 깨달을 수도 없는 행간들
삐죽하게 꽂혀있던 사람과 사람 사이에 행간들은 좁혀있지 않는다
딱딱한 시선으로 따라 나오는 문자들의 행렬은
오래된 이야기를 다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머리위로 펄럭이며 1mm씩 자라나는 기억에는 표정이 없다
생명 없는 책이 생명 있는 사람을 읽는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도 없고 망각도 없다
햇빛은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허기가 책장을 넘긴다
책장 속에 번지는 얼굴들이 내 어깨를 읽는다
누군가 읽고 간 햇빛이
책갈피 사이에 끼어 있다
[심사평]
신인상 심사는 언제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미지의 신인이 갖고 있을 폭발적인 에너지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러나 기성시인들의 응모작 심사에서도 느꼈던 작품들의 편차는 신인이기에 더욱 심했다. 의욕과 성취도의 불균형 때문이다. 접수번호 신인 26의 [소주, 병]과 접수번호 신인 108의 [우리 동네 이층도서관]은 각각 해당 작품의 성취도와 성취도를 떨어뜨리는 약점 때문에 한동안 즐거운 망설임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접수번호 26은 작품 속에 끌어들인 서사가 내용을 풍요롭게 만드는 동시에 마무리의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취약점이 되었다. 그에 비해 접수번호 108의 [우리 동네 이층도서관]은 유창한 발화가 관념을 형상화시키는 미학적 능력이 월등했기에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아마도 오랜 트레이닝과 사색의 결과이겠지만, 앞으로도 이미지와 상상력, 마무리의 증폭점 등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심사위원 박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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