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창가의 식사 / 박장호
적막한 원시를 해체하고, 당신과 나는 창가에 앉아 아침을 먹습니다. 까만 겨울밤을 보낸 우리의 창밖엔 나도, 나의 당신도 없습니다. 공존하는 우리의 부재가 당신과 나의 창을 반투명으로 만듭니다. 창밖의 사람들은 산들바람을 맞으며 햇볕 좋은 곳으로 봄소풍을 갑니다. 우리가 피웠던 침대 위의 흰 꽃이 떠오릅니다. 송곳니와 부리를 발라낸 한송이 눈꽃, 꽃의 향기는 나침반의 붉은 바늘처럼 나를 따라옵니다. 눈에 띄면 녹아버리는 침묵의 문명, 나는 식탁의 북쪽에서 당신은 식탁의 남쪽에서 질기고 오랜 식사를 합니다. 우리는 마치 낙오한 동물들 같습니다. 우리의 배경에 희끗희끗 눈발이 비치고 하얀 평원이 펼쳐집니다. 나는 얼음 수염을 달고 당신은 얼음 눈썹을 달고, 멸종 직전의 북극곰처럼 남극에서 길 잃은 북극제비갈매기처럼, 우리는 서로의 눈속에 녹아 흐르는 만년설을 봅니다. 물 속에서 연어들이 솟구칩니다. 붉은 연어알이 말할 수 없는 사연으로 쏟아집니다. 날카로운 수저로 뜨는 결별 의식, 이 사연을 다 삼키면 우리는 각자의 방향으로 밀봉된 편지가 되어 무리를 찾아 나서겠지요. 창밖의 사람들은 푸른 잔디 위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식사를 멈춘 우리의 식탁 위에 하얀 살갗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제14회 박인환 문학상 시상식 및 시현실 신인상 시상식이 28일 오후7시 서울 혜화동 예술가의 집(02-760-4715)에서 열린다.
올해 수상자는 박장호 시인으로 수상작품은 "전망 좋은 창가의 식사" 외 4편이다. 박장호 시인은 75년 서울 출생으로 2003년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7년 대산창작기금 밭음 시집으로 "나는 맛있다" 등을 출간 한 바 있다.
시현실 신인상 수상자로는 장미주, 이종호, 조극래 시인이 수상한다.
박인환 문학상은 시전문 계간지 ‘시현실’(발행인 원탁희)에서 1999년 제정해 올해로 14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심사위원으로는 박주택(시인), 이형권(시인), 강동우 평론가 등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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