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를 만나다 / 홍철기
문득
뭇별들의 제자리걸음이
그렁그렁한 눈물을 머금게 하는 밤
안개 속 방파제는
육지로 난 길 인양
어서 나아가 보라며
건너가 보라며 나를 부르는데
엉겨 붙어 나를 말리는 바람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울먹일 때
빈 껍질만 남아 뒹구는 희망
피난민처럼 몰려왔다
이젠 떠나고 싶은데
갈 곳이 없는지 멍자국 같은 사연
하나 둘 모여 불을 밝히고
마을을 이루고 그래서 한세상
어우러진 잡풀처럼 흔들릴 때
알고 있었다 저마다 소금에 저린
마음 한 다발씩 묶어 쌓아두고 있음을
맨 정신에 타오르지도 못했던
마음 불쏘시개 삼아
한 잔 두 잔 마신 술에
취하기는 바다가 취하고 끝내
바락바락 악을 쓰며 달려들다 고꾸라지며
살 아 야 하 나
이어지지 못하고 부서져 되돌아가 버리는 말
담뱃재 떨듯 매일같이 칭얼대는
희망쯤이야 쉬이 떨어내면 그만이라고
말보다 먼저 떠난 파도가
다한 힘으로 와 쓰러질 때.
저기 저 봉두난발한 바닷바람
사이 위태위태하게 날아가는
철새 한 마리
[당선소감] “마음의 강 건너는 세상의 시 쓸 터”
강을 따라 걷는 사람은 결코 강을 건널 수 없다는 말. 언제나 마음은 강 건너에 있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해 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합니다.
제겐 문학이 그랬고, 시를 쓴다는 것이 그랬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 강을 건너려 합니다. 세상에 시를 써 보이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문학이 따뜻한 밥 한 공기임을, 시가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게 해주는 친구임을 알게 해주고 싶다면 과한 욕심일까요? 그래도 이제 시작했으니 반은 해놓았다고 등을 토닥여 주실거라 믿습니다. 부족한 제 시가 세상 앞에 나갈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전북도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대학시절 시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신 원광대 정영길교수님, 백제예술대 김동수교수님, 살면서 언제나 문학과 함께 하라고 조언해주신 대진대 서범석교수님, 이병헌교수님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한다는 말, 오늘은 맘껏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누나가족들, 그리고 당신이 북극이라면 난 북극에서만 살고 싶은 북극곰이 될테니 결혼해달라는 제 말에 웃으면서 결혼해준 내 아내 탁경화, 그리고 우리아들 홍연후, 뱃속의 다복이 모두 사랑합니다.
끝으로 언제나 바쁘지만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군산시 수송동주민센터 직원과 군산시 사회복지공무원 모두 2012년 행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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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는 궁극적으로 삶 혹은 체험의 기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는 언어예술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작품을 선정함에 있어 언어예술성을 담지한 체험의 진솔성이 기본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격을 갖춘 작품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낙점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작품에 비해 감동의 진폭이 남달라야 한다.
곡진한 정서가 튼실한 시적 형상화를 이루고 있어 선자의 손에 최종까지 남은 분들은 홍철기 ‘철새를 만나다’ 김은실 ‘겨울, 민원을 내다’, 임복금 ‘갈대숲에서’, 노원숙 ‘소라보 당신’ 이근영 ‘고추말리기’였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모두 생의 갈피에서 길어 올린 투명하고 절절한 정서를 언어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 하였다. 그러나 김은실과 임복금의 작품은 몇몇 군데에서 노출되는 불투명한 표현 때문에, 노원숙과 이근영의 작품은 안이하고 상식적인 표현 때문에 시적 긴장감이 이완되고 있다. 홍철기는 같이 응모한 ‘금일도’의 작품도 미학적 완성도가 뛰어났다.
특히 철새를 통해 인생의 한 단면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철새를 만나다’ 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선명한 묘사력, 구조적 안정감과 더불어 유려한 리듬감을 확보한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리하여 ‘철새를 만나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훌륭한 시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 양병호 시인(전북대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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