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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를 만나다 / 홍철기

 

 

문득

뭇별들의 제자리걸음이

그렁그렁한 눈물을 머금게 하는 밤

안개 속 방파제는

육지로 난 길 인양

어서 나아가 보라며

건너가 보라며 나를 부르는데

엉겨 붙어 나를 말리는 바람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울먹일 때

빈 껍질만 남아 뒹구는 희망

피난민처럼 몰려왔다

이젠 떠나고 싶은데

갈 곳이 없는지 멍자국 같은 사연

하나 둘 모여 불을 밝히고

마을을 이루고 그래서 한세상

어우러진 잡풀처럼 흔들릴 때

알고 있었다 저마다 소금에 저린

마음 한 다발씩 묶어 쌓아두고 있음을

맨 정신에 타오르지도 못했던

마음 불쏘시개 삼아

한 잔 두 잔 마신 술에

취하기는 바다가 취하고 끝내

바락바락 악을 쓰며 달려들다 고꾸라지며

살 아 야 하 나

이어지지 못하고 부서져 되돌아가 버리는 말

담뱃재 떨듯 매일같이 칭얼대는

희망쯤이야 쉬이 떨어내면 그만이라고

말보다 먼저 떠난 파도가

다한 힘으로 와 쓰러질 때.

저기 저 봉두난발한 바닷바람

사이 위태위태하게 날아가는

철새 한 마리

 

 

 

[당선소감] “마음의 강 건너는 세상의 시 쓸 터”

 

강을 따라 걷는 사람은 결코 강을 건널 수 없다는 말. 언제나 마음은 강 건너에 있지만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해 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합니다.

 

제겐 문학이 그랬고, 시를 쓴다는 것이 그랬습니다. 그런 제가 이제 강을 건너려 합니다. 세상에 시를 써 보이려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문학이 따뜻한 밥 한 공기임을, 시가 세상을 더불어 살아가게 해주는 친구임을 알게 해주고 싶다면 과한 욕심일까요? 그래도 이제 시작했으니 반은 해놓았다고 등을 토닥여 주실거라 믿습니다. 부족한 제 시가 세상 앞에 나갈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전북도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대학시절 시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신 원광대 정영길교수님, 백제예술대 김동수교수님, 살면서 언제나 문학과 함께 하라고 조언해주신 대진대 서범석교수님, 이병헌교수님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한다는 말, 오늘은 맘껏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누나가족들, 그리고 당신이 북극이라면 난 북극에서만 살고 싶은 북극곰이 될테니 결혼해달라는 제 말에 웃으면서 결혼해준 내 아내 탁경화, 그리고 우리아들 홍연후, 뱃속의 다복이 모두 사랑합니다.

 

끝으로 언제나 바쁘지만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군산시 수송동주민센터 직원과 군산시 사회복지공무원 모두 2012년 행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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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는 궁극적으로 삶 혹은 체험의 기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시는 언어예술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작품을 선정함에 있어 언어예술성을 담지한 체험의 진솔성이 기본항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격을 갖춘 작품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낙점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작품에 비해 감동의 진폭이 남달라야 한다.

 

곡진한 정서가 튼실한 시적 형상화를 이루고 있어 선자의 손에 최종까지 남은 분들은 홍철기 ‘철새를 만나다’ 김은실 ‘겨울, 민원을 내다’, 임복금 ‘갈대숲에서’, 노원숙 ‘소라보 당신’ 이근영 ‘고추말리기’였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은 모두 생의 갈피에서 길어 올린 투명하고 절절한 정서를 언어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 하였다. 그러나 김은실과 임복금의 작품은 몇몇 군데에서 노출되는 불투명한 표현 때문에, 노원숙과 이근영의 작품은 안이하고 상식적인 표현 때문에 시적 긴장감이 이완되고 있다. 홍철기는 같이 응모한 ‘금일도’의 작품도 미학적 완성도가 뛰어났다.

 

특히 철새를 통해 인생의 한 단면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철새를 만나다’ 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선명한 묘사력, 구조적 안정감과 더불어 유려한 리듬감을 확보한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리하여 ‘철새를 만나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훌륭한 시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 양병호 시인(전북대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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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내시장 / 하미경

 

야채 썩는 냄새가 고소해지면

장터는 복숭아처럼 익는다

중고 가게 앞 내장을 비운 냉장고가

과일의 단내며 생선냄새며 땀내 들을

가리지 않고 거두어들일 무렵

은혜수선집은 벌써 불을 켜고 저녁의 한 모퉁이를 깁는다

박미자머리사랑을 지나면 몽땅 떨이라느니

거저 가져가라느니 농약을 치지 않은 다급한 말들이

등을 타고 내려 고무줄 늘어난 추리닝처럼

낭창낭창 소쿠리 속으로 들어간다

남들 보기 거시기 하다고 자식들이 말려도

팔 것들을 꾸역꾸역 보자기에 챙겨 나온 할머니는

돌아갈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지

빠진 이 사이로 질질질 과즙을 흘리며

복숭아 짓무른 데를 떼어 물고 오물거린다

문 닫는 속옷 가게에는 땡땡이무늬 잠옷이

잠들지 않고 하늘거린다 잠옷을 입고

늘어지게 자고 싶은 허리 대신

빈 바구니마다 어느새 어둠이 드러누웠다

 

 

 

[심사평] 

 

올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는 오백 십여 편의 많은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응모하신 분들의 주소가 일부러 안배라도 한 것처럼 전북뿐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해서 8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예년에 비하여 많은 편인지 적은 편인지 전북도민일보의 신춘문예 심사를 올해 처음 맡게 된 선자로서는 잘 모를 일이지만 510 : 1이라는 그 경쟁률이 참으로 아찔했다.

 

대개는 한 분이 3 편 내지 10 편씩 보내셨다는데 어떤 분은 48편이나 되는 시를 한꺼번에 응모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48 편은 너무 많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달랑 3 편만 보내신 경우는 그걸로 그 문학적 역량을 가늠하기에는 너무 섭섭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데도 3 편씩 응모하신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는데. 그건 아마도 여기저기 중복투고를 피하려고 작품들을 분산시킨 결과일 것이다.

 

예심을 거쳐 결선에 오른 작품은 여섯 분이 응모하신 23 편이었다. 결선에 오른 작품들은 우열을 가리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런 걸 행복한 고민이라고들 한다는데, 막상 닥치고 보면 그건 결코 행복한 일이 못 된다. 행복하기는커녕 작품을 하나씩 제외시킬 때마다 여러 차례나 망설여야 하는 게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그 중에서 한 편만 가려 뽑을 게 아니라 한 사람당 한 편씩 여섯 편만 당선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그렇게 뽑아 본 여섯 편은 다음과 같다. 성함을 밝히는 일이 낙선된 분들께는 결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품명만 밝힌다.

 

「분천동 본가입납」 , 「인절미」, 「개성삼계탕」, 「엄마의 인주」, 「장항선」,「모래내시장」.

 

「인절미」,「개성삼계탕」,「장항선」,「모래내시장」은 공교롭게도 응모작 묶음의 두 번째에 있는 작품들이었다. 신춘문예 심사를 하다보면 번번이 맨 앞에 내세운 작품보다 그 다음 작품이 선자의 맘에 드는 일이 많은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맨 앞에 내세운 작품들은 흔히 말하는 ‘신춘문예적 경향’을 의식하느라 온몸에 힘이 들어간 것 같고 , 그런 경향으로부터 조금 비껴 선 두 번째 작품들이 비교적 안정감을 유지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분천동 본가입납」과「모래내시장」두 작품을 마지막까지 저울질하다가 작품의 안정감과 말맛과 그 정감들이 다소 돋보이는 하미경의「모래내시장」을 당선작으로 뽑으면서 동짓달 긴긴 밤, 뽑지 못한 작품들 때문에 못내 마음이 무겁다.

 

- 심사위원 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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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부문 수상자 하미경> "마음 다스릴 수 있는 시 평생 함께하고 싶어요"

 

단 한 줄의 문장을 쓰기 위해 숱한 밤을 고민했을 사람들. 그들은 신춘문예 도전에 앞서 ‘문학’을 향한 사랑을 어떻게 고백할지 몰라 어쩌면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새로운 출발점에 선 201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하미경(시), 배귀선(수필), 오정순(단편소설)씨는 이날의 열정을 깊이 간직하고만 싶다. 한국문단의 거목이 되고 싶은 가슴 벅찬 꿈을 안은 새내기 문인들의 당찬 포부를 들어본다. 

 

“시 한 줄을 더 쓰라면서 살림을 도와준 사랑하는 가족들과 제가 가진 재능을 펼쳐보라면서 힘을 북돋워 준 목사님과 지인들, 해질녘 퇴근길이면 저의 지친 몸과 고독감을 함께 나눠준 모래내시장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시를 좋아해 대학도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충실하게 시작을 이어가지 못했던 하미경(42·전주시 인후동)씨는 이번 신춘문예 시 당선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수년 전 전북여성백일장에서 차상을 받은 후로 시집도 많이 보고, 시 공부를 틈틈이 해온 노력의 결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바쁜 일상을 쪼개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다니면서 밤늦도록 시를 공부에 매진한 지도 두 해가 흘렀고, 올여름 수료를 앞두고 있으니 그 기쁨 역시 두 배다. 그에게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당선작 ‘모래내시장’을 비롯한 주변의 상황과 인물, 이를 통한 속상한 심정, 도시의 직장생활에서 번지는 지독한 고독감 등은 훌륭한 소재다. 하씨는 시를 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시를 쓰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운동 겸 편안한 복장으로 자주 가는 곳이 바로 모래내 시장이에요. 갈라진 손으로 야채를 다듬고 있는 시골 할머니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죠. 우리네 엄마가 저 손으로 우릴 키웠구나 하는 생각, 바로 그곳에 저의 시가 있었습니다.”

 

독서논술 강사로 10년째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하씨. 그래서인지 몰라도 동시와 동화에도 관심이 많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면 늘 새로운 것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이번 등단으로 자신감이 붙은 만큼 여러 분야에서 두루 창작열을 불태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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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달아나요 / 이미자

 

 

강바람이 불 때마다 프릴 달린

스커트 자락 출렁거려요

산은 어느새 태양의 목, 낚아채 오픈카에 태워요

그러자 쉿!

재빠르게 산 스커트 안 들여다봐요 더듬는 하늘

충혈 됐네요 파랗게 놀란 강

소매 걷어 철썩! 뺨을 때려요

얼얼해진 태양, 차에 앉자마자

노을 짙게 뿌리며 달아나요

찌그러진 엔진소리 허공을 찍어대구요 저녁은 찰, 랑

Mp3 달고 달아나요

쉿! 강물 속 구름 건들건들

곤두박질쳐요 옷엔 검은 구름 박혀버렸네요

지나가던 바람

웃음으로 입방아를 찧어요

스커트 또 아찔하게 올라가구요, 오후는 눈 질끈 감아버립니다

하루가 기절해요

21g의 푸른 영혼이 잠시 흘러가고 있어요

회색 모자를 쓴

저녁,

어둠이 들렸네요

 

 

 

[당선소감] 끝없는 길 열정으로 갈 것

 

새해가 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오늘 당선 통보를 받았다.

즐겁다.

그러나 이 순간을 잠시 미루어본다.

밤을 새우며 글에 매달린 날들이 많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받아 적던 날, 온전히 내 것이 되기도 했지만 홀연히 떠나가 종잡을 수 없었다.

 

일상이 되어버린 비몽사몽간의 받아 적음. 흡사 그것은 장난감을 손에 쥐고 손에 놀 듯 서서히 난 중독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것은 종종 지루한 싸움이었다.

주저앉으며 갈등하던 날. 나를 힘들게 했다.

혼자 쓰고 혼자 퇴고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빠른 길을 찾으려고 했지만 나의 보폭으로 이내 서기로 했다.

이 길이 끝이 없다는 것을 안다.

험난하다는 것도 안다.

러함에 무모한 날들이지만, 뼈가 녹는다는 것을 아는 날들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이것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이유다.

작품을 쓰며 흡족했던 날들보다 충족되지 않았던 날들이 더욱더 많았다.

어찌 보면 욕심이 많았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대작을 쓴다는 각오로, 이 세상에서 제일 처음 하는 것처럼, 써라.” 맹문재 교수님의 말씀과 “공부는 끝이 없는데 왜 끝을 찾느냐.” 정연승 교수님의 말씀은 오래도록 새길 것이다.

 

이제 조금만 더 즐거워하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 하자. 이것이 내가 문학을 오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세상의 모든 시인들과 문학인들에게 감사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책 속에서 안내해주는 이들, 나의 선배들이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복된 새해가 되길. 내가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열정을 가지고 써야겠다.

열정은 신이 내린 축복이니까.

 

문학을 사랑하시는 주성대학교 정상길 총장님과 그동안 지도해 주신 최승옥 학과장님 문효치 교수님 윤혁민 교수님 정연승 교수님, 감사합니다.

 

문학의 깊이, 넓이를 있게 해주신 맹문재 교수님 고형렬 선생님 이재무 선생님, 감사합니다. 전북도민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우리 언니와 우리가족, 참 많이 감사해요. 머리에 항상 쉬리가 살고 있는 우리 초등학교 친구들, 난 너희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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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가능성에 대한 선택과 응시

 

시가 ‘무엇’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이 있다. 시가 발휘하는 ‘힘’이 무엇이냐는 의문도 많다. 시의 ‘무엇’에 대한 하나의 확실한 징표를 얻기 위해 우리 사회는 매년 신춘문예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춘문예는 우리 사회에 하나의 문화현상이 된지 오래다. 신춘문예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시를 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시의 ‘힘’은 자연발생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시가 현실적으로 결핍되기 쉬운 삶의 진정성에 대한 하나의 울림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시대 상황에 대한 지적 대응양식을 보여 준 작품들, 삶의 간고함을 서정적으로 풀어낸 작품들, 소재주의적인 경향을 보인 작품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예심을 하고 보니 선에 든 작품들과 들지 못한 응모작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좀 더 치열한 문학수업, 좀 더 왕성한 문학 독서를 필요로 하는 작품들도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적으로 김형태님의 <쓰레기꽃과 벌>은 성실한 습작 태도가 몸에 배인 작품으로 읽혔으나 적지 않은 작품을 응모했음에도 성실함을 값할 수 있는 참신성에서 아쉬웠다. 김대봉님의 <밤을 먹다>는 발상은 참신하지만 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형상화에서 조금은 힘에 부치는 듯했다. 홍선영님의 <이력이 난 기도>는 작품을 많이 써본 흔적을 엿볼 수 있는 필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모두에서 언급했던 신춘문예의 독창성과 참신성에서 아쉬움을 간직한 채 당선작과 끝가지 경합하였다. 이미자님의 <오후가 달아나요>는 세련미와 유려함에서 조금 아쉬웠지만, 참신성과 독창적인 서정성에서 여타 작품보다 앞선다고 생각하여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시간의 관점을 내재적인 서정의 흐름과 병치시키면서 시상을 갈무리해 내는 역동성이 참신했다. 특히 간결하게 상황을 서정화하고, 비약적으로 시의 진술을 끌어가는 힘에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21g의 푸른 영혼’이라는 생동적 삶의 이미지를 ‘회색 모자를 쓴/ 저녁,/ 어둠이 들렸네요’같이 결구(結句)해 내는 솜씨에서 시의 본령에 대한 안정된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당선작과 함께 투고된 다른 작품들에서 가능성을 보았으며, 그런 가능성이 앞으로 이 시인의 문학적 성장을 응시해도 좋다고 생각하여 당선작으로 삼았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욱 분발하여 시의 좋은 재목이 되시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이동희 전북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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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꽃 / 정성수 

 

 

오백 살 배롱나무가 선국사* 앞마당에

가부좌를 틀고 있다.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고서

여름밤 폭죽처럼 피워 낸

저 붉은 꽃들.

깡마른 탁발승이 설법을 뿜어내는지

인연의 끈을 놓는 아픔이었는지

이승에서 속절없이 사리舍利들을 토해내고 있다.

배롱나무꽃

붉은 배롱꽃은 열꽃이다.

온 몸으로 뜨겁게 펄펄 끓다가 떨어진 꽃잎 자국은

헛발자국이다.

피기는 어려워도 지는 것은 금방인 꽃들은

저마다 열병을 앓다가 진다.

저물어가는 여름 끝자락에

신열을 앓다가 가는 사람이 있다.

배롱꽃처럼 황홀하게

무욕의 알몸으로 저 화엄 세상을 향해서

쉬엄쉬엄

 

* 선국사 : 전북 남원시 교룡 산성 내에 있는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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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의 응축적 결정과 여운 돋보여"

 

예선 통과의 작품 수는 160여 편이였다. 응모자는 도내 뿐 아니라, 부산·인천·포항·대구·광주에 걸쳐 있었다. 10대로부터 70대의 나이층이었으나 40∼50대가 주였다.

 

시의 양식도 자유시를 비롯, 시조시·동시도 있었다.

 

한마디로 작품 수준을 말하기는 어렵다. 각자 나름의 시세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어디까지나 선자 나름의 눈으로 작품을 읽고 가릴 수밖에 없다.

 

응모작들을 일독한 후, 골라낸 작품은 고제우· 신도홍 · 김삼경 · 이현주 · 김금아 · 김형태 · 정성수 님들의 것이었다. 각자의 작품들이 지닌 장점도 볼 수 있었다.

 

동심의 세계(고제우), 생활속 여심(신도홍), 산뜻한 감성(김삼경), 해학적 기지(이현주), 폭넓은 사유(김금아) 등이 곧 그것이다.

 

그러나 시에 대한 온축이나 역량 면에 있어서 김형태와 정성수의 작품들이 위 여러 응모자의 작품에 비하여 뛰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자로서의 호감이 더 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김형태·정성수는 다같이 시에 대한 그동안의 수련 과정도 만만찮다는 것을 각각 10편·5편의 응모작에서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시어 하나를 골라 쓰는데도 많은 고심을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토박이말에 대한 애정에도 호감이 갔다. ‘뜸베질’ ‘되창문’ ‘노박이’ ‘고빗사위’ ‘옴나위’ 등의 낱말이 지닌 정감은 오늘날 되챙겨 보고 싶은 우리의 토박이 말이다.

 

최종 선정에 번갈아 읽으며 들었다 놓았다 적잖이 망설였다. 끝내는 정성수의 ‘배롱나무꽃’을 당선작으로 내어밀기로 하였다. 요설적 산문적인 시행 처리 보다도 응축적인 시의 결정과 그 여운을 사기로 한 것이다.

 

정성수 시인의 시의 앞날을 빌어 마지않는다.

 

- 심사위원 최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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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일 / 공인숙

 

 

오랫동안 바람을 사랑했습니다

바람만큼 외롭고 쓸쓸한 건 이 지상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들녘에서, 포구에서, 노을 비껴 가는 강가에서도

언제나 안녕하며 내 마음을 쓸어줍니다

바람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다만, 살구꽃이 눈부신 날

할머니 무릎베개에 옛 이야기 듣는

아이의 눈꺼풀을 힘겹게 하는 것도,

깊은 우물 속 맑은 물 위에

꽃잎의 연서를 날리는 것도

산 그림자가 마을로 내려오게 하는 것도

다 바람의 일이지요

또한 종아리가 유난히 예쁜 산골 계집아이의

상고머리를 산당화의 향기로 흔들어 주는 것도

바람의 일이고요

길섶에 피어난 쑥부쟁이의 꽃대를

한두 번 흔들어 보기도 하다가 그저 슬몃...

오늘은 비가 내렸습니다

이 빗물을 바다로 보내

파도를 보며 영혼을 키우는 누군가에게

한 점 살이 되게 하는 것도

바람의 일일 겁니다

수 없는 바람이 수많은 별이 될 때까지

바람을 사랑하겠습니다

 

 

 

[심사평] "자연 친화 인간 생활 생동감 있게 표현“

 

신춘문예가 지향하는 목표는 역량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 육성하여 문단의 발전에 기어코자 함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권위와 등단의 화려함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하겠다.

 

그만큼 신춘문예의 인기도(人氣度)는 높으면서 어려운 것이 되어 있다. 따라서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연령층도 중년층을 비롯 노년층까지 다양하다. 심지어는 60대를 넘어 70대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번에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은 그 수준이 겨우 평년작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 같다. 신춘문예의 특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어야 하지만, 작품 속의 시인 의식이나 언어의 선택과 표현이 더 신선했으면 좋은 시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 싶다. 아쉬움을 금치 못하면서 살펴본 결과 최종까지 남은 작품은 <패총(貝塚)>(전흥미:서울), <바람의 일>(공인숙:전주), <홍도>(신미선:부산) 등 3편이었다. <패총>은 어떤 사물을 대상으로 관찰하며 사고하는 침착성이 정연하게 작품화되어 있다. <바람의 일>은 바람을 의인화하여 그가 수행하는 다양한 기능을 일상의 자연환경친화 인간생활과 연관지어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홍도>는 참신한 언어 감각으로 상징적 이미지를 구사하였다. 그로하여 신선한 정서적 감동을 준다.

 

이와같이 저마다의 특성을 발휘하면서 시 창작에 정열을 쏟고 있음은 매우 바람직스럽다.

 

이 3편중에서 <바람의 일>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작품을 보는 눈은 상대적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관계로 남의 작품을 심사한다는 것은 여간 조심스런 게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응모자 여러분의 각별한 이해가 있어 주시기 바란다.

 

열심히 창작활동을 거듭하면 언젠가는 좋은 작품이 얻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시고 정진하기 바란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길 빌며...

 

- 심사위원 이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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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가 올해로 열여섯 번째 신진작가를 배출해 냈다. 전국에서 실력 있는 예비작가들이 자웅을 겨룬 결과 올해는 공교롭게도 전북의 문인들이 모두 입상하면서 전북문단의 힘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진동규 전북문인협회 회장은 “전주는 옛 부터 문향과 소리의 고장이었으며 모든 고전은 이 땅 위에서 쓰여졌다”며 “그러한 문기(文氣)를 이어받아 더욱 좋은 글들을 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시 부문에서 '바람의 일'로 당선돼 수상의 기쁨을 안은 공인숙(43·전주)씨는 “새벽공기처럼, 가을 냇물처럼 차갑고 맑은 시를 쓰고 싶어요.” 시인다운 수상 소감을 밝혔다.

 

공씨는 2007년 서울의 한국문인 새한국문확회를 통해 ‘무창포의 꿈’으로 등단한 실력파다. “이젠 일기 쓰듯 해서 나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만나야 하는 공인이 된 만큼 책임감이 따르겠죠?” 그래서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더 흥분된다고 말했다. “아직 어떤 시를 쓸 것인지는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재와 전통성을 함께 갖춘 작품을 쓰고 싶어요. 또 제 시가 주변을 감동시키는 역할을 하기를 바래요.” 아이들 다 키운 뒤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싶어 4년 전쯤 시란 것을 시작했다는 공 씨는 “문학이란 제도권으로 인도한 선생님이 제가 당선통지를 받기 열흘 전 작고한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 속에 잠복해 있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시라고 생각해요. 또 저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어요.”

 

남편 허재영씨와 1남 1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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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우주입니다 / 김창래

 

내 기다림은 피가 생깁니다.

신장병 완치 약이었습니다.

남들은 피가 마른다던데 나는

기다릴 일이면 건강한 독수리가 됩니다.

 

기다리는 동안은 내 가치가 높아집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기다리는

강물의 흥분을 만나 보았습니다.

밤잠도 없는 강물들의 흥분 소리

물이 된 것을 행복해하는 아우성의 힘

샘물이 개울물로 강물로 나이아가라 폭포로

집결하는 기다림의 영원 碑가 되는 바다로

 

기다림 한 낮이면 피가 졸아든다는데

내 성욕은 바다로

맑은 햇빛 산으로 승화됩니다.

 

기다리는 내 모습 안에 고이는 내 눈물은

기다림으로 모여 생생한 고백으로 되는 피

 

남들은 기다림이 늦거나 만나지 못하면

병에 실망에 노이로제에 걸려 자살도 한다지만

나는 생명이 깊어지는 바다 日記를 씁니다.

 

만나고 기다림은 한 침대입니다.

포도가 쨈 되기 기다리는 동안 생명은 불

이 불은 기다림의 사랑입니다.

 

새로운 기다림은 항시 설레는 출발신호입니다.

여름 기다림이 없는 봄 꽃은 죽음입니다.

가을 과육은 여름이 남긴 기다림이지요.

 

과목이 잉태한 생명 맛

겨울을 이긴 씨앗은 봄이 기다려 준 절정이지요.

이 씨앗을 위해 오는 봄을 사랑이라 하지요.

 

기다림 그림이 전시된 굴에

빛은 태양보다 밝아

태양보다 먼 곳을 기다린다 해도 보이기에

내게는 오늘 의미가 기다린 날이라 더 밝습니다.

이는 기다림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종이로 바다를 먹물로 기록되는 기다림은

지금도 창조되는 우주를 만납니다.

 

 

 

 

[당선소감] "생명의 자유에 실어본 작품"

 

분명히 기다렸습니다. 내 기다림은 내 몫이 아니고 나를 기다리는 곳에 있기에 지루하지 않습니다.

 

당선 소감은 내 기쁜 흥분이 차지하고 나는 그 흥분을 승화시키는 자리에서 비껴 새로운 기다림의 산을 탑니다.

 

산골에서 자란 탓에 사춘기 성욕이 일때면 뒷산으로 뛰어 오르다 숨차면 두러누어 하늘을 봅니다. 소나무 송충이 갈 잎 곤충들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 구름 이런 것들이 서로 너무 친하고 정다워 보여 "야! 너희들 정말 부럽다." 하는 정서에 내 성욕은 스스로 승화되는 겁니다.

 

그 후 저는 명산이건 야산이건 몇 번 간 산이건 산에 들기 전 인사를 산에 합니다.

산이 제일 싫어함은 "사람 새끼"라는 소리를 들은 후 더 산에 정다운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새로운 산의 속살을 내게만 보여줍니다.

수박밭을 아무리 많이 봐도 수박한 조각 맞보는 것만 못하다는 표현이라 할까.

 

산에 인사는 산에 들어가는 방문객 예의 이지요. 그 후 산을 관광 눈으로 보는 산과 산 속에서의 산은 다름을 체험 합니다.

 

저는 이런 산에서 기다림을 보았습니다. 어제가 오늘이 아니고 오늘은 내일이 아닌 것을 성경에서 말하는 "새로운 하늘땅"은 어제와 전연 다른 새 생명인 오늘 것을 알려 준 산.

 

산 물을 기다리는 바다가 있고 바다가 기다리는 산이 있음을 본 후 내 기다림은 지칠 수 없고 우주가 산을 타는 동작을 밤마다 봅니다. 이산이 기다림의 장소입니다.

 

내 기다림은 당선이 아니고 글자에 산을 담아 일는 여생입니다.

내 기다림은 우주보다 귀한 생명의 자유에 실어본 작품입니다. 

진정으로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제가 믿는 하나님의 복을 빕니다.

무망 중에 소감 인사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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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詩창작 40여 년 집념의 산물"

 

선자가 넘겨받은 작품은 41인의 198편이다. 우선 놀란 것은 응모자가 거의 20대를 넘어서 있다는 것이었다. 20대 두 사람, 30대 한 사람, 그리고는 모두가 40대를 웃돌고 있었다. 종전과는 다른 현상이다.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젊은 층의 관심이 시와는 멀어지고 있는 것인가. 오히려 중·노년층의 관심이 사회적 여건 등에서 시문학 쪽으로 쏠린 것인가. 어쩌면 ‘60에 문장’이라고, 바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아쉽기도 하였다.

 

최종선에 오른 응모자는 김범남(광주), 선단(전주), 박예분(전주), 김중수(익산), 김현호(전주), 임상훈(김제), 김형태(서울), 최일걸(전주), 김창래(인천) 제씨였따. 모두 그동안의 시작 연조를 느끼게 하는 수준작들이었다. 자연·인간사에 걸친 소재도 다양하고, 시행으로의 사회적 풍자성도 놀라웠다.

 

이 중에서 당선작 결정이란 쉽지 않았다. 특히 최일걸씨의 ‘고수내 연가’와 김창래씨의 ‘기다림은 우주입니다’를 놓고는 더했다. 다같이 내려놓기 아까웠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고수내 연가’를 내려놓기로 하였다. 최씨에겐 이미 동화·희곡 분야에서 신춘문예 당선의 경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김씨는 오직 시의 창작 만에 40여년 간의 집념이었다. ‘하늘을 종이로 바다를 먹물로’ 자기 시를 들어내고자 한 끈기였던 셈이다. 자기 시의 빛을 기다리고 노력한 그 ‘기다림’의 미학을 높이 사기로 하였다.

 

- 심사위원 최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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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들어 좋은 날 / 김광희

 

 

도마 위에 퍼덕이는 순풍씨는요 한 마리 바다여

입이 댓 발 나온 분녀가 단칼에 기절시키고

바닥만 긴 미주구리* 아랫도릴 올려쳤거든요

성난 파도로 일어서던 비늘이

날 무딘 칼날에 힘없이 쓰러지데요

두터운 파고를 한 숨에 쓰윽 떠냈어요

대추씨 만한 부레

저렇게 작은 꿈 가지고 태양 향해 펄떡였던가 봐요

물컹한 가문에 뼈대라도 세우려는지

발라낸 뼈에서 활시위처럼 탱탱한 시간이 꽉 찼어요

가실 삼켰던지 살 속 깊이 박혔네요

바람 부는 데로 출렁였던 것은 고통의 몸부림이었던가

천 날 만 날 바람 들락였을 허파는 다 녹아 없어지고

참빗 같은 아가미에 그 바람 걸렀던 것 같아요

어딜 쏘다녔던지 얼룩진 상처 비릿한데

바다 깊은 심장 속에서 헤엄치는 분녀

꼬들꼬들 바다를 씹는 달디단 성찬 차려

황홀한 순풍씨, 쇠주 한 잔 받으셔

 

* 미주구리: 물가자미의 경상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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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주최 2006 신춘문예 입상자에 대한 시상식이 6일 오후 2시 30분 본사 회의실에서 본보 임병찬 사장을 비롯한 본보 임직원과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와 소설가 최정주 씨·수필가 국명자 씨 등 심사위원, 각 부문 수상자와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수상자는 김광희, 김순희, 노경찬 씨로 상패와 상금을 수여됐다.

 

시 부문 수상자인 김광희 씨는 수상 소감으로 “신춘문예에 당선돼 보니 당선에 대한 기쁨을 알 것 같습니다. 문학과 동떨어져 많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앞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하겠습니다.”고 했다.

 

김씨는 이번 신춘문예에서 남편에 대한 측은지심을 담은 작품 ‘바람이 들어 좋은 날’을 통해 읽는 이에게 안정감을 주면서 풍자적 기법이 돋보인다는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끌어냈다.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 활동을 하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뒤늦은 5년 전 작품활동을 시작했다는 김씨는 경주문예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남편과 함께 시를 쓰는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고.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임용고시에 합격한 딸과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주부이기도 한 김씨는 올해 겹경사가 겹쳤다는 말과 함께 행복한 마음을 피력했다.

 

김씨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작품활동을 하지 못하는 분들을 많이 봐왔다”며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에 누가되지 않도록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나가 첫 번째 작품집을 내는 것이 앞으로의 소망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승범 심사위원은 “올해는 과거 그 어느때보다 우수한 작품들이 많이 출품돼 치열한 경쟁이 빚어졌다”고 신춘문예의 높은 수준을 평가한 후 “당선자들은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이제 시작이라는 자세로 글을 쓰는 데 정진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본보 임병찬 사장은 “접수된 500여 편의 작품을 꼼꼼히 심사해 주신 심사위원들에 우선 감사드리고 좋은 작품을 내주신 수상자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며 “입상자들은 전북도민일보를 통해 문단에 등단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왕성한 창작활동에 더욱 전념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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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방 / 유창성

 

 

이삿짐을 다 싸두고도 아내는,

허공에 걸어둔 종이학 하나 어쩌지 못하나 보다

산동네 반지하 단칸방, 그 밤 내 이삿짐을 싸다가

방안 가득 걸어둔 종이학들은 거두지 못한 채 

잠이 든 척 누운 아내,

허공에다 뭘 저리 걸어두었나

날아오른 종이학 무리들 그 밤 내

어디로든 떼 지어 날아갈 성 싶다.

 

이 방마저 가져갈 수 있다면 좋으려만,

자꾸만 한숨 소리에 침몰해 버릴 듯한

半地下의 방,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날 수 있다면,

내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어디든

다른 곳에 살고 있다면

좋겠다는 아내.

 

어디로 갈까

막막한 마음에 아무리 떠올려 보지만

좀처럼 갈 곳은 떠오르지 않고

문득, 고향땅 송도다리께를 떠올려본다.

아내와 처음 만나 살았던 판잣집.

함께 살았던 제비부부는 아직

잘 살고 있을까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아내 곁에 누워 잠을 청해보는 밤,

 

멀리, 담장 너머

누구네 집 天井을 이고 가는 중인지,

한 무리의 철새들

무리 지어 떠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부부 누워 잠든 방을 달고

부지런히 이동해 왔을 저 종이학 무리들,

그 밤 내 떠나가는 철새들 틈에 끼어

날아올랐다.

날아가는 학들이 끌고 가는 저 작은 방 속

어쩌면 어느 九天을 횡단해 가고있을지 모를

아내와 나 

 

 

[당선소감]

 

나이를 든다는 것은 무언가 그 만큼 이루어 놓은 것이 있다는 뜻도 되는 것인데 나는 무엇을 했던가 생각해 보면 늘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불혹을 넘기면서 그 증상은 훨씬 더했다 그렇다고 허실부실 살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숙제를 하지 않음으로 인한 불안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다 6 년 전 우연히 경주문예대학을 알게 되고 그 때서야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문예대학에 등록해서 시를 접하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울의 날을 벗을 수 있었고 멀리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나만의 작은 충족감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시는 내게 있어서 노후대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제적인 도움은 아니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내 이기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막상 당선이라는 연락을 받으니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어떤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를 드리며 더욱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중학교 시절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시며 꿈을 심어주시던 김윤근 선생님, 새 생활을 열어주신 이근식 선생님. 꿈을 가꾸어 주신 손진은 교수님께 엎드려 감사드리며 함께 공부하며 밀고 당겨주신 문우여러분. 그리고 힘이 되어 주신 여러님들께도 감사 드린다. 무엇보다 함께 시공부하는 남편과 고3인데도 뒷바라지에 충분하게 해주지 못한 아들, 딸,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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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금번 응모작들의 분포를 보면, 서울을 비롯해 가히 전국적이었는 바, 이는 인터넷 시대의 한 혜택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신춘문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때문이기도 하다. 더하여 110여명의 응모자가 평균 7~8편씩을 투고하였으니 양적으로도 풍성하였다. 다만 몇 가지 주문하고 싶은게 있다. 특히 20~30대의 응모작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신인으로서의 진지함과 주제의 밀도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신춘문예에 응모한다는 것은 명실공히 ‘이 한판의 승부사’로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소재부터가 지극히 변방적이고 한가하기 이를 데 없다. 시의 전개과정도 마치 노련한 투우사가 껌을 질근거리며 소를 다루는 여유 속에 사적(私的) 요설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시는 일차적으로 사적 진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암호는 아니다. 나만의 사적진술이나 암호는 궁극적으로 타자에게 공감을 주고, 그들 스스로가 독도법을 익혀나가는 재미, 또는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수의 작품들이 불과 20행도 안 되게 마치 기성시인들의 시집 속에 삽화로 끼어 있음 직한 소품들로 이뤄져 있는 바, 재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까지 손에 쥐어진 작품들로는 ‘전신주 위의 까치집’, ‘따개비’, ‘화개차’, ‘장대비 속의 양은 냄비’, ‘여의도 공원’, ‘날아가는 방’ 등 여섯 작품이었다.

 

위의 여섯 응모자들은 나름대로 탄탄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전신주 위의-’는 시의 밀도감, 다시 말해 시적 응집력이 다소 미흡했고, ‘따개비’와 ‘화개차’는 기교는 기성시인 못지 않으나 신춘문예가 요구하는 주제의 절실감에서 뒤졌고, ‘장대비-’와 ‘여의도 공원’은 너무 성숙된 기성인다운 여유와 사적진술(난해)이 공감을 이완시켜 아쉽게 밀려났다.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내세운 ‘날아간 방’은 요즈음 여러모로 살기 힘들 때에, 총체적 갈등의 시대에 산동에 반지하와 허공에 걸어둔 종이학과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였다. 산동네 ‘반지하의 방’과 ‘종이학’이라는 두 시어 사이에서 독자들은 ‘절망’과 ‘희망’의 이미지를 쉽게 발견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극심한 갈등 속에서 이 시는 그 잔잔한 해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해법의 소도구로 ‘아내’와 ‘종이학’과 판자집에서 함께 살았던 ‘제비 부부’를 등장시키고 있다.

 

반지하의 방에서도 낙심치 않고 ‘그 밤 내내 떠나가는 철새들 틈에 끼어 / 날아 올랐다.’로 매듭짓는 상향 이미지가 서정시가 갖는 아름다움 속에 잘 여과돼 있다. 더욱 분발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허소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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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 이정희

 

 

꽃구름을 서성이는 지상의 무리에

깃발로 차 오르는 춤사위가

그렇게 아팠을까

투명한 안식으로 자아낸

하루의 날개도 뿌리치는 눈물

 

천년의 의미가 순간에 타오른다

허공에 몰리는 습관의 행진으로

굽어진 오늘을 살라 버린다

꿈의 둥지를 뛰쳐나온

미명의 날개가 잦아드는 늪

빛 바랜 이상은 꺼풀로 남아

오늘에 모든 승부를 건다

 

못 다 오른 하늘 끝머리

잡을 수 없는 내일이 스러지고 있다

영혼만이 혼자 떠도는

뜨거운 날개여

여름을 지핀다

 

  • 이정희 시집 <함게 부를 수 없는 노래>(찬샘의시 4)
 


 

[당선소감] 

 

찬바람이 오히려 그리움으로 남는, 이맘때면 아련히 펼쳐지는 백설의 세계를 그려 봅니다.

 

눈밭에 설 때는 그랬습니다. 끝없는 설원에 얼마나 많은 꽃 피어날는지, 생각만으로도 벅찬 가운데 내가 처음 길을 내고 있다는, 착각이라 해도 좋았습니다. 앙상한 나무가 문풍지를 찢는 밤, 설화 고운 떨기를 키우며 꿈같은 시의 영역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성문 밖 오솔길에 옹달샘이 있었습니다. 퐁퐁 솟아나는 샘물을 보며 자기 얼굴에 취했던 나르시스를 생각합니다.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었으면 싶어진 것입니다. 내 스스로 자아의 샘을 파야겠지요. 고요한 물에 사물이 바로 비치듯, 글로써 아름다운 내면의 세계를 가꾸렵니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열심히는 했지만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더 기뻤습니다. 보답하는 자세로 노력하겠습니다. 눈꽃을 위해 차디차게 얼어야 했던 빙설의 냉기처럼, 아픔으로 엮는 글월 속에 자신을 표백해 가렵니다. 아울러 제가 뿌린 언어의 씨앗이, 가지로 서고 꽃으로 눈 떠 가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이정희 시집 <무반주 소나타>(찬샘의시 2)
 

 

[심사평] “높은 수준으로 변모하는 현대시”

 

예심을 거쳐 본심으로 올라온 네 분의 작품 16편을 놓고 심사하는 데 여간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마다의 개성이 강하고 시적 구성이나 언어의 표현 등으로 뛰어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오늘의 젊은 시인들이 보여주는 시의 양상이 새롭게 변모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김태령의 <황금 이끼는 녹(綠)을 먹는다>, 백상웅의 <전나무 숲으로부터 뜨는 달>, 오교정의 <벌초>, 이정희의 <고개를 넘으며> 등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심사위원에게 심적 고통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작품이 주는 매력으로 하여 즐거운 번민의 시간을 갖고 가슴 설레이게 했다. 그러다가 이정희의 <고개를 넘으며>를 뽑기로 했다. 서정시가 지녀야 할 정서적 분위기의 조성과 거기에 따르는 유연한 언어의 표현태가 매우 청순하고 섬세해서 미적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평범한 일상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얻은 소재를 소박하게 형상화하는 가운데 시적 의미망을 확대하면서 진솔한 정감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작품의 어느 곳에서도 어떤 타성에 젖지 않았으며, 순수 그대로 표출되어 있다. 그것이 양질의 시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신뢰케 한다.

 

“겨울의 하류까지 거슬러 가다/ 그대로 얼어붙은 산자락/ 글썽이는 진달래 눈썹 끝에/ 겨울의 씨앗 하나 떨어진다/ 눈 날리는 겨울의 액자에/ 주춤해 있던 그림자 하나가/ 계절의 추월선에서/ 눈꽃을 뒤집어 쓴 채 웃고 있다” 이 작품이 보이는 안정감에서 시의 작품성이나 예술성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작품들이 산문화 되어가고 있는 실증을 보았고 또한 지난친 관념어의 남용이 눈에 띄었다. 시는 언어를 매체로 하는 상상작용의 소산인 예술이다. 따라서 축약된 내포성에 의미망을 담아야 한다.

 

이번 응모작품들의 높은 수준에 찬사를 보낸다. 당선되었다고 오만하지 말 것이며, 뽑히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여 소망을 이루기 바란다.  

 

- 심사위원 : 이기반, 이시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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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둥근 방 / 윤석정

둥근 방엔 뿌리의 기억으로 술렁댄다
그녀의 어금니를 악문다 뿌리에서
헐거운 유년이 자맥질하며 올라와
혼자 놀기 좋은 골목에 닿는다
이윽고 노란 꽃술이 뜨겁다
봄눈 속에서 눈꽃이 뿌리를 내렸던가
생의 진통은 냉기처럼 뿌리로 옮겨오는데
견딤이란 활시위를 당겨 과녁을 향해 오래 겨냥하는 것
그리하여 힘 줄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전봇대와 고무줄 놀이를 하던 아이가 떠난 골목
푸른 등줄기로 당긴 햇살이 탯줄처럼 팽팽하다
그녀는 급하던 호흡을 가다듬고
에누리없는 기억을 시위에 맞춰 끼운다
봄눈이 녹아 뿌리 없는 돌에 핀 이끼 마냥 두드러기가
그녀의 진통을 복돋는다
춘분이 지나고 태기가 오더니
매일 한치씩 부피를 키운 활시위
외롭던 유년에서부터 노후까지의 궤적을 겨냥한다
골목 어귀에 기억의 양수가 흥건하게 터지자
그녀의 어금니가 저려 온다
둥근 방엔 옹골진 태아가 수런거린다






■ 당선소감 - 윤석정: 이제 시작…뼈 깎는 심정으로 정진



겨울이 되어 찾아간 고향, 길가로 펼쳐진 전답들은 한해동안 애쓴 대가로 편히 휴식을 취 하고 있었다. 나도 저만큼 애썼던가 자문해보니 할말이 없어진다. 그런데 나는 대학을 구실 삼아 애쓴 것 하나 없이 오래 놀고먹지 않았던가. 식충이처럼.

내 발길은 산발치 방죽에 닿는다. 방죽에 서서 오랜만에 갈대들의 재잘거림을 들어주며 가을 수면 끝을 박차고 날아 간 물새들의 안부도 묻는다. 그러면서 미풍에 이는 물결을 보 니 바람과 물의 조화 속에 내가 낄 자리가 없어 보인다. 그 조화는 내가 함부로 근접할 수 없는 묘한 간격 혹은 낯선 언어 같다.

그간 느슨해진 정신에 때처럼 묻어온 알량한 고집들, 내가 세상과 조화를 이루고 언어와 조화를 이루는 게 서툴도록 만들었다. 더군다나 버리기만 하면 금방 삶과 시의 본질이 보인
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버리지 못한 내가 부끄럽다.

항시 정교한 끌로 내 시정신을 깎아 주시는 안도현 선생님께 좋은 시로 보답하고 싶다. 또한 더욱 정진하라고 부족한 시에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
다. 겨울 방죽에서 다짐해본다. 이제 시작이므로 앞으로 더 많이 애써야 한다는 것.

고마운 이들이 많다. 식충이를 너무도 믿고 사랑해주는 부모님, 형과 누나, 군대간 아우. 그리고 원광문학회 식구들, 태건 형, 유억 형 등등. 끝으로 동거를 하며 시심을 북돋아 준
성철 형과 내 발길을 시에게로 재촉하는 민영에게 모든 기쁨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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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사평 - 이용숙(시인ㆍ전주교대 총장): 패기ㆍ언어적 표현 돋보여


월드컵의 붉은 흥분이 지나고 대통령 선거의 노란 물결이 지난 12월의 끝자락에서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의 심사가 있었다. 올 한해의 노작을 점검하는 자리인 만큼 작품을 대하는 자세부터 신중함을 보여야 했다. 우리 지역은 물론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등 전국 각지와 함께 해외동포의 작품까지 모두 ○○편의 응모작을 대하면서, 하나같이 진실하고 순수한 시심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시의 새로운 희망이 보여 기뻤다.

몇 번의 숙고 끝에 조세라씨의 `달'과 최일걸씨의 `재개발의 봄', 김성철씨의 `물풀들의 수런거림', 윤석정씨의 `그녀의 둥근방'등 이상 네 편의 작품들이 언급할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조세라씨의 `달'은 "달은 거대한 무덤이 되어 건물 옥상/이곳 저곳을 옮겨다녔다"는 표현들이 돋보엿으나 다른 작품들에서는 이런 성과가 아쉬웠다. 최일걸씨의 작품은 잘된 시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텍스트의 힘이 있었다. 그러나 작품들에서 간간이 눈에 띄는 `불굴의 몸을 던져 절망의 심연 속으로 자맥질한다'라든가 `경멸 가득한 눈망울'등 절제되지 않은 주관과 감정이 못미더웠다. 김성철씨의 작품은 하나의 견고한 건축물을 보는 듯하다. 치밀한 구성과 잘 조정된 긴장감은 오랜 습작의 흔적을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의도된 호흡조절은 오히려 읽는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은 시인이 될 것이다.

윤석정씨의 `그녀의 둥근방'을 당선작으로 뽑느다. 씨에게는 신춘문예가 요구하는 진정한 패기가 있다. 시인의 인생관과 언어적 표현 사이가 구체적인 것도 강점으로 부각되었으며,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어눌한 말투를 믿음직스럽게 한다. 완성도에서는 아직도 미흡하지만 시인의 장점을 잘 나타내는 `멸치'에도 애정이 간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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