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방 / 유창성
이삿짐을 다 싸두고도 아내는,
허공에 걸어둔 종이학 하나 어쩌지 못하나 보다
산동네 반지하 단칸방, 그 밤 내 이삿짐을 싸다가
방안 가득 걸어둔 종이학들은 거두지 못한 채
잠이 든 척 누운 아내,
허공에다 뭘 저리 걸어두었나
날아오른 종이학 무리들 그 밤 내
어디로든 떼 지어 날아갈 성 싶다.
이 방마저 가져갈 수 있다면 좋으려만,
자꾸만 한숨 소리에 침몰해 버릴 듯한
半地下의 방,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날 수 있다면,
내일 아침 자고 일어나면 어디든
다른 곳에 살고 있다면
좋겠다는 아내.
어디로 갈까
막막한 마음에 아무리 떠올려 보지만
좀처럼 갈 곳은 떠오르지 않고
문득, 고향땅 송도다리께를 떠올려본다.
아내와 처음 만나 살았던 판잣집.
함께 살았던 제비부부는 아직
잘 살고 있을까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아내 곁에 누워 잠을 청해보는 밤,
멀리, 담장 너머
누구네 집 天井을 이고 가는 중인지,
한 무리의 철새들
무리 지어 떠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부부 누워 잠든 방을 달고
부지런히 이동해 왔을 저 종이학 무리들,
그 밤 내 떠나가는 철새들 틈에 끼어
날아올랐다.
날아가는 학들이 끌고 가는 저 작은 방 속
어쩌면 어느 九天을 횡단해 가고있을지 모를
아내와 나
[당선소감]
나이를 든다는 것은 무언가 그 만큼 이루어 놓은 것이 있다는 뜻도 되는 것인데 나는 무엇을 했던가 생각해 보면 늘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이었다. 불혹을 넘기면서 그 증상은 훨씬 더했다 그렇다고 허실부실 살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숙제를 하지 않음으로 인한 불안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다 6 년 전 우연히 경주문예대학을 알게 되고 그 때서야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문예대학에 등록해서 시를 접하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울의 날을 벗을 수 있었고 멀리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나만의 작은 충족감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시는 내게 있어서 노후대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제적인 도움은 아니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내 이기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막상 당선이라는 연락을 받으니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어떤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를 드리며 더욱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고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중학교 시절 시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시며 꿈을 심어주시던 김윤근 선생님, 새 생활을 열어주신 이근식 선생님. 꿈을 가꾸어 주신 손진은 교수님께 엎드려 감사드리며 함께 공부하며 밀고 당겨주신 문우여러분. 그리고 힘이 되어 주신 여러님들께도 감사 드린다. 무엇보다 함께 시공부하는 남편과 고3인데도 뒷바라지에 충분하게 해주지 못한 아들, 딸,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떠리몰
deg.kr
- 애드픽 제휴 광고이며, 소정의 수수료를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심사평]
금번 응모작들의 분포를 보면, 서울을 비롯해 가히 전국적이었는 바, 이는 인터넷 시대의 한 혜택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신춘문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때문이기도 하다. 더하여 110여명의 응모자가 평균 7~8편씩을 투고하였으니 양적으로도 풍성하였다. 다만 몇 가지 주문하고 싶은게 있다. 특히 20~30대의 응모작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신인으로서의 진지함과 주제의 밀도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신춘문예에 응모한다는 것은 명실공히 ‘이 한판의 승부사’로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소재부터가 지극히 변방적이고 한가하기 이를 데 없다. 시의 전개과정도 마치 노련한 투우사가 껌을 질근거리며 소를 다루는 여유 속에 사적(私的) 요설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시는 일차적으로 사적 진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암호는 아니다. 나만의 사적진술이나 암호는 궁극적으로 타자에게 공감을 주고, 그들 스스로가 독도법을 익혀나가는 재미, 또는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다수의 작품들이 불과 20행도 안 되게 마치 기성시인들의 시집 속에 삽화로 끼어 있음 직한 소품들로 이뤄져 있는 바, 재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까지 손에 쥐어진 작품들로는 ‘전신주 위의 까치집’, ‘따개비’, ‘화개차’, ‘장대비 속의 양은 냄비’, ‘여의도 공원’, ‘날아가는 방’ 등 여섯 작품이었다.
위의 여섯 응모자들은 나름대로 탄탄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전신주 위의-’는 시의 밀도감, 다시 말해 시적 응집력이 다소 미흡했고, ‘따개비’와 ‘화개차’는 기교는 기성시인 못지 않으나 신춘문예가 요구하는 주제의 절실감에서 뒤졌고, ‘장대비-’와 ‘여의도 공원’은 너무 성숙된 기성인다운 여유와 사적진술(난해)이 공감을 이완시켜 아쉽게 밀려났다.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내세운 ‘날아간 방’은 요즈음 여러모로 살기 힘들 때에, 총체적 갈등의 시대에 산동에 반지하와 허공에 걸어둔 종이학과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였다. 산동네 ‘반지하의 방’과 ‘종이학’이라는 두 시어 사이에서 독자들은 ‘절망’과 ‘희망’의 이미지를 쉽게 발견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극심한 갈등 속에서 이 시는 그 잔잔한 해법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해법의 소도구로 ‘아내’와 ‘종이학’과 판자집에서 함께 살았던 ‘제비 부부’를 등장시키고 있다.
반지하의 방에서도 낙심치 않고 ‘그 밤 내내 떠나가는 철새들 틈에 끼어 / 날아 올랐다.’로 매듭짓는 상향 이미지가 서정시가 갖는 아름다움 속에 잘 여과돼 있다. 더욱 분발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허소라 시인
'신춘문예 > 전북도민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7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 김창래 (0) | 2011.02.25 |
---|---|
200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 김광희 (0) | 2011.02.25 |
2004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 이정희 (0) | 2011.02.25 |
2003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 윤석정 (0) | 2011.02.25 |
2002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 최정아 (0) | 2011.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