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 이정희
꽃구름을 서성이는 지상의 무리에
깃발로 차 오르는 춤사위가
그렇게 아팠을까
투명한 안식으로 자아낸
하루의 날개도 뿌리치는 눈물
천년의 의미가 순간에 타오른다
허공에 몰리는 습관의 행진으로
굽어진 오늘을 살라 버린다
꿈의 둥지를 뛰쳐나온
미명의 날개가 잦아드는 늪
빛 바랜 이상은 꺼풀로 남아
오늘에 모든 승부를 건다
못 다 오른 하늘 끝머리
잡을 수 없는 내일이 스러지고 있다
영혼만이 혼자 떠도는
뜨거운 날개여
여름을 지핀다
[당선소감]
찬바람이 오히려 그리움으로 남는, 이맘때면 아련히 펼쳐지는 백설의 세계를 그려 봅니다.
눈밭에 설 때는 그랬습니다. 끝없는 설원에 얼마나 많은 꽃 피어날는지, 생각만으로도 벅찬 가운데 내가 처음 길을 내고 있다는, 착각이라 해도 좋았습니다. 앙상한 나무가 문풍지를 찢는 밤, 설화 고운 떨기를 키우며 꿈같은 시의 영역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성문 밖 오솔길에 옹달샘이 있었습니다. 퐁퐁 솟아나는 샘물을 보며 자기 얼굴에 취했던 나르시스를 생각합니다.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었으면 싶어진 것입니다. 내 스스로 자아의 샘을 파야겠지요. 고요한 물에 사물이 바로 비치듯, 글로써 아름다운 내면의 세계를 가꾸렵니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열심히는 했지만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더 기뻤습니다. 보답하는 자세로 노력하겠습니다. 눈꽃을 위해 차디차게 얼어야 했던 빙설의 냉기처럼, 아픔으로 엮는 글월 속에 자신을 표백해 가렵니다. 아울러 제가 뿌린 언어의 씨앗이, 가지로 서고 꽃으로 눈 떠 가기를 바라며,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높은 수준으로 변모하는 현대시”
예심을 거쳐 본심으로 올라온 네 분의 작품 16편을 놓고 심사하는 데 여간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마다의 개성이 강하고 시적 구성이나 언어의 표현 등으로 뛰어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 만큼 오늘의 젊은 시인들이 보여주는 시의 양상이 새롭게 변모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김태령의 <황금 이끼는 녹(綠)을 먹는다>, 백상웅의 <전나무 숲으로부터 뜨는 달>, 오교정의 <벌초>, 이정희의 <고개를 넘으며> 등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심사위원에게 심적 고통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작품이 주는 매력으로 하여 즐거운 번민의 시간을 갖고 가슴 설레이게 했다. 그러다가 이정희의 <고개를 넘으며>를 뽑기로 했다. 서정시가 지녀야 할 정서적 분위기의 조성과 거기에 따르는 유연한 언어의 표현태가 매우 청순하고 섬세해서 미적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평범한 일상의 생활체험을 통하여 얻은 소재를 소박하게 형상화하는 가운데 시적 의미망을 확대하면서 진솔한 정감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작품의 어느 곳에서도 어떤 타성에 젖지 않았으며, 순수 그대로 표출되어 있다. 그것이 양질의 시를 쓸 수 있는 가능성을 신뢰케 한다.
“겨울의 하류까지 거슬러 가다/ 그대로 얼어붙은 산자락/ 글썽이는 진달래 눈썹 끝에/ 겨울의 씨앗 하나 떨어진다/ 눈 날리는 겨울의 액자에/ 주춤해 있던 그림자 하나가/ 계절의 추월선에서/ 눈꽃을 뒤집어 쓴 채 웃고 있다” 이 작품이 보이는 안정감에서 시의 작품성이나 예술성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작품들이 산문화 되어가고 있는 실증을 보았고 또한 지난친 관념어의 남용이 눈에 띄었다. 시는 언어를 매체로 하는 상상작용의 소산인 예술이다. 따라서 축약된 내포성에 의미망을 담아야 한다.
이번 응모작품들의 높은 수준에 찬사를 보낸다. 당선되었다고 오만하지 말 것이며, 뽑히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여 소망을 이루기 바란다.
- 심사위원 : 이기반, 이시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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