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 / 송병호
좁은 고샅길
돌아도 돌아도 언제나 제자리인 그 골목엔
천형의 상처 안고 똬리 튼
골 깊은 손금들이 있다
명랑이발관의 해맑은 미소를 지나쳐 엇갈린
오복담뱃가게 생명선은 차마
풍년쌀가게의 재물선과 영영 만날 수 없는 구획이 되었다
그나마 속셈학원의 아직은 흐릿한 장래선만
또렷한 선이다
실선들 흐릿해 질 때마다 칙칙한 배경의
가끔 끊어졌던 동시상영, 두 편의
영화는 오간 데 없고
낡은 영사기 한 대,
골목 끝 짓무른 앵글로 바람을 채록하고 있다
한때는 민심을 쥐락펴락했을 선과 선의 공존,
바닥이 다른 面위의 電線들
깨진 유리창 밖으로 내일을 점치지 못하는
도시의 손금으로 남아 있다
手相學은 믿을게 못 된다고 툴툴거리며
다 닳아빠진 지문을 가지런히 포개
혼자 졸고 있는 노파
[우수상] 헛발을 딛다 / 민옥순
환호 같기도 한 비명으로
바닥을 치고 싶었다
마루를 움켜잡았다
작은 손으로 산산이 부서져서
다섯 평의 마루를 안을 수 있다니
내 손이 헛발을 딛고서야
접시는 쨍한 소리로 외출을 하였다
조각조각 소리의 날이 서 있다
날선 것에 가을빛이 찔린다
날선 가을빛은
낡은 십자가에 헛발을 딛어
색을 입혀 바른다
하늘엔 먹구름이 헛발을 딛자 비가 내리고
비는 기러기 하루치 울음을 밟으며 간다
새 울음소리가 나무의 우듬지 흔들며 간다
신갈나무 잎들은 즐거이 헛발을 딛으며 떨어진다
떨어지는 나뭇잎 헛발 끝에 들국화 피어나자
또 한번 향기의 헛발로 발이 빠진다
유월
온몸으로 헛발을 딛어
바닥에 먹그림 그리는 버찌처럼
헛발 딛은 마음으로 수묵화 한 장 그리고 싶다
■ 제14회 김포문학상 심사평 / 문성해(시인)
"돌발적 사고의 전복에 닿으려는 노력 엿보여"
심혈을 기울여 쓴 응모작(시, 수필, 소설)들을 읽으면서 이 암울한 시대를 건너는 뗏목이 문학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응모작들은 대체적으로 일상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듯 하나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돌발적인 사고의 전복에 닿으려는 노력이 엿보였으며 이는 문학이 가지는 미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조로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한 행 한 행마다 단비처럼 서려 있었고 누구도 하지 못한 표현을 찾는 일에 골몰한 나머지 표현의 과잉사태까지 빚어지는 응모작들 또한 여럿 있었다. 김포대교를 건너와 내 손에 닿은 작품들을 볕에 앉아 읽는 일은 따스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가까이서 누구랄 것 없이 글줄을 매만지는 분들이 있다는 자체가 훈훈했고 그 소재나 이야기 너머에 감춰진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또한 훈훈했다. 누구를 올려도 이 상에 결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순위를 매김 없이 다시 몇 번을 계속 들여다본 결과 능숙하고 숙련된 솜씨를 할 것인가? 다소 거칠지만 개성 있는 목소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찾아왔다.
<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는 달동네의 자잘한 골목들을 손금에 얹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수작이다. 발상 자체가 신선하고 한 연 한 연에서 손금에 대한 맥을 잃지 않고 끝까지 밀고 간 힘이 돋보인다. 다만 행과 행 사이에 다소 부드럽지 못한 연결이 읽는 재미를 앗아간다는 게 흠이다. <헛발을 딛다>는 일상생활에서 얻은 소재를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 않고 점차 자연물로까지 뻗어나간 상상력이 돋보인다. 접시를 놓친 손을 두고 손이 '헛발을 딛는다'는 발상 자체도 재미있고 접시가 깨지는 상황을 <접시는 쨍한 소리로 외출을 하였다>라고 한 감각도 돋보인다. 다만 시상의 흐름이 기존의 서정시들에서 보았던 익숙한 맥락이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두 편의 시중에서 고민하다가 다소 거칠지만 나름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낸 <달동네의 손금을 읽는 오후>를 대상으로, 시를 빚어내는 능숙함이 돋보이는 <헛발을 딛다>를 우수상으로 민다.
두분에게 축하를 드리며 선자(選者)의 둔한 안목으로 선에 들지 못하신 많은 분들에게도 문학이 끝까지 위로와 즐거움으로 찾아가 드리길 빈다.
■ 당선소감 / 송병호
질서 없는 문장들이 헛발로 미끄러졌던 수많은 날들에 감사
첫 시집 『궁핍의 자유』에서 '꽃이 자기 향기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나는 내 삶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 다는 것이 두렵다'고 적었습니다. 극히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만연체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리 화려한 치장도 계절이 몇 번 바뀌는 틈에서 변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2013년 가을, 시청앞 버스정류장에 붙은 '제12회 김포문학상공고'를 보고 빛바랜 노란풍선의 팽창하는 공기처럼 느꼈던 극한 긴장을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질서 없는 문장들이 나뭇가지에 둘로 셋으로 겹쳐 앉으려다가 헛발 디뎌 미끄러지는 것을 보고 잇속을 드러내 혼자 웃었던 그때가 이만치에서 저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성도 거의 잊히는 나이에 소름 돋는 사유들이 젊은 시절 교회행사였던 '문학의 밤'을 기억해내기도 전에 "나야 나"하고 홀연 꽃씨가 내리는 것을 보고 곧바로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그때 실수가 오늘 저의 모습인 셈입니다.
목회 현장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공간에서 저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 대해주신 문인협회 임원분들과 정병근 강사님, 문예대학 동기 여러분들의 햇솜 같은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 선생님께 이처럼 큰 상을 주신데 진심으로 고마움과 감사의 뜻을 하늘 문을 여는 마음으로 평생의 평안을 진심으로 축복하여 기도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문득 성구 한절이 생각납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딤후 3:14).
2015년 12월 목사 송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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