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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zoom) / 우옥자

 

횡단보도 저쪽에서 걸어오는 한 남자, 낯익다

나를 지나쳐 빠르게 카운트 다운하는 신호등을 바라본다

어디서 스친 적이 있나

끌어당긴 그의 잔상을 인파에 놓쳐버렸다

 

다가온 것이 흔들리다 또렷해질 때

나비의 발자국이 머문 꽃술, 꽃받침의 솜털까지

소름 돋는 섬세한 표정

한 장의 세밀화에 음영陰影이 깊어지는, 숨 막히는 매혹이다

 

찰칵! 꽃 하나

사각의 프레임 속에 갇히고, 그예

끌려간 탄력만큼 천천히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눈동자

한 발짝 한 발짝 초점 흔들리며 꽃이 번진다

 

내게 왔던 것들이 그렇게 멀어져 갔다

 

내 안의 수많은 뷰파인더를 뒤적거리다

희미해지는 그림자를 오래 지켜보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쯤

흐린 배경을 뒤로하고 홀연 도드라져 빛나는 피사체

진경은 그 적막한 심상에 맺히는지

나는 서둘러 그 순간을 박제하는 것이다

 

행성들이 운행을 계속하며 다가왔다 멀어져가고

어느 것들은 천년을 돌다 부딪쳐 불꽃처럼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아득한 거리에서 오고 있는 풍경을 기다리며

가뭇하게 지평선 끝으로 사라지는 너를

막 배웅하는 중이다






 

[우수상] 비누 / 박소미

 

아무리 아침을 닦아도 길이 불투명 합니다

햇살은 등만 달구고 손이 시근거립니다

골목마다 시궁창 냄새로 미끈거립니다

집안에서 털어낸 안개는 역류하고 환풍기가 물거품을 건져냅니다

대문 안은 안녕 합니까

 

천 갈래 물길 속에서 골똘합니까

무수한 알리바이로 얼룩져 있습니다

누군가 무례한 계략을 오래 쓰다듬어서 뭉뚝한가요

어떤 날 불온한 기도를 굴리면 둥근 각에 찔리나요

 

어슴새벽 여자는 속옷에 배인 밤꽃냄새를 다 덮었을까요

심장을 문질러도 눈동자는 눈물을 가두고 녹아내리지 않습니다

안방에서 마당을 지나 대문까지 검정 발자국 또렸합니다

하이힐이 아카시아 향을 일으키며 골목을 빠져나갑니다

눈치 빠른 구름은 비를 뿌리고 개운합니까

손등은 비 소리만 적셔도 투명해집니다

또 다른 음모를 묻혀도 좋습니다

 

주름진 죄목을 들쳐보며 말라갑니다

중심부터 닳은 뒤축처럼 기울어져갑니다

좀 더 철두철미 할 수 없었니

 

그녀는 자꾸만 미끄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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