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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그늘의 공학 / 박정인(본명 박정옥)

 

 

느티나무에 출입금지판처럼 옹이가 나붙었다

 

옹이는 막힌 길,

가지가 방향을 바꾸는데 걸린 시간의 배꼽이다

다다르지 못한 초록에게서

필사의 아우성이 이글거릴 때

직박구리 한 마리, 옹이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수액 길어 올리던,

이제 사라진 가지의 길을 물고 대신 새가 가지를 친다

 

빼곡한 이파리들을 그늘의 아비라 믿은 적 있다

자드락비가 다녀가고,

아비는 제 몸에다

개칠(改漆)에 개칠을 더해 눈부신 여름을 예비했지만

나무 아래엔

그늘을 덮고 누운 햇살의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린다

 

이파리를 빼닮은 이파리 그림자가

그늘 한 칸 짜는 동안

말매미도 손마디만 한 제 그림자를 그늘에 보태겠다고

둥치에 업혀 맹렬하게 울어댄다

 

저 맹렬이면

광장을 들어 하늘에 띄울 수도 있겠다

맹렬을 심장이 내는 발톱이나 이빨, 때론 그윽한 눈빛으로 쓰는

한낮의 이파리가

흠씬 땀을 흘렸을까 나무 아래 서니

소금 냄새가 난다 그늘에 드리운 자그맣고 서늘한 염전이다

 

그늘을 위해 모두가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오후 두 시

느티나무 아래엔 아직도 그늘이 모자란다

매미가 제 소리의 그늘까지 내려 깔고 있다

 

 

▶제17회 ‘김포문학상’ 전국 공모 심사평

대상작 시 <그늘의 공학>, 그늘에 대한 관찰과 상상, 발견 돋보여

우수작 수필 <치매>, 생활경험에 대한 풍부하고 안정된 필력 인정키로

우리는 이름을 가린 채 번호만 먹여 예선에서 건너 온 20명의 작품 130편의 작품을 윤독했다. 최종적으로 세 분의 작품으로 좁혀 수상자를 검토하기로 했다. 최종 거론된 세 분은 시 <등과 가슴의 거리> 외 9편, 시 <그늘의 공학> 외 9편, 수필 <치매> 외 2편을 응모하신 분들이었다. 논의한 결과 우리는 시 <그늘의 공학>을 대상으로, 수필 <치매>를 우수상으로 선정하는데 합의했다.

시 <그늘의 공학>은 그늘에 대한 관찰과 상상, “이파리를 빼닮은 이파리 그림자가/ 그늘 한 칸 짜는 동안/ 말매미도 손마디만한 제 그림자를 그늘에 보태겠다고/ 둥치에 업혀 맹렬하게 울어 댄다”는 발견이 돋보였다. 다른 시 <칠게>에서 강과 바다가 엎지른 밀실이 갯벌이라는 상상, <폭포>가 보여주는 아름다운 심상이 돋보이는 시였다. 어쩌면 우리는 <폭포>를 대상작으로 하려고 했으나 ‘겁탈’이라는 표현이 걸렸다.

우수상으로 합의한 <치매>는 수필이나 다른 양식의 산문에서 흔한 소재여서 호기심이 덜하고 덜 매혹적이었다. 그렇지만 전반부에 “어머니는 결혼 생활 중 병원에 계신 날들이 가장 자유롭고 마음 편하셨던 것 같다.”는 진솔함과 “어머니는 치매가 꽃처럼 왔다”는 시를 읽어가는 것 같은 문장들이 우리를 매혹시켰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 <뚜껑>이나 <무> 등도 가족과 살림을 제재로 한 작품들이어서 소재의 매너리즘을 느끼게 했지만, 우리는 새롭진 않지만 생활경험에 대한 수사가 풍부하고 안정된 필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시 <등과 가슴의 거리>는 일단 제목에 호감이 갔다. 시를 읽어가면서 “한 몸이었으나 만날 수 없는 등과 가슴”이라거나 “등은 가슴을 덮어주는 바람벽”이라는 발견의 대단함이 있었다. 동전의 앞뒤처럼 한 몸이지만 서로 보지 못하는 관계의 발상이다. 그러나 시를 다 읽었을 때 뭔가 덜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다른 시 후반부 발상이 앞의 시와 반복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다른 시들도 첫 시를 넘어서지 못했다.

우리는 심사 과정이나 심사평을 쓰면서도 응모자의 이름 등 일체의 정보를 묻지 않기로 했다. 아직 이름을 모르는 두 수상자 분의 발전을 기원한다.

(심사위원 유안진 시인 / 공광규 시인)

▶제17회 ‘김포문학상’ 전국 공모 대상

박정인(본명 박정옥) 당선소감

한 때 저는 저의 졸시 ‘고가의 분꽃’ 이란 시에서 분꽃씨 속으로 저를 가만히 밀어넣고 땅에 꼭꼭 재워 둔 적 있었습니다. 다시 태어나라고 세례를 주듯 큰 상으로 물뿌려 주시니, 싹 터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7년을 품어온 시가 제게 여전히 무뚝뚝해서 많이 지쳐 있을 무렵, 그래도 詩 외는 달리 의지할 곳이 없는 저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당선통보를 주셨는데 무덤덤하게 받았던 것 같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로 느껴졌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이번 전국 규모 김포문학상은 기성시인을 포함하는 상이라 저는 투고 자체를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응모하지 않으면 떨어질 자격도 없다” 는 시인님들 말씀이 생각나서 마감시간을 십여 분 남겨두고 클릭한 것이, 이렇게 큰 행운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응모 한 후 저는 습관처럼 마음 비우는 일에 열중하며 소설을 읽거나 시를 읽거나 그냥 쓰고 또 썼습니다.

이 자리가 있기까지 장을 열어주신 김포문협에 감사드립니다. 각양각색의 강의로 시창작의 근육을 키워주신 김포문예대학 유종인 정병근 문성혜 윤성택 조동범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열린문학회, 송빈관, 달詩동인님들 함께해주셔서 행복하고 고맙습니다. “곧 소식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신 맹문재 교수님과 동작문학반 문우님들께도 기쁜 소식 전합니다. 한결같이 응원하며 지켜봐준 나의 벗바리, 히터께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주영 석천 지혜 정훈 승훈 그리고 준후 지후 아주 많이 사랑해요.

부족한 제 시를 선해주셔서, 먼 길 나선 저에게 나침반을 놓아주신 유안진 교수님과 공광규 시인님, 두 분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흔히 하는 인사말이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용기를 가지고 써라는 격려라 믿겠습니다. 상의 뜻을 마음 판에 새기고 즐겁게 읽고 정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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