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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 하상만

 

콩자반을 다 건져 먹은 반찬통을
꺼내 놓는다. 반찬통에는 아직
간장이 남아 있다.
외로울 때 간장을 먹으면 견딜 만하다.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내가 일으키려 할 때
할머니는 간장을 물에 풀어오라고 하였다
몸은 잔뜩 부어올랐지만 가벼운 영혼을
붙잡기엔 아직 덜 무거웠다.

나는 들어서 알고 있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혼자 먹던 것은 간장이었었다는 것을.
방에서 할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한 그릇의 고봉밥을
나누어 먹고 있을 때
부엌에서 할머니는 외로웠다고 했다.

물에 풀어진 간장은 뱃속을 좀 따뜻하게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운을 주었다.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달라고 한 음식은
바로 그런 간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는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었다.
수년째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던 그 방
한 구석엔 검은 얼룩을 가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내가 간장을 가지러 간 사이 할머니는
영혼을 놓아버렸다. 물에 떨어진 간장 한 방울이
물속으로 아스라이 번져 가듯
집안은 잠시 검은 빛깔로 변했다.

비로소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이었다는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의 손자이므로 간장이 입에 맞았다.
혼자 식사를 해야 했으므로
나는 간장만 남은 반찬통을 꺼내 놓았다.

 

 

 

 

 

밥 / 박민례

 

 새까맣게 타버린 밥에서 보너스 같은 따끈한 한 끼가 숟가락 위에서 단내를 풍기고 있다 365일 굶기를 밥 먹듯 했다는 할머니, 부뚜막 한쪽을 지키며 메마른 뼈마디에 병색마저 깊어졌을 것이다 꽃처럼 피어나던 버짐도 고만고만한 새끼들과 품 팔아 얻어온 밥 한술로 풀죽은 허기와 궁핍한 생을 때우셨을 그 시절, 헐거워진 허리띠 졸라매며 통통하게 살찌우려 옹알옹알 입속으로 한 톨 한 톨 밥뚜껑을 덮으셨을까 건건이라고는 소금에 절여진 짠지에 푸성귀 푸짐하게 가득 차오른 가난을 쌀독으로 하얗게 채우셨을 터, 끓어 넘치던 밥물 냄새 사라질까 뿌연 김 부드럽게 머금으며 꼿꼿하던 고집으로 목마른 목이라도 적시셨겠지

 

밥물처럼 몰래 잦아들었을 할머니의 만찬이 꽃무늬 밥상보에 조각조각 붙어 있다 선물 같은 아침에 하얀 쌀밥으로 밥을 먹는 오늘, 할머니의 밥물은 쉬 넘치지 않는다

 

 

 

 

 

한층 고양된 작품의 수준― 제9회 김장생문학상 심사평

 

나태주(시인, 공주문화원장)

 

올해도 좋은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대상 부분인 기성작가 그룹에서 좋은 작품집이 많이 들어와 기뻤다. 그만큼 김장생문학상이 전국적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 잣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적인 문제나 상금의 액수를 떠나 이렇게 주최 측에서 성실히 노력하고 홍보하고 본래의 뜻을 유지, 발전시키다 보면 폭넓은 관심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심사자로서도 매우 보람있게 생각한다. 그저, 이런 때 얼핏 떠오르는 말은 또 송무백열(松茂栢悅)이란 말이다. 계룡시가 좋아지고 사계 선생의 이름을 모신 상이 좋아지니 건너다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충분히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과 느낌이 그것이다.

 

1. 대상부문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다양했다. 그 작품집 이름을 적으면 이렇다. 『털실뭉치』(김규학),『아침 6시 45분』(최해돈),『사랑이라는 재촉들』(유종인),『간장』(하상만).

 

모두가 탄탄한 구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시적인 발상이나 집중력이 충분히 보장된 작품이었다. 개성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에 동시 작가가 대상을 받았으므로 이 점을 참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시의 성숙도나 감동에 관한 면모들을 중점적으로 살핀 결과, 『사랑이라는 재촉들』과『간장』을 최종심에 올라왔다.

 

고뇌 끝에 결국은『간장』 쪽으로 낙점을 하게 되었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다. 주제나 소재는 묵은 것이고 뿌리 깊은 것이로되 그 표현은 충분히 새롭고 드라마틱하면서 임팩트가 강하다. 이는 앞으로의 시가 가져야할 장점으로서 가장 큰 장점이다. 독자들과의 문을 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작가의 작품을 칭찬해주고 상을 주게 되어 매우 기쁘다. 배전의 노력이 있어 더욱 좋은 시로 우리 민족의 정서의 강물에 헌신 봉사하시기 바란다.

 

 

2. 본상부문

 

지난해에 비하여 본상 부문은 좀 저조한 감이 없지 않다. 규정상 운문에 2명, 산문에 1명 상을 주게 되어있다. 그러나 대상까지 합해서 볼 때 본상부문의 규정을 좀 수정해 산문 2명, 시 1명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주최자의 의도와 형편이 또 있을 수 있으므로 운문 2명, 산문 1명 이렇게 뽑아 여기에 기록하고자 한다.

 

우선 운문 부문 종심에 오른 작가와 작품은 이렇다. 박민례의「밥」, 심상숙의「명중」, 강경순의「밥주걱」, 송승환의「풀빛서정」(시조), 김혜경의「짝꿍」. 이 가운데 가장 실하고 감동이 있기로는 역시 앞에 있는 두 작품 「밥」과 「명중」이다. 각각 개성을 지고 있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시의 꼴로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앞의 작가의 작품은 작품의 수준이 고르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안정되어 있고 따뜻하며 시적 형상화 또한 믿음직하다.

 

다음으로 산문 부문의 글은 이번에 동화 형식의 글이 많았고 본격 수필이 좀 적었다. 아쉬운 마음이다. 그런 가운데 정재순의 「미로」는 매우 박진감 넘치며 사실에 깊이 파고든 파워풀한 작품이다. 삶에 대한 자성 또한 만만치 않다. 그리고 권영애의 「매듭」도 아름다운 글이다. 현실과 추억을 버무린 곰삭은 작품 내용이 매우 향기롭다. 그리고 산문 24의 「마음으로 나눈 대화」도 충분히 귀여운 글이었으며 동화 형식을 빌어서 쓴 「대신 할배」도 좋은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역시 선자는 먼저 거론한 「미로」를 선두의 자리에 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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