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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감기몸살 / 김륭

 

 

1.

놀이터 옆 화단에서 벌벌 떨던 어린 꽃나무가 나를 찾아 아파트로 들어왔나 봅니다. 너무 추워서 폴짝, 내 품 속으로 뛰어들었나 봅니다.

 

 

2.

이마가 펄펄 끓고 콜록콜록 기침이 멎질 않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놀기만 해 그렇다고 엄마는 도끼눈을 뜹니다.

 

 

3.

내 품속으로 뛰어든 꽃나무가 꽁꽁 얼어붙었던 발을 녹이다 스르르 잠이 들었나 봅니다. 팔랑팔랑 나비가 날아다니고 붕붕 벌이 꿀을 실어 나르는 꿈을 꾸나 봅니다.

 

 

4.

온몸 가득 열꽃이 피었습니다. 저만치 봄이 오나 봅니다.

세상에서 제일 먼저 나를 찾아오나 봅니다.

 

 

 

 

 

 

[본상] 데생 NO. 1 : 석상 / 서인규

 

하늘 높고 고뇌 깊은 봄날

조각 공원의 한 석상

바람에 닳고 닳아

딱딱하고 까끌까끌하게 미소 짓는다

 

짙은 조팝꽃 향 섞인 봄바람도

감각할 수 없도록 정성들여 깎아낸

화강암 심장.

 

혼자 맞는 봄비에 반쯤 절어

저 멀리 떠가는 구름 한 점

말없이 응시한다

 

아직은 매운 칼바람이

밤새 그 얼굴을 때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 꼭두새벽,

이슬로 하루 꼭 한 번 잠깐 운 다음

동이 틀 무렵엔 다시 미소 짓는다

 

 

 

 

 

[본상] 조개나물 / 김현주

  

1

친엄마 무덤 벌초하러 갔던 날

잎과 잎 사이 얌전하게 내민 손 하나가 있었다

저러고 볕 좋은 무덤가에만 핀다니

저 손은 저승에서 내민 어느 착한 이의 안부인가

 

엄마는 숨이 끊어지기 전 나를 찾았다고 한다 

 

2

아버지는 조개껍데기 같은

딱딱한 이불을 덮고

오래오래 말이 없었다

 

살이 껍데기를 덮고

껍데기가 먼지를 덮고

먼지가 눈물을 덮어

허공은 더 무거워져 가는데

 

아버지는 그 무게를 견디며

오래오래 납작해져갔다

 

백만 년 전 수장된

어루만져지지 않는

무게들

 

당신의 갑옷 속엔 얼굴이 없고

자정에 내민 뭉툭한 발엔 발가락이 없다

 

아버지와 나는

발가락이 닮았다는데...

 

아버지의 발가락이

내 발가락 사이에서 자라느라

잠시 휘청

 

새로 돋은

아버지의 발가락이

아기처럼 말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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