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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낯선자와의 긴 항해2 / 심호섭

 

큰 새가 날아왔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아와서는 몇 번 퍼덕이다가

항해실 창가 핸드 레일 위에 앉았다

정오의 햇빛에 새의 흰 몸둥이 눈부시다

새는 고개를 수그리더니 부리로 이리저리 쪼아댄다

자세히 보니 가슴 부위에 피 같은 것이 나 있다

상처를 입었나 보다

새는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에 깃털이 나부끼고 있었다

 

북위 07도, 서경 123도 그리고 수심을 나타내는 숫자와 알파벳 기호들

나는 이런 것들로 채워진 해도 위에

4B연필로 침로선을 긋고 있었다

나는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이 기록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검은 잉크펜으로 항해일지에

오늘의 일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항해실 바깥의 큰 새가 궁금해졌다

나는 하는 일을 멈추었다. 그리고 큰 새에게 가 보았다

새는 잔뜩 웅크린 채 앞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큰 새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새는 크게 날개짓하며 하늘로 치솟았다

다시 갑판에 내려 앉았다

다시 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새가 나를 쳐다본다

새의 얼굴이 사납다. 무섭다

저 새는 이빨이 있을지도 모른다. 손갈퀴도 사나울 것이다

 

그 자가 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자는 새에게 손을 내밀었다

새가 그 자에게 손을 주었다

그 자는 호주머니에서 먹이를 한 줌 꺼내어 새에게 주었다

무슨 열매를 열심히 먹는다

새가 힘을 얻었다

새의 가슴 부위 상처가 나아졌다

새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항해실 위의 하늘을 빙빙 돈다

나는 새와 새를 바라보는 그 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참 보기 좋았다

 

그러나, 새는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싸우러, 싸우러 가는 거요

싸우다 상처를 입으면 또 이렇게 찾아올 거요

 

갑판으로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가 없다

나는 새를 찾기 위하여 배의 가장 높은 곳인

나침의 갑판으로 올라갔다

사방으로 멀리, 하늘을 살펴본다

보인다. 새가 보인다

그 큰 새가 날아가고 있다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다

 

 

 

 

 


 

[우수상풍경 / 김만수

-밍크고래

 

거꾸로 매달린 채

말이 없다 그는

검시가 끝나자 해체 분할되기 시작했다

꼬르륵 꼬르륵 허파에 찬 물이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공기방울이 동쪽으로 몰려가는 소리가 났다

묶인 몸을 따라왔던 갈매기들 하나씩 돌아가고

그도 어둡고 낡은 바다로 빠져나가

그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은 따스한 젖몸

흩어지는 몸의 부속들 조각들 위로

찢어진 어판장 양철 지붕 사이로

유쾌한 봄볕이 뛰어내리고 있었다

 

바닷가 부족들은 그물을 꿰매며

다시 배를 띄워

곶 근처를 배회할 것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린 새우 떼들이 바람같이 몰려다니는

물목에 엎드려

푸른 바다를 해체하러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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