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상] 명지소금 / 김영욱
명지도를 아십니까
이제는 소금 한 섬 채울 수 없는 섬 아닌 섬
큰 비나 큰 가뭄이나 큰 바람을 미리 알고
슬픈 섬이 되어 울던 낙동강 끄트머리
돛배나 타고서 다다르던 명지 끝물도 어느덧
토박이 가슴팍에 응어리진 오지 중의 오지인 섬, 시퍼런 파밭과 아파트 단지 아래 매몰된
짜디 짠 소금이슬이 가마솥을 들썩이던 명지도가 낳은
한 알 한 알 금쪽같던 조선의 소금을 아십니까
발품팔이 김정호가 화선지 같은 백사장이라고
먹물로 새겨 넣은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펼쳐놓고
명지도를 콕 짚으면 손가락 끝에 착한 소금
하얗게 묻어날 것도 같은 섬에서
하루 종일 백 말의 바닷물을 끓여도 눈썹만 탄 소금쟁이
등골 빠지게 괴롭히던 염전 터는 어디에 묻힌 걸까요
모래톱에 달궈진 모래알은 잘지도 굵지도 않고
강바람과 바닷바람만 뒤숭숭 들쑤시는 갈대밭에선
까맣게 잊힌 망깨소리*도 들려오는 듯
바다를 등짐 지고 오는 파도는 오늘따라
백금 같고 천금 같은 소금을 내 발등에 내뱉건만
소금의 고독을 느끼는 순간 사라지는
소금꽃은 섬의 눈물일까요
짠내 풍기는 물길 거슬러
오가는 철새 따라 소금길이 나던 섬
섯구덩이**마다 바다의 함수를 풀어내던
통째로 가마이던 섬 어디선가
소금 굽는 연기가 저녁놀을 덮은 섬, 명지도를 아십니까
그곳에서 섬이 낳은 최고의 소금 한 섬, 임금님 수랏상까지 올랐다던
명지소금이라고 들어는 보셨습니까
* 망깨소리 - 명지 섬에서 소금을 굽던 시절, 염전을 보호하기 위해 둑을 쌓을 때, 소금가마를 설치 할 때 모래땅을 다지면서 부르던 노래
** 섯구덩이 - 전통적인 자염 생산 방식에서, 바닷물을 모으기 위해 갯벌을 파고 나뭇잎과 짚 등으로 여과 장치로 만들어 놓은 구덩이
[은상] 장보고 / 김두래
- 궁복(弓福)*, 바다를 쏘다
서남해안 끝자락
짭짜름한 파도내음 코 끝에 묻힌 섬소년
사람들은 그를 궁복(弓福)이라 불렀다
바다를 호령하는 자 천하를 호령하리
갑판에 올라 시위에 포부(抱負)를 걸고 대망(大望)을 향해 겨누는 순간
날이 선 화살촉이 타오르는 태양에
반짝
바다의 눈부심이 이토록 찬란했던가
푸른 바다 품어 안던 태양
다시 그 품으로 안기어 들고
한데 모여 타오르던 붉은 점도
옆으로 옆으로 물 먹은 듯 옅어지는 때
거미줄에 걸린 저 석양
저와 내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창해(滄海)의 냉혹함을 속삭이는데
거미줄 따위야 베어내면 그만이다
찰나의 칼 끝에서 자유를 되찾는 석양
그런데 그 거미줄
내 마음속에 옮겨왔던가
도무지 이 안에 들어앉은 거미줄은 끊어 낼 재간이 없다
태양이 그림자마저 감추고
하늘과 바다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광할한 칠흑의 시간 앞에서
사내는 출렁임에 몸을 내맡긴다
토해낸다
옥죄던 굴레와 사슬을 저 검은 심해에 던져버린다
어제의 의심과 오늘의 두려움과 내일의 폭풍우를 모두 토해내고 고개를 든 순간
칠흑 위에 빛나는 것들이
반짝
바다의 황홀함이 이토록 찬란하다
태양 다시 기지개 펴고
뱃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새벽을 알리는 때
바다를 호령하는 자 천하를 호령하리
여기 돋아오르는 해가 비추는 곳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나서는 항해자가 있다
미지의 세계에 그물을 내던진 도전자가 있다
그와 함께하는 바다가 있다
* 활을 잘 쏘는 사람을 의미함
[동상] 해녀 3대 / 박정애
1.
엄마는 칠보청동바다를 물려주었다
평생 파먹고도 남을 화수분 바다 한 채를
한 귀퉁이를 썩둑 잘라주었다
두렁박 떠 있는 곳이면 엄마가 있는 곳
눈 화살을 꽂고 바라보면
바다에서 솟아오른 엄마는
호오잇, 소리 지르곤 본숭만숭 이내 물속에 들던
그 어머니 딸이 자라 해녀가 되었다
일고여덟에 물장구 헤엄치기가
열두 세살에 물려받은 두렁박을 안고
제 몫을 하는 어린해녀가 되었다
아이를 밴 만삭의 몸으로 출산 한 칠 안
삼동 물속을 들었던 어머니도
어머니의 어머니도 해녀였다
흰 홑적삼 검정물소중이가 광목(廣木)이라
차디찬 겨울바다에 알몸이나 진배없어
식은 한뎃밥 한 덩이 먹자고 바람의지
바위틈 불턱에 앉으면 장작불 매운 연기에
울지 않아도 눈물이 났다
젖어서 언 몸이 오죽이나 추웠으면
언 살이 불에 데어도 몰랐다
남편을 잃고 자식 앞세운 울화도 외로움도
곤두물질에 들면 바다가 달래고 씻어주어
물속에선 다 잊어버리고
죽어도 못 살 것 같은 살아도 못살 것 같은
꽉 다문 입심 하나로 살아냈다
2.
손목에 감아쥔 빗창이 전복한테 물리거나
돌 틈에 끼면 순식간에 요절하는 생
물질이 없는 날은 밭일을 하고
밤에는 바느질로 자식들 공부시키자면
고랫등 같은 파도가 덮쳐도 무서울 것 없는
염천 땡볕아래 콩밭을 걸타고 앉아
호미질로 지심을 잡고
엄동 눈밭에 얼음을 깨고 빨래하던
조선의 여인이 아니었다면
층층시하 효부효녀 열녀가 아니면 못해낼
거친 물살을 안고 살아낸 해녀인생
육칠십이면 졸업할 걸
팔십 구십이 되어도 놀던 물이라
차마 손 놓지 못한 물질
잔정 많은 바람에 물때까지 좋은 날은
가슴이 설레어 끼니때를 건너도 좋았다
바닷물에 허옇게 불은 얼굴로
갯바람 푸른 물가에 우산하나 펼쳐놓고
옷 갈아입던 그날의 해녀
근 한생 물질로 칠 부 능선을 넘어온 지금
포구 어촌계마다 육간대청 부럽지 않은
시설 좋은 해녀집에서
더운 물에 샤워 하고 꽃단장하는데
아, 깜짝이야
불쑥 호명되는 핸드폰벨소리
이승저승 모두가 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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