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고 훔치고 / 김이듬
번개처럼 떨어지는 접시를 받았다
바나나가 있는 접시였다
바나나가 좋아
난 바나나가 좋아
다 주세요
위에 대고 소리 질렀다
내일부터 접시 닦기를 할 거예요
내 꿈은 작고 웃기는 거
껍질을 벗기면 하얀 과육이 나오고 빨면 즙이 나오는
바나나는 신기해
나는 아껴서 핥아먹었다
눈을 감고
달빛이 펼쳐진 장원에 누워
조금만 부드럽게
어서 자둬
내일은 바쁠 거야
내 신발에 축축한 발을 담고 있는 너
만나기 전인지 후인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이 마지막으로 널 본 날이었어
우리가 큰돈을 벌 생각은 아니었잖니
오늘은 푹 자자 내일부터 바쁠 거야
눈을 떠보니 학교였고
새벽 두 시에
난 물을 마시려고 수도 아래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진주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하여 부산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1년 『포에지』로 등단하여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와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산문집 『모든 국적의 친구』 『디어 슬로베니아』를 발간했다.
제1회 시와세계작품상(2010)과 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2011)을 수상했다. 경상대, 경남과학기술대 등에 출강하며 진주KBS라디오 ‘김이듬의 월요시선(月曜詩選)’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작가로 선정되어 독일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 학기 간 생활했고, 2013년 여름부터 석 달간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한국작가로 참가하였다.
2020년 『히스테리아(Hysteria)』 시집으로 미국에서 전미번역상과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동시 수상했다.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1인 독립 책방 ‘책방이듬’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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