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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부] 여름, 어시장 / 김지섭

 

가로등이 아물었다 생채기 같은

사람들이 돋아난다 하나둘 파라솔을 펼친다

 

그녀는 그늘 속에 앉아 꼬이는 파리를 쫓는다 사람들 발목에 파리처럼 들러붙는 목소리가 그녀의 그늘이다

감기지 않는 생선눈알이 녹슬고 있다 꼬깃꼬깃하게 주저앉은 노인의 눈동자, 동전처럼 거리를 구른다

껍질을 들추고 흐느적대는 바지락,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던 남자가 혀를 내밀고 잠들어 있다

나는 바지락처럼 달그락거리는 집으로 전화를 건다 커튼 주름을 비집고 아이들의 부패된 목소리가 건너온다

 

가로등이 돋아났다 생채기 같은

사람들이 아물어간다 파라솔이 접히고 시장골목도 이젠 물러진다

 

 

 

 

 

 

[고등부] 장화 / 안성군

 

장화는 검은 늪이다.

아버지는 어쩌다 검은 늪에 두 발 빠지셨을까

철벅거리는 발자국소리는

왜 허우적거리는 소리로 들렸을까

늪은 신는 것이 아니라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아무도 늪을 신어서는 안 된다

문밖에서 벗고 들어오세요,

엄마는 완고하다.

 

그렇지만 엄마, 아버지의 장화 속에는 물갈퀴가 자라고 있어요. 아침 이슬 속을 헤엄치거나 개구리밥 뜬 파릇한 논물 속을 자유롭게 유영해 요. 논물에 거꾸로 누운 몇 그루 미루나무 속을 헤집으면 잠잠한 가지 들을 휘젓고 파릇한 이파리들이 돋아나요. 봄부터 가을까지 헤엄쳐 다녀요.

 

장화를 털면

거름냄새가 쏟아져 나오는 그 속에는

발목 깊은 늪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폐어肺魚처럼

크고 억센 아버지의 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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