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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놀이패 / 권수진(낭송 :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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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승부를 거는 동안
늘 우아한 자태를 뽐내려고 노력했지만
당신 앞에 추악한 내 모습을
들킨 적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
범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꽃잎 띄운 술잔을 정중히 건넸으나
당신은 한 번도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낸 적 없었다
.
당신을 만나 당신의 터전 위에 뿌리내리고
집을 짓고 사는 동안
웃는 날보다 싸운 날들이 더 많았다
.
길 위에서 낭창대는 삶을 살았으니
그동안 당신 마음 어디에 두고 있었는지
감히 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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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돌아보면 모든 게 일장춘몽이었으니
더는 사랑이라 부르지도 않겠다
.
고립무원의 꽃 진 자리는 항상 내 몫인지라
간밤에 우수수 떨어진 바둑돌 낭자하고
패를 뒤집듯 밤새도록 이불을 뒤척인다
.
하루를 천년같이 고뇌하며 살았으나
대마가 죽는 건 순간이라고
그때 당신을 꺾지 말아야 했다
좀 더 일찍 시드는 법을 배워야 했다
.
함께한 날들을 뒤돌아보면
과연 행복한 시절이 있었는가 싶다
.
다음 생에 다시 승부를 펼친다면
사활을 걸고 덤벼야 한다는 건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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