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미움은 미워하며 자라고 사랑은 사랑하며 자란다 / 김수상

-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창립 22주년에 부쳐

 

 

일본군이 동학 농민군을 죽일 때

농민군의 사지를 소나무에 묶어놓고

묶인 사람의 정수리에

송진을 바른 소나무 가지를 뾰족하게 깎아

망치로 박아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불을 붙이는데,

정수리에 박힌 나무못에 불이 붙으면

, , !

농민군들 머리 터지는 소리가

10리 밖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어디 동학군뿐이겠나

대구의 10

제주의 4.3

광주의 5

총으로 쏴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몽둥이로 때려죽인 나라에

아직 우리가 살고 있다

 

일제에 빌붙고 군부와 독재에 아첨하며

온갖 영화를 누린 사람들은

아직까지 권력의 단맛에 취해

대대손손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고 있는데

빛바랜 창호지 같은 얼굴을 한 우리들은

창천(蒼天)의 하늘 아래 별로 부끄러움이 없다

 

외국인 200만 명이 우리 땅에 살고 있다

같은 말을 쓰면서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같이 살아온 사람들을 민족이라 부른다

그게 민족이라면 그런 시절은 이제 곧 지나가지 않겠는가

 

우리가 우리를 무참하게 학살하고 때려죽인 이유가

아직도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 민족에게 총칼을 겨눈 반역의 죄인들이

광장의 맑은 햇빛 아래 끌려 나오지 않았다

 

인간은 어디까지 선할 수 있고

인간은 어디까지 악할 수 있는가

사람이 죽으면 혼백(魂魄)이 되는데

혼백은 혼()과 백()으로 나누어진다

()은 몸을 빠져나와

위패 안에서 살다가 하늘로 올라가고

()은 사람의 몸에 남아 흙이 되고 바람이 된다

억울한 영혼은 백()이 되어 눈을 뜬 채 땅에 머문다

내가 왜 죽임을 당했는지

내 무덤을 내가 파서 왜 생매장을 당해야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생(相生)이 먼저가 아니고

해원(解寃)이 먼저다

원한을 풀어야 같이 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민족은 해묵은 낱말이 아니다

민족은 폐기되어야 할 말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른 참혹한 죄가

가을밤의 별처럼 자꾸 돋아나는 한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자꾸 되돌아봐야 한다

어머니가 동구 밖에서 우리를 보낸 뒤에도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우리를 지켜보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저지른 죄를

무릎 꿇고 고백해야 한다

 

영원한 이념은 없고

영원한 민족도 없어라

세상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모든 사람은 같은 민족이어라

세상의 그늘 안으로

맑은 햇볕 한 줌 쥐고 달려오는 사람은 모두가 같은 민족이어라

선하고 맑은 마음만이 인간의 역사 앞에 오래 살아남아

별처럼 빛날 것이다

 

민족은 세상의 아픔을 함께 하는 사람들

민족은 세상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들

민족은 세상의 불의에 항쟁하는 사람들

민족은 진실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들

민족은 핏줄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

사랑으로 사랑하면 기쁘지 아니한가

우리는 사랑공화국에서 법도 없이 푸른 맥박으로 사는

사랑의 사람들이다

미움은 가고 사랑은 오라!

거짓은 가고 진실이여 오라!

 

 

 

편향의 곧은 나무

 

nefing.com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회장 서홍관)가 제4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자로 김수상(52)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미움은 미워하며 자라고 사랑은 사랑하며 자란다이다.

 

심사위원회(위원 염무웅, 고형렬, 정세훈)시의 기교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를 초월해, 외롭지만 역사의 아픔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꿋꿋이 시의 미덕과 참다운 도리를 다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근대 개항기 일본군의 동학농민군 학살, 일제강점기 친일, 군부독재 시대 광주의 5월까지 우리가 어설프게 유폐시킨 역사를 꼼꼼히 호명해 현재, 더 나아가 미래에 접목하여 시의 진실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수상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은 시인이 사는 동안 감당해야할 형벌입니다. 산양은 천길 벼랑에 뿔을 걸고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런 자세로 시인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1966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김수상 시인은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중퇴한 이후 시와표현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사랑의 뼈들’(삶창), ‘편향의 곧은 나무’(한티재)를 펴냈고,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가 펴낸 성주가 평화다’(한티재)에도 여러 편의 시를 담았다. 김 시인은 현재 대구경북작가회의 사무국장, 대구민예총 이사, 성주 별동네공동체 이사를 맡고 있다.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는 오는 512() 오후 430분 인천 북구도서관 평생학습1실에서 시상식을 연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등의 작품을 남긴 노동자시인 박영근(1958~2006)을 기리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박영근시인기념사업회는 2015년 작품상을 제정했다. 1회 수상작은 문동만 시인의 소금 속에 눕히며, 2회 수상작은 박승민 시인의 살아 있는 구간, 3회 수상작은 성윤석 시인의 셋방 있음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