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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백서 / 김상미


아주 가끔은 우울하고 대부분은 명랑해요
사람들은 내가 명랑한 걸 좋아하지 않아요
명랑은 우울보다 격조가 더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나는 명랑한 게 좋아요 명랑하고 싶어요
무엇에든 광적으로 집착하는 체질이 못 되거든요
광적인 집착은 병적인 우울을 낳지요
언제나 노심초사 전전긍긍
어디에서 불행이 오는지 어디로 행복이 달아나는지
쉴새없이 탐색하고 추적해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면 점점 명랑에서 멀어져 우울한 괴물로 변해버리죠
정말이지 나는 그런 거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
어릴 때부터 단것보다 쓴 것을 더 좋아한 탓인지
여하한 고통 위에 또 고통을 세워 그 안에 아무리 사나운 북쪽 창을 달아놓아도
내 열병은 시들 새도 없이 하루 만에 거뜬히 끝나버려요
쓸데없이 진지하고 쓸데없이 합리적이고 쓸데없이 현실적인
값비싼 망원경 따위는 집착 강한 우울한 사람들에게나 모두 줘버려요
나는 그냥 바람 부는 길가에 앉아 무언가가 다가오기를 기다릴래요
무언가가 다가와 황홀하게 나를 감동시켜주길 원할래요
로댕의 대성당처럼 가우디의 카사 밀라처럼 언제든지 떠나고 싶은 지중해처럼
지로나의 내밀한 구시가지처럼 고야의 검은 집처럼 김정희의 아름다운 세한도처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뒤뚱뒤뚱 해맑은 어린아이의 단순 명쾌한 웃음소리처럼
오성의 드높은 담장 단번에 밀치고 들어오는 놀라운 명랑에
자연스레 내 온몸 빠져들기를 원해요
아주아주 오래된, 처음과 끝 같기를 원해요
너도나도 창백한 백합꽃 같은 우울에 매달려
격조 있던 본래의 심연 구기고 구겨 뒤틀린 철갑 같은
고상 찬란한 신종 우울증
끊임없이 생산해내며 자랑스레 뻐기든 말든
나는 명랑한 게 좋아요 언제나 명랑하고 싶어요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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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신서정파의 기수이며 1969년 [현대시학-창간:전봉건, 발행:전기화, 편집주간:고형렬02-701-2341] 창간하여 한국시단의 위상을 드높인 전봉건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자 제정한 ‘제3회 전봉건문학상’과 새로운 사유와 감각으로 미래 한국시단을 이끌어갈 인재를 발굴하는 ‘2007년도 현대시학 신인상’ 시상식이 ‘2018년도 현대시학 총회’와 함께 2월 23일 종로구 평창동 금보성아트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전봉건문학상 수상자는 시집'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를 펴낸 김상미 시인이 선정되었다.전봉건문학상은 지난 한 해 발간한 중견시인들의 시집을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와 평가를 통해 우리 시단의 대표적인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심사위원(이경림 시인, 이숭원 문학평론가)들은 심사평에서 “김상미의 시는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공적인 차원으로 전환하여 생의 진실과 비밀에 마주치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된 시인의 화법, 유사한 시어의 반복을 통해 리듬과 변화를 창조하는 그의 매혹적인 표현법은 이제 어떤 경지에 이른 듯하다.”라고 평하였다.

전봉건문학상 수상자인 김상미 시인은 1957년 부산 초량동에서 출생하였고, 1990년 계간 '작가세계'로 등단하였다. 시집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잡히지 않는 나비',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산문집 '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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