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선작
동백꽃치마 / 조윤희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학년)
빨랫줄에 널린 엄마의 치마를 걷어 와요
방문을 꼭 잠그고 나는 몰래 치마를 입죠
치맛자락에 둥둥 떠다니던 동백꽃이 토독 눈을 떠요
내가 입고 풀썩 앉아 널따란 동그라미 그리면
방바닥에 주름진 푸른 우물이 생겨나죠
우물 속에 고개를 숙이고 속눈썹을 담궈요
내 눈동자에 목젖을 감추고 있던 꽃망울이
엄마의 두레박 같은 웃음처럼 풍덩 피어나요
나는 빨간 동백 숲 가운데 천막을 치고 앉아
불그스레한 볼에 머뭇거리는 바람을 맞고요
깊은 우물 밑바닥에 꽁꽁 숨겨져 있던
엄마의 캄캄한 자궁을 상상하며 나는 익어가지요
나는 가장 붉은 동백꽃을 우물에 던지고는
시치미 떼며 엄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요
그곳에는 내가 우물 밖으로 태어나지 않을 때
꽃을 던지며 긴 머리칼 날리는 엄마가 있죠
천막을 치고 앉아 젖어가며 나를 기다려요
낮잠을 주무시는 엄마는 이제 이끼가 가득한데요
나는 엄마 모르게 어른이 되지요
* 가작
망종(芒種) / 이승욱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비가 그치고 마당에 나가 젖은 자전거를 닦는다
근 석 달 만에 비다운 비가 내렸다 걸레로
안장을 닦고 내친김에 살대도 군데군데 닦는다
걸레를 접는데 엷은 녹이 묻어나온다 페달도
거꾸로 돌려서 소리를 들어본다 생각보다
잘 돌아간다 그늘진 마당가엔
흙지렁이 몇 마리 기어나와 꾸불텅거린다
힘을 구부린 곳마다 빛이 반사한다
가뭄이 생길 때부터 오랜 시간을 저렇게
더딘 몸으로 기어왔을 것이다
주름을 잡고 펼치며 온 몸을 밀었을 것이다
제대를 하고 한 여자를 만났다 헤어지고
잘 배우던 간판일을 그만둔 지도 반 년이 지났다
광대뼈처럼 메말라가던 그 반 년이
너무 쉽게
마당을 따라 뒤로 밀려간다 그늘처럼
어찌할 도리 없이 밀려간다
* 가작
초록의 여린 눈이 되어 / 이현정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오랜 시절엔 우리도 아주 조금은
여린 식물의 눈을 하고 허공을 더듬었을지도 모를 일,
우리가 볕을 쬐며 광합성을 하는 동안
눈은 저절로 감겨 팔 다리는 나른해지고
온 몸 가득 초록이 번져
열에 들뜬 날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모든 그리운 이름을 흙에 부쳐
물길을 더듬으며 꽃대를 키웠던 것 같다
땅이 긴 울음을 울며 밤의 수레바퀴를 굴릴 때에도
결코 잠듦 없이 허공과 공허의 사잇길을 달음질쳐
머나먼 동으로 귀를 열었을 것이다
가끔 내 몸 속이 간질거리고
목이 마르고 볕이 그리워지면은
아주 오래 전 내가 초록이었을 적
이름들이 깨어나는 것 같아
펌프질한 물들이 눈물샘에 말갛게 고여
온 몸의 감각을 흔들 때에도
나는 슬프지 않았나 보다
바람에 휘청거리는 오후,
그 졸음 겨운 시간에 가만히 내 안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초록의 여린 잎새들이 많아
간질거리는 봄볕을
삭정이 마디마다 있는대로 구겨넣고
맨땅에 등을 대고 가만히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초록이 벙글어지는 온 몸에
봄물이 수포처럼 잡히고
하늘 향해 펼친 열 손가락에
명주바람 앉았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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