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선작
잘못 누군가에게 들어선 / 이현우(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1학년)
훗날 그대의 사내가
잠든 그대의 몸을 끌어안으며
지금 당신은 누군가의 전생으로 잘못 기어드는 중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리 말한 뒤로 그대의 발가락 마디 사이의 수로(水路)를 열어
그대를 밀어 넣기 시작한다면
그저 묵묵히 그 긴 수로(水路)를 따라 걸어 내려가실 수 있겠습니까
이 생을 누군가의 전생인양 접어두고
훗날 그대의 여인이
걷는 그대의 손을 놓으며
지금 당신은 이 생으로부터 만삭이 되었어요
라며 그대의 손가락 마디 사이의 화로(火路)를 열어
당장 여기서 나가라 한다면
그대는 유유히 이곳을 빠져나가실 수 있겠습니까
이 생을 누군가의 전생인양 걸어둔 채
한 사내와 여인의 전생이 빚어지는 방에서
한 생은 사내로 나머지 한 생은 여인으로 각기 삼십을 살다가
가야할 곳이 후 생이 아니라 이 생이라는 사실을
지금 당신은 누군가의 전생으로부터 잘못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 가작
가시리 / 박성준(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학년)
너를 거기에 묻어두고 내가 여기서 희미하게 몸을 연다
목련꽃이 가지를 잊는다. 나무와 헤어진 꽃잎은 예민한 바람의 손톱들. 그렇게 가시리 가시리잇고. 후두둑 깍여 나간 너의 호흡이 가만히 허공을 밀면, 나뭇가지마다 하얀 물이 흘러나왔다. 나무가 몸을 열기 시작했다고, 따가워, 따가워! 내가 너의 눈동자를 불 때처럼 가늘게 대지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고. 네 몸 속을 유연하게 떠다니던 풍매화의 홑씨들이 후一 후一 제 살을 뚫고 흘러나온, 잃어버린 문장 하나를 만나면 나는 오래 전부터 이 자리에 서서 너를 불렀다. 눈물을 흘린 때마다 내 몸이 열리고 있었다고. 하얀 뼛가루가 부슬거리던 목소리로. 토라지지 못해 붉은 열병만 앓으며 위 증즐가 태평성대
너와 내가 서로의 틈을 껴안고 겹쳐지는 순간 이미 잃어버린 계절, 새들이 버리고 간 둥지는 나무의 심장이었을까. 한 때 풍성한 불빛이 나무의 내부를 휘젖고 뿌리마다 젖물 돋아 옹이딱지들 가려워지고, 축축해지고, 끈적해져도. 그렇게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무는 다시 누군가, 제 몸에 들인다는 것이 두렵다. 헤어지던 그 순간 모습 그대로 목련꽃이 다시는 아니 올까 두려워, 온몸에 단추를 걸어 잠그고 나무껍질을 붙잡아 단단하게 움츠려 봐도 하얀 눈물샘은 아무도 막지 못할 거라고. 목련잎은 떨어지면서 먼 마음을 붙들고 나는 너와 늘 같이했던 자리에 가만히 손바닥을 대어 본다. 위 증즐가 태평성대
한 계절, 나무가 속앓이를 멈추면 대지의 심장이 뛰리라.
* 가작
거의 안개 / 윤유나(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
고장 난 듯이 붉고 붉은 장미와 함께
나는
발뒤꿈치처럼 툭 튀어나온 이 길을 걸을 때면
몸속으로 안개가 꼈다 사라지곤 했다 그럴 때면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끊겼다
길 속으로 귀를 넣어 보곤 했지만 피아노를 찾을 수 없었다
우연인 척 우체통을 보며 냉장고를 생각했다
코드를 잘라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보도블록 보다 커다란 발자국을 그리면서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지 않고서부터 집은 내내 감동적이지만
이젠 아무것도 그리지 않는다
다만
빈 가방을 버리고 싶다
열쇠는 버리고 싶지 않고
문방구에 가고 싶기도 하다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고 중얼대다가도
미간을 구기며 연기한다
안개는, 이건 운명 교향곡이군
사랑은 아니 길은
사람을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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