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선작
목련 / 홍슬기(숭실대학교 문예창작 1년)
너의 저 하얗고 순결한 혓바닥들
나는 너의 혀와 나의 혀를 교체했으면 좋겠어
나는 너의 혀를 달고 바람의 노래를 부르고
너는 나의 혀를 달고 껌처럼 질겅질겅 씹어보기도 할 텐데
종종 바람이 불 때마다
내게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너의 혀에서 갈라져 나온
세상에 존재하는 바람의 방언들이 후드득 쏟아져
두껍고 부드러운 너의 혀를 쓰다듬으며
나는 네가 말을 하지 못했던 때를 생각해
네 내부에 갇힌 수많은 방언들이 시끄럽게 떠들다가
스스로 조용히 썩어버리던 시절
너의 봉오리 속에서 그런 은밀한 시간들이 흐르고 있지
나는 너의 입을 벌려 네 입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네 입 아주 깊은 곳에 위치한 너의 혀
아직도 너는 혀에 남아있는 방언의 자음과 모음을 중얼거려
아무렇게나 맞물린 활자들이
네 혀를 타자기처럼 두드리면
너의 혀가 쩍쩍 갈라지지
눈이 오고 따뜻한 어느 나라의 방언으로
나에게 욕설을 내뱉어
그 나라 방언의 기원은 욕설이었을까?
나는 네 입술을 한 겹씩 헤집으며
가장 오래된 너의 혀가 가진 언어를 배우는 중이야.
* 가작
비단길 / 황의선(명지전문대 문예창작 3년)
아무리 씻어도 이름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단어가 의미를 가둔다는 생각이 들 때
언어에서 화장품 냄새가 날 때면
난 발걸음을 재촉하여 구부러진 길 위를 걸어간다
이정표를 보지 않고 꽃들에게 길을 물으며
걷는다 촉촉하게 젖은 대숲을 지나
떨리는 강물에 부싯돌 몇 개 던지기도 하며
걷는다 온간 간판과 현수막들이
서로 길을 가리키던 도시에서 벗어나
언젠가 철도나 아스팔트의 잔가지가 닿을 이 길
곳곳에 곱고 보얀 맨살 가득하다
달빛이 내려앉은 숲을 지나갈 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손가락을 들어 별자리의 선분을 끊고
이름 모를 들꽃들의 학명을 지워나가다 보면
보인다, 화장기 없는 얼굴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꽃송이 하나
너 이제 빨강에서 해방되었으니
어떤 길도 이름도 색칠한 적 없는
투명한 꽃잎 위로 내리는 달빛 가루 환하다
* 가작
고서(古書) / 이효정(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 4년)
나는요 도서관에서 일해요
아침 일찍 나와서 반납통 먼저 확인하죠
글쎄, 어제는 거기 노숙하는 할아버지가
웅크리고 주무시더라고요
뒤주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사도세자에요, 해도 대꾸가 없기에
하는 수 없이 끌차에 실어 책장에 모시고 왔어요
여기 계시면 누군가 대출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담 어느 책장이 좋으려나
할아버지는 여기 말고 살 곳도 없다고
여기 말고 가본 곳도 없다고
자꾸만 우는 소리 하니깐
여행 코너가 맞춤일 것 같아서
나는 그리스 해안에 꽂아드렸어요
물이 좀 차다고 덜덜 떨진 마시고
할아버지 주름만큼 구깃거리는 모래사장을 푹 덮으세요
그리고 여기 하얀 조약돌을 입에 물고 기다리세요
왜 있잖아요
나뭇잎을 띄운 물이 맛 좋은 것처럼
책갈피라도 껴있는 책이 음미하기 좋은 법이거든요
자, 준비되셨지요
이제 그럼 가지런히 앉아서 책장이 넘겨주는 파도소리 좀 들어보세요
파도가 훔쳐오는 저 발자국 소리 좀 들어보세요
발들을 밟고 달아나는 자갈과 무릎을 베고 눕는 모래알.
할아버지는 이제 책장의 섬이거든요
오래된 책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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