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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웃음 / 채선정

 

천년을 건너온 석상石象에는

우주의 웃음 하나 들어 계시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망치와 정으로 새긴 웃음

오방五方의 규칙이 쉬었다가는 웃음엔

밀잠자리도 외발뛰기햇살도

박주가리씨앗의 가잠도 쉬었다 간다.

아랫목 같은, 소리도 없이 호탕함도 없이

빙그레 미소 짓는 웃음은 흔치 않다.

어느 석공이 저 웃음 새기실 때

손끝하나 아프지 않았을 것 같은

웃음에 이끼가 파랗게 돋고

검은 바람의 때가 묻어 있지만

봐라, 잘 생긴 웃음이란

천년을 웃어도 쉽사리 닳지 않는다.

장마철 눅눅한 안색도 반짝

해 뜨게 하시는 웃음.

내 어머니,

어쩌다 맑으신 웃음은 다정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천년의 우울 같은 내 얼굴에

잘 생긴 미소하나 새겨지는데

마음의 꽝꽝 아픈 소리가 난다.

 

 

[당선소감]

 

무심한 잠에 취해 울리는 전화를 받지 못했다.

 

뒤늦게 받은 전화는 꿈결인 듯 들리는 당선통보였다. 춥기만 한 한겨울, 이보다 더 따뜻한 감사가 있을까. 이화선 문화기획 팀장님의 목소리는 봄날 허공을 나는 나비의 날개 짓 같았으니.

 

그 옛날 새벽이면 물동이부터 채우시던 어머니를 닮으려 했다.

 

새벽은 나의 가장 큰 우군(友軍)이었다. 물동이에 물 쏟아 붙던 소리 같은, 그런 청량한 시를 쓰고자 했던 나의 새벽고행이 드디어 결실을 얻은 듯해서 기쁘다.

 

빈약하게 길어 올린 나의 시는 어머니의 물 항아리처럼 넘실거릴까.

 

긴 곰방대를 입에 무시고 옛날 이야기를 해주시던 할머니가 보고 싶다.

 

온통 마음을 빼앗기던 그때의 그 할머니 구술(口述)처럼 구수한 시 쓸 수 있을까.

 

일찍이 쓰는 일보다 낭송을 먼저 배웠다. 한편을 입안에 넣고 하루 종일 굴리다보면 시는 사탕처럼 다 녹고 그 달달한 감정만 남곤 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여하튼 부끄러운 일로 기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내일처럼 기뻐해 준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나보다 한참 먼저 시인의 길을 걷는 막내 동생. 졸 시를 선정해주신 동양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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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조형물 속에 담긴 이미지와 정체성 찾기

 

제25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791편)들이 예년과 대동소이하다. 작품의 수준으로는 난삽한 작품들이 줄어들고 있는 편이다. 관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향의 작품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끝까지 선자의 손에 남아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 김태원의 ‘상처를 세우다’와 홍영택의 ‘호미자루’와 장윤덕의 ‘옹기甕器’ 그리고, 채선정의 ‘천년웃음’란 시이다.

 

김태원의 ‘상처를 세우다’는 시에서 “장마가 잠시 머뭇머뭇하는 칠월의 아파트 앞에 방음유리 외벽”을 “가까스로 세워 올린 담쟁이들이 기어오르다 휘청하고, 기어오르다 곤두박질치고” 자신의 상처를 계단처럼 딛고 절망의 벽을 오르고야 마는 “허공에 솟구친 덩굴손 끝이 코브라의 목처럼 줄기차고 팽팽하다”고 했다. 의지와 투지력이 보인다.

 

홍영택의 ‘호미자루’란 시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일깨워낸다. “보리밥 한 술에 소주 한잔을 드시고 호미자루 들고 밭에 나서는” 어머니 모습과 비탈 밭이랑에 얽힌 삶의 애환을 들어내며 “호미자루에 새긴 시詩를 울타리에 걸어놓고” 나면 늦게 뜬 달님, 별님들이 살며시 들어다본다고, “꼬부라진 호미자루를 보면 어머님이 떠오르는 건 내 허리도 구부러진 탓이라고 뇌까린다.

 

장윤덕의 ‘옹기甕器’란 시에서 옹기(甕器)는 약토(藥土)라는 황갈색의 유약을 입힌 질그릇을 칭하는데, ‘독’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어로써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 말이다. 뚜껑을 열거나 닫아둔다. 낮에는 햇살이 들고, 밤에는 달빛과 별빛이 양념을 친다. 숙성된 된장이나 간장의 맛을 느끼고 있다.

 

채선정은 ‘천년웃음’이란 시에서 천년을 건너온 석상石像에서 웃음을 제시하고 있다. 석상은 돌을 깎아 만든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그 종류와 의미가 다양하다. “망치와 정으로 새긴 웃음” “장마철 눅눅한 안색에도 반짝, 해 뜨게 하시는 웃음”을 통하여 웃음의 형상을, “빙그레 미소 짓는 웃음”을 은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세월 속에서 웃음에 이끼가 파랗게 돋고, 바람의 때가 묻어나고 있다. “천년을 웃어도 쉽사리 닿지 않는다”며 어머니의 다정하고 맑은 웃음이 내게 전이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석상이란 조형물 속에 담긴 이미지와 정체성 찾기를 시도한 채선정의 ‘천년웃음’을 당선작으로 민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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