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슴베* / 김수화
아버지 돌아가신 그 집
가장으로 서 있던 먹감나무 쓰러졌다
한 집안에서 가장이 빠지고 난 뒤부턴
낫자루며 농기구 자루들이 빠지기 시작했다
떫은맛과 단맛을 알게 했던 먹감나무뿌리는
오래 흔들린 듯 갈래가 어지럽다
가지와 뿌리 어느 쪽이 슴베였는지는 모르지만
뾰족한 그 끝을 보면
박힐 때 수월하기 보다는
빠질 때 쉬우라는 말 같다
그렇게 양쪽이 물려있는 동안
손잡이와 날이 함께 커졌다
한 쪽이 두절 됐다고 해서 두절이 아닌 것처럼
손잡이와 날은 아버지, 어머니 하는 말 같다
빠진 낫자루 안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들어있다
나무가 서 있던 자리를 올려다보면
반짝반짝 별들이 지나가고 있다
나무를 잘라 토막은 실어 보내고 잎사귀를 긁어 태운다
젖은 연기가 하늘 자리에 박히고 있었다
뒤쳐진 연기들은 끝이 뾰족해서 눈이 따갑다
나무들은 하늘에
슴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울창한 숲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유독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다
먹감나무 쓰러질 때 우지끈 하는 소리는
하늘 한 귀퉁이가 쑥 빠지는 소리였다
* 칼, 호미, 낫 따위에서,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한 부분
[우수] 귀뚜라미 전화(글제 : 고목) 지관순
[장려] 기념일(글제 : 기념일) 김미선
[장려] 노송, 우듬지에서 돋아난 것은(글제 : 고목) 안나라
[장려] 어항(글제 : 유산) 김정순
[입선] 유산(글제 : 유산) 박정옥
[입선] 느림보버스(글제 : 좌석버스) 이숙희
[입선] 아버지의 걸작(글제 : 고목) 송옥선
[입선] 고목(글제 : 고목) 김인숙
[입선] 고목(글제 : 고목) 박은영
[심사평]
응모된 작품은 약 516여 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백일장의 특성을 감안하여 전체적인 완성도와 함께, 기성의 작품들에 볼 수 있는 조형성을 가졌거나 비슷비슷한 시들보다는 신선한 시들에게 점수를 준다는 심사규준을 정하고 심사에 임했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에도 불구하고 약 20여 편의 작품들의 경우 그 시적 형상화는 놀라웠다.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돌려보며 의견을 모으고 절충하며 심사를 진행한 결과, 「유산」(박정옥), 「느림보버스」(이숙희), 「아버지의 걸작」(송옥선), 「고목」(김인숙), 「고목」(박은영), 「슴베」(김수화), 「귀뚜라미전화」(지관순), 「기념일」(김미선), 「노송우듬지에서 생긴 일」(안나라), 「어항-유산」(김정순)의 작품이 남았고 그때부터 심사위원들의 숙고가 시작되었다. 「유산」(박정옥), 「느림보버스」(이숙희), 「아버지의 걸작」(송옥선), 「고목」(김인숙), 「고목」(박은영)은 마지막의 시적 갈무리가 아쉬웠다. 시작은 좋았으나 결과를 맺는 방식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지적되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슴베」(김수화), 「귀뚜라미전화」(지관순), 「기념일」(김미선), 「노송우듬지에서 생긴 일」(안나라), 「어항-유산」(김정순) 중 「슴베」로 장원을 결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시어를 고르고 배열하는 솜씨가 적절했고 주제를 관통해내는 시적 역량도 심사위원의 의견을 모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가령 ‘떫은 맛과 단만을 알게 했던 단감나무뿌리는 오래 흔들린 듯 갈래가 어지럽다’ 같은 구절이나 ‘젖은 연기가 슴베처럼 하늘자리에 박히곤 했다’와 같은 구절은 삶에 대한 귀한 통찰을 담고 있어 신뢰감을 주었다. 「귀뚜라미전화」(지관순)는 빼어난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시적 구심이 약해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기념일」(김미선)은 서사가 잘 녹아든 시이지만 시적 분위기가 아쉬운 점이 지적되었다. 모두에게 정진과 축하를 건넨다.
심사위원 김경미, 김경주, 오태환, 안희연, 이정록, 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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