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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오던 날 / 홍희자

 

설핏 낮잠이 들었다 목마름에

깨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하염없이 보고 있다

 

당췌....

닫고 말았다

 

텔레비전이 혼자 씨부렁거리는 게

말리는 시누이 같건만

리모콘은 혼자 머리 속을 돌아다닌다

벌레 먹은 나뭇잎사귀 같은 기억

 

버팅기는 발 끌어 올려

전원을 눌러 버렸다

 

 

병원을 가 보아야지

서랍을 열고 양말을 찾아 다시

손이 헤매고 있다

길을 모르는 바람 같은 마음

 

 

젊고 잘 생긴 의사양반의 공허한 소리

  - 기억력 검사 몇 가지 할께요

 

-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입니다

 

태풍이 시작이다.

 

 

 

  

   [심사평]

 

   30주년을 맞이하는 마로니에전국여성백일장에 응모된 작품들은 한편 한편이 모두 소중하게 다가왔다. 응모된 대부분의 작품들 속에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사유들과 모성적인 따뜻함이 들어 있었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시제를 통찰하는 면이 돋보이는 작품도 적지 않았다.

   장원으로 뽑힌 「태풍 오던 날-치매랑 놀기」는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라는 진단을 받은 자신의 내면 풍경을 태풍이 시작되었다고 스스로 진단하고 형상화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우수상으로 뽑힌 「부부살이」는 부부가 되어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고양이 자세로’ 나의 나됨만을 강요하지 않고 간격없는 교감을 하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이 잘 전달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장려상을 수상한 「10월을 완성하다」는 가을풍경의 쓸쓸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외로이 꿋꿋하게 ‘10월을 완성’하리라는 시적인 전언이 인상적이었다.

   수상의 기쁨을 누린 분들께는 축하의 인사를, 수상하지 못한 참가자들에게는 다음 수상의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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