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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 김은혜


어두운 골목길 입구 홀로 깨어 있는

작은 24시 김밥천국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 안에서

여자는 피아노 치고 있다

도마 위에서 손가락들이 흥얼거린다

검은 건반 둥글게 두드린다

끊어진 기억들이 스타카토처럼

손끝에서 튕겨나간다

소리들이 길게 말려지면

어둡고 둥근 터널이 된다

위태로운 여자가 검은 터널 끝에

비틀거리며 서 있다

긴 시간들이 쓸려간 자리,

그 끝에 떠나갔던 이들이 온다

어두운 터널 속으로 살며시

시처럼 가벼이 온다

그 자리에 어느새 봄날처럼 떠난

어머니가 늦가을처럼 서 있다

이쪽과 저쪽, 그 날선 끝과 끝

여자는 그 생채기들을 둥글게

말아내고 있다

건반 두드리듯 울음을 그 터널 안에

겨우 들려준다

여자는 칼로 터널을 자른다

터널 속에서 아주 작은 틈처럼

여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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