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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 정미경


먼지들이 창고를 점령했다

바겐세일의 끄트머리에서

상표 위에 상표가 덧입혀지고

가격은 자꾸만 하락한다

희미하게 날이 선 바지들

근사한 외출 한번 걸치지 못한 점퍼들

어둠의 치수를 재며

먼지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오래도록 주인을 만나지 못한 것들

옷걸이를 붙들고 산다

밖으로 몰려갔던 것들이 되돌아와

어둠을 켜켜이 껴입고 잠이 든다

계절을 놓쳐 버린 저것들은 또 한철

버텨야 한다

때론 유행을 놓쳐 버리고

가격표가 반쯤 잘려 자루에 담긴다

오직 무게만이 몸값

제값을 거품처럼 물고 있는

옷가지들 사이로

깃을 들어올릴 때마다 묻어나는

할인된 슬픔의 무게들

이 곳은 막다른 골목이고

나는 제철에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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