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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이가은

-가을의 눈물


셀 수 없는 게 어디 그뿐이겠는가.

봉덕사 눈 먼 노스님이

보일 듯 보일 듯

노란 수국에게 말 건네보는

가을 한 낮.

그날은 산뻐꾹 소리가 속절없이

떠다니는 마음 가닥 틈새로

뚝 뚝 떨어지는 날이었어.

아찔한 향냄새가 천리로 퍼져나갈 듯

법당문을 모두 열어젖힌 그런 날.

아이고, 아이고

불경소리도 목탁소리도

그 아득한 곡소리를 넘지 못했어.

사람이 사람을 멀리해

눈 감아버린 그 날.

무릎나온 삼베옷의 까끌함이

살갗에 선명히 느껴질 때마다

견딜만한 슬픔같아

눈물보다 울음소리가 앞서는,

정면인 것은 영정사진뿐인 가을 한 낮.

뜨거운 햇볕이 수국 위로

막 내려앉을 때였나.

어린 동자승이

뛰어다니다 꾸중을 들었는데

영문도 모르는 채 눈물이 찔끔,

그 설운 눈매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아, 글쎄

꿈결처럼 눈앞을 가리는

꽃잎들 꽃잎들.

떠나보내는 것보다

남겨지는 것에 익숙치 못한

못난 마음 하나, 둘

붙잡을수록 놓아버리는 산길

휘청이며 내려가는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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