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옥상 / 권여원
내 신혼의 꿈은 옥상에서 시작되었다
스티로폼 상자에 심은 부추와 과꽃은 철따라 피고
화분 하나는 옥상을 지키는 대문이었다
옥탑방이 할 수 있는 건 하늘을 끌어당기는 일
밤하늘의 별은 붙박이장이고
그믐달은 내일을 꿈꾸게 하는 베개였다
대리운전을 했던 신랑은 공복의 저녁도 잊은 채
밤하늘의 귀가를 총총 도왔다
도시의 절반을 헤매고 다닐 남편의 주행거리가
빛의 속도로 쌓여도 내 집 마련의 꿈은 저 별들처럼 아득했다
시어머니는 종종 아이 소식을 물었지만
벼랑처럼 흔들리는 옥상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어
나는 밤마다 마이보라*를 챙겨먹었다
남편이 도시의 불빛을 잠재우는 동안
늦게까지 구슬을 꿰며 시간을 굴렸다
새벽 고단한 잠을 겨우 눕히면
옥상으로 몰려온 바람이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그해 겨울, 가파른 언덕을 넘으며
우리는 맹물에 별을 녹여먹었다
바라보면 아슬한 옥상에서 두 해를 견디다
낮은 곳으로 내려온 나는
그때부터 마이보라를 던져버릴 수 있었다
* 마이보라 : 먹는 피임약
[우수상] 옥상 / 이성자
가을볕 소복이 쌓이는 옥상 빨랫줄에
중풍 맞은 노인이 낡은 스웨터를 널고 있다
헐렁한 왼팔을 허리춤에 끼워 넣고
흘러내리는 어깨 추스르며
구부정한 등줄기 몇 번이고 들썩거린다
젖은 스웨터에서 물방울이 떨어지자
출렁, 팔 하나가 흘러내린다
잠시 근심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노인의 얼굴
가을 바람이 달려와 한 팔이 빠져나간 빈손을 흔들어본다
시나브로 가벼워지는 꽃무늬 스웨터
물먹은 꽃들이 모가지를 쳐들기 시작한다
옥상에 살던 바람이 지루한 오후를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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