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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지나가는 것 / 박다은

 

 

흰 양말을 신고

기차에 탄다

 

신발을 벗지 않을 예정이기에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것을 안다

 

사람들은 어디에도 꺼내놓지 않을 흰 마음과 흰 계란을 준비하여 의자에 앉는다

 

저 안에 노른자가 있을까

저 마음에도 노란 꽃 한 송이 있을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의자는 달음박질치는 풍경만 바라보는데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떤 아이가 한쪽 다리를 꼿꼿이 세운 백로들 사이로 달려가고 어떤 언니가 걸어가는 남자들 앞으로 달려가고 어떤 공룡이 가까워지는 소행성을 등지고 달려간다

 

마지막에 우린 어떻게 되지?

 

흰 양말을 벗지 않으면

흰 양말인 채로 죽게 되겠지

 

유리창은 굉음을 지르고 난동을 피우지만 무릎들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홀로 살아남은 아이와 언니와 공룡의 결말을 확인하지 못한 채로 기차는 멈추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세상에 도착한다

 

외투를 벗지 않을 예정이므로

흰 마음을 숨기고

 

지나간다 서로를

 

 

 

 

 

 

 

[우수상] 달리기 / 김현진

 

 

바람이 구멍 난 나뭇잎사귀 곁을 지날 때마다

잎맥을 갉아먹던 애벌레가

나뭇결 같은 갈색 주머니 안에서 흔들리며 꿈을 꾼다.

 

그 곁으로

사소한 발길질에도 구르는 돌멩이처럼

그녀의 구부린 등허리가

꺾어진 그늘을 이루며 언덕을 오르고

숨소리마저 햇살의 거미줄에 사로잡혀 소거되는 오후,

 

길 위를 지나는 분주하고 소란한 세상의 소리를 등지고

달팽이 같은 그녀가 손수레를 머리에 이고 느린 보폭으로 기어가고

그녀의 그림자가 달팽이 진액처럼 달라붙은 길에는 땅거미가 기어오른다.

 

가스비를 종이박스 무게로 물물교환하는 초인류가

멍이 든 뼈들을 따뜻하게 녹여 줄 하루 동안의 잠을 위하여 사족보행을 감행하는데

그녀의 구공탄 같은 날들이

나무공이 속에서 겨울채비를 시작한 애벌레의 고치들처럼

움직이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는 꿈을 꾸었으면,

 

펴지지 않는 생의 분절들을

땔감으로 모으는 굽은 손등 위로

위로처럼 흔들며 지나는 바람을 향하여

 

어깨가 짓무르고 등허리가 내려앉은

그녀가

빈 수레로 돌아가는 하얀 길 위로

허기진 비둘기들이 눈알을 굴리며

그녀의 그림자를 쪼아댄다.

 

느리고 지루한 한 생애가

부리에 해체되어

날아오르듯 언덕 위를

바람처럼 달리며 굴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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