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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공기에 손수레 끌고 갈 때 / 정영희
골방 한 칸의 부피는
손수레 몇 대 분량의 폐지더미로 환산될까
창구가 동전을 쪼아 먹는 시간이면
은행 앞 푸른 은행나무 아래 손수레 끄는
노인들이 모여든다
폐지는 뼈를 부러지게 하거나 닳아지게 하여
설령 며칠 등 굽은 밥 한 공기에 닿지 못한다 해도
몇 닢 통장에 찍고 나면 가뿐한 집이다
푸른 정장 차림의 은행 앞 은행나무 햇살은
삐걱대는 어깨를 다독이는 찜질팩이겠지
동전 몇 푼, 부르튼 낯빛을 빗어 내리는 미소는
펼칠수록 은행잎이다
밥 반 공기 시래기 국에 말아먹은 손수레가 따뜻하다
폐지더미는 아랫목을 데우는 장작불이어서
골방은 제 혼자 달아오를 것이다
돌아온 노인은 컵라면을 후루룩거리겠지
얼룩 작업복을 행주에 비벼 빠는 사이
은행 앞 푸른 은행나무는 금세 노랑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밥 반 공기는 고수레라며 손수레에 묻어놓는다
내일은 폐지더미가 너무 추워 외출이 어렵다는 말에
노인이 다시 손수레를 끌고 나간다
넉넉하게 보름달을 밀고 나간다
밥 한 공기 손수레에 꾹꾹 눌러 얼어붙지 않도록
골방 통장을 다복다복 채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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