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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비 사만 오천 원 / 박혜란
 
   하룻밤 숙박비 사만 오천 원짜리
   전날밤의 뜨거운 정액 내음만 식지 않은 채
   쿰쿰 시큼하게 가득 찬 싸구려 모텔 방에 불이 켜지고,
   양손에는 울엄마 손 잡고 장 보던 날처럼
   한 보따리 가득 무거운 시름만 검게 들려있다
 
   손에 들린 짐을 방 안으로
   지우개 때처럼 흩쳐놓고서
   욕실 등을 예민하게 켜본다
   욕조에 뜨끈한 소주 한 바다 채워놓고
   어느 복숭아의 엉덩이 같은 알몸으로
   욕조 안에 나를 구겨넣는다
 
   삭제 버튼같은 수면제 네 알을 삼키고
   하얀 선으로 내 목을 감아
   영원한 순간과 현재를 방랑하던
   나는 바위 앞에 곧 부서져버릴 파도였다
 
   컹컹대는 개마냥 올가미에서 목을 내리고
   숨을 담담히 몰아쉰다
   그러고는 쓸쓸한 가방에 공허한 마음 한 줌 담는다
 
   덜그럭거리는 가방을 끌고 이 빠진 계단을
   울컥울컥 내려온다
   사랑하는 한 여인의 향수 냄새 가득한
   그 방의 거울에 나는 잠시 구름이겠다
   메모해둔다
 
   그 여인 앉았던 데워진 마음 한 구석이 잘린다
   머물렀던 가슴에 향수만이 눅눅하게
   남아, 눈이 뜨겁다
 
   아직도 네온사인 번뜩이는 그 길을
   녹슨 발로 성큼성큼 헤매다,
   도착한 모텔 앞
 
   사만 오천 원짜리 방 한 칸에 고단한 설움을 꾹꾹 담아
   녹록한 몸을 욕조에 뉘인다
   욕실 안은 담배연기 섞인 뿌연 수증기만 무겁게 맴돌고
 
   잠은 오지 않는다
   컴컴한 그 날 새벽, 나는 나를 잃고
   한 여인을 잃은 녹슨 고철깡통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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