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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 정주연

 

 

 

[당선소감] 가시나무 섰던 자리에 전나무 돋아나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 뿌린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내주듯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가시나무 섰던 자리에 전나무가 돋아나고

쐐기풀이 있던 자리에 소귀나무가 올라오리라 (이사 55, 10-13).

아버지 당신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땅에서 기뻐함은 하늘의 영광입니다.

이 기쁨을 하늘에서 땅에서 기르신 분께 올립니다.

정작 전화가 울려 왔을 땐

갑자기 옷을 벗기우는 듯한 당혹과 부끄러움에 망연했어요.

지난 시절 추위 속에 있을 때, 주변에서 말 없는 말로 지켜보던 모든 이들,

위령성월 둘쨋 날, 정족리 공원묘지에서 기억해주는 이 없는 영혼들을 위해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려주시며 진혼미사를 올려주신 본당 주임신부님께도, 왈칵 쏟아 놓았을 뿐 미처 다듬지도 못한 졸작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이 세 번 절하며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어디선지 긴 잠의 빗장이 풀리는 소리

사마천의 만개한 벚꽃나무가 미소 짓는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 밑으로 오솔길이 생겨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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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평화문학상 신춘문예 당선자에 대한 시상식이 지난 1월18일 오전 본사 10층 성당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시부문에서 정주연(본명 정병애, 55·베로니카·춘천 퇴계본당)씨, 소설부문에서 공동당선자인 김경화(42)씨와 김양화(33·베로니카·광주 진월동본당)씨가 각각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시부문 심사위원 신중신(다니엘)시인은 “이번 시부문 당선작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연대감을 무리없이 소화하고 생각의 깊이가 있다”고 평가했다. 또 “시단이 요즘 경묘하고 가볍게 순간을 포착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출판사들의 상업성이 가세하는 풍토”라고 지적하고 “이런 시가 나오는 한 우리 시단에 하나의 빛, 하나의 계시가 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소설부문 심사위원 송원희(마리아)씨도 “소설부문 공동당선작도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격조높고 착상과 발상이 좋은 작품이었다”며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잃어가는 시대에 이처럼 영혼의 깊이가 있는 작품들을 뽑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평화방송 평화신문 사장 박신언 신부는 격려사를 통해 “상은 받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번에 이처럼 좋은 작품을 내 평화문학상의 위상을 높여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리고 아울러 수상자 여러분과 참석한 가족 여러분께 축하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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